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도끼 사건
판문점의 64인의 특전사 특공대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의 뒷이야기를 합니다. 잘 알려지지 많았던 64명의 특공대가 목숨을 걸고 북한군 초소를 때려 부순 이야기와, 그로 인해 전쟁 직전까지 갔던 이야기를 추적해서 정리했습니다.
이글은 총 3개의 시리즈로 기획된 글 중에서 3편입니다. 아래 두 개의 글도 읽어 보기를 권장합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정리 1 - 공동경비구역 도끼 만행 사건 이해
미루나무 도끼 만행 사건 정리 2 -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과 전쟁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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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미루나무 도끼 사건 3 - 판문점의 64인의 특전사 특공대와 박희도, 김종헌
도끼 만행 사건 64인의 특전사
1976년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벌어진 후, 유엔군을 대표하는 미국은 응징 계획을 세웠습니다. 미군이 2명이나 끔찍하게 도끼에 맞아 죽었으니 가만히 있지는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 전면전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는 모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선택합니다. 북한군이 보는 앞에서 일부러 도발하고, 북한이 반발하면 전쟁을, 하지 않으면 굴욕을 주는 것입니다. 이 작전의 이름은 "폴 버니언" 작전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나무꾼 이름을 붙여서 나무 베기 작전을 하게 됩니다.
미국은 이 작전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미리 설명했습니다. 이때 박정희의 요청에 의해서 호위를 한국군이 맡기로 했습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64인의 특전사 특공대가 박희도의 지휘로 출동한 것에는 이런 내막이 있습니다.
박희도, 김종헌과 제1공수여단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 30분에 공동경비구역 도끼 사건이 벌어진 후, 19일 미국이 응징을 결심하며 한국군에는 데프콘 3가 발령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쟁 준비 태세이므로, 제2의 한국전쟁이 다시 일어날 위기 사건이 되었습니다.
박정희가 한국군 특전사를 지원하기로 하면서 특전사 제1공수여단이 이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여단장은 '박희도'였습니다. (이때는 국가를 위한 군인이었지만, 전두환의 쿠데타 때는 반란군이 되어서 권력을 빼앗은 군인이 됩니다)
작전 참모로는 '박중환' 중령이, 작전 대장으로는 '김종헌' 소령이 임명되었습니다. 김종헌은 신혼이었지만 기꺼이 위험한 작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외, 특전사 장교 9명과 사병 54명이 선발되었습니다. 모두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공동경비구역 64명의 특공대
유엔군 총사령관인 스틸웰 장군은 확전될 것을 걱정하여 무조건 비무장을 요구했습니다. 피 터지는 싸움이 될지 모르는 곳에 몽둥이 하나 들고 들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공동경비구역 밖에서는 한국군 수색대가 완전 무장으로 대기 중이었지만...
작전 전날 육군 참모총장이 박희도에게 갔습니다. 그러면서 박정희가 준 격려금이라며 50만 원을 내놓았습니다. 박희도가 물었습니다. 비무장을 꼭 해야 하냐고... 그때 참모총장은 알아서 하라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말로 무장을 허락했습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보복 작전의 64명 특전사 특공대는 외동아들이나 장남은 제외됐습니다. 도발로 번지면 거의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부대 마크와 이름을 지우고 국가를 위해 죽을 준비를 했습니다.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JSA 공동경비구역에 들어가기 전, 미군은 무기가 있는지 검열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에 들킨다면 특전사가 아닙니다. 그들은 방탄조끼 안에 권총과 수류탄을 교묘하게 숨기고, 큰 총인 M16은 분해해서 모래 자루 안에 숨겨 들어갔습니다.
64인의 특전사가 무기를 가지고 간 것은 애초에 한국군 지휘부가 미군의 요구를 무시하고 전쟁까지 갈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박희도가 의심되면 먼저 사살하라며, 처벌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윽고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판문점 미루나무를 절단하는 데에 5분, 철수에 10분이 배정된 짧은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무가 너무 안 잘려서 작업 시간이 45분이나 걸리게 됩니다. 이때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보복을 위한 64명의 특전사의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의 응징
64인의 특전사 특공대는 북한군 초소 KPA 5, 6, 7, 8을 다 부숴버렸습니다. 원래 이들은 초소의 북한군을 사살할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군이 겁을 먹고 후퇴했기 때문에 북한군을 발견하지 못하자 초소를 다 부순 것입니다.
북한군에는 이미 명령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한국군과 미군이 도발을 할 것인데 거기에 말려들지 않도록, 시비를 걸어도 걸려들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북한군이 몰려오자, 이들은 오히려 웃옷을 벗어서 무기를 보여주면서 그들을 자극했습니다.
특전사의 목적은 북한군이 자극받아 반응하면 즉시 공격할 계획이었습니다. 북한군도 150여 명이 AK-47 소총을 들고 출동했지만, 아무 대응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바리케이트와 불법 차단기까지 다 부수는 데도, 다행히 총격전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특전사 64명과 김일성의 사과
한편, 미국은 완전히 당황해버렸습니다. 이미 F-111, B29와 전투 헬기에 항모전단까지 오고 있는데, 휴전선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그대로 전쟁으로 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비무장을 강조했는데, 한국군이 이를 무시한 것에 더욱 충격받았습니다.
공동경비구역에서 벌어진 도끼 만행 사건의 보복 목적은 북한에게 굴욕을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크게 놀란 김일성이 1시간 후 유엔 측에 유감 표시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군이 제멋대로 행동한 것에 대해 항의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이에 한국은 책임 장교 2명을 문책했다고 미국에게 설명했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갓이었지만, 다 끝난 일을 가지고 미국도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찔했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과 64명의 특전사 특공대의 활약은 끝나게 됩니다.
이글은 총 3개의 시리즈로 기획된 글 중에서 3편입니다. 아래 두 개의 글도 읽어 보기를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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