치앙라이 동굴 조난 사고
태국 유소년 축구팀 탐루앙 동굴 조난 사건
태국 치앙라이의 탐루앙 동굴 조난 사고는 2018년에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들이 동굴에 갇혀 죽을 뻔했지만 구조된 사건입니다.
한국 세월호 침몰 사고는 2014년에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등 304명이 구조되지 못하고 죽은 사건입니다.
세월호 사고를 겪은 이유로 한국에서도 치앙라이 동굴 사고는 큰 관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코치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치앙라이 동굴 조난 사고 - 태국 유소년 축구팀 탐루앙 동굴 조난 사건
탐루앙 동굴 조난 사고이란?
태국 치앙라이에는 탐루앙이라는 관광 동굴이 유명합니다. 태국 북부에 있는 이 동굴은 산맥 치하에 위치하며 총 길이가 10km나 되는 동굴입니다. 2018년, 그곳을 태국 유소년 축구팀 "무 빠(야생 멧돼지라는 뜻)"의 코치와 아이들이 갔습니다.
아직 우기가 오기 전이라서 동굴 관광을 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상 기후 때문인지, 그 해엔 우기가 빨리 찾아왔습니다. 동굴 입구가 먼저 물에 차기 시작하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동굴 더 깊은 곳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고, 중간중간의 길은 물에 잠겨버린 동굴에 12명의 소년들과 25살의 코치가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실종된 것은 관광 관리인들이 동굴 입구에 둔 축구팀의 물건을 발견하고 신고하면서 알려졌습니다.
치앙라이 동굴 조난 사건 결과
비는 계속되고, 구조 환경 자체가 최악인 상태에서 구조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동굴 내부가 물에 차서 잠수해야만 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위치는 찾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일주일이나 이들의 위치를 찾는 작업만 계속되었습니다.
태국 네이비실 다이버들이 동굴 탐색을 시작했지만 앞이 아예 안 보이는 상황이라 고생만 더했습니다. 태국 정부의 부탁으로 미국 태평양 사령부 요원이 구조팀에 동참했고, 영국 동굴 구조전문가 '리처드 스탠턴'과 '존 볼런슨' 등도 태국의 호소를 듣고 자원 합류했습니다.
2018년 7월 2일, 드디어 9일 만에 태국 유소년 축구팀의 위치가 파악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구조팀은 목숨을 건 사투를 시작했습니다. 11일에 큰 폭우가 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10일에 구조를 끝내야 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17일 만에 모두 무사히 구조되어 가족의 품에 안겼습니다.
태국 유소년 축구팀 조난 구조 작전
태국 치앙라이 동굴 조난 사고는 2014년 한국의 세월호 사건과 비교되며 한국에도 매일 뉴스로 중계되었습니다. 태국의 구조대 1천여 명과, 7개국 등에서 지원된 구조대, 구조 지원으로 생생한 구조 과정이 세계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 온 동굴전문가 덕분에 조난된 유소년 축구팀의 위치를 알 수 있었고, 호주에서 온 의사 겸 동굴 잠수 전문가 덕분에 구조 순서도 효율적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중계기 없이도 장거리 통신이 되는 무전기까지 지원했습니다. (세월호 때 해경은 해군 구조팀을 지연시키고 해외 구조팀도 거절했었음)
다만 안타깝게도 구조 도중 구조 봉사자였던 '사만 쿠난'이 숨졌습니다. 공기통을 전달하고 돌아오던 중, 정작 본인의 공기가 모자라서 의식을 잃었던 것입니다. 이에 구조대는 공기공급 장비를 투입해서 구조대의 길을 텄습니다.
태국 유소년 축구팀 코치의 사연
처음에는 태국 국민들의 비난이 코치에게 빗발쳤습니다. 태국 치앙라이 유소년 축구팀 조난 사건이 팀을 이끌었던 25살의 코치 '에까폰 짠타웡' 때문이라고 보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는 미얀마에서 온 난민이며 무국적자였습니다.
하지만, 입구부터 물이 들어차서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오해가 풀렸습니다. 더구나 코치는 적은 식량을 아이들에게 먹이기 위해 굶기를 반복했고, 위험에 먼저 나섰으며, 구조도 맨 마지막으로 나가겠다고 했던 것이 알려졌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고 때,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해 놓고 선장과 승무원들이 도망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책임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이에 태국 정부는 탐루앙 동굴 조난 사건이 마무리된 후 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떠오르던 사고
태국 정부는 호주 구조전문가인 '리처드 해리스'에게 외교관급의 면책특권까지 주었습니다. 그가 구조순서를 잘못 정했다가 비난받는 것을 막아주고, 오직 의학적 판단만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반면 세월호 사건 때, 한국의 민간 구조대는 모진 수모를 당했습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보수 정부였기에 상명하복 방식이 몸에 배었습니다. 민간 구조 잠수사들은 강제로 퇴거당하기도 했고, 구조대 사망 보상금도 정부가 바뀐 뒤에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런데 이때 한국은 극보수 시대였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통은 더했습니다. 유족은 감시당하고, 일베 보수단체는 세월호 유가족이 단식투쟁을 할 때 일부러 그 곁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우롱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민간 자원봉사자는 반정부 빨갱이라며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이건 악몽 같은 현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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