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공동경비구역 도끼 살해 사건 정리
1976년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북한군이 갑자기 도끼를 휘두르며 공격해서, 미군 2명이 죽고 8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입니다. JSA(공동경비구역)의 미루나무 도끼 사건의 전말을 설명합니다.
이글은 총 3개의 시리즈로 기획된 글 중에서 1편입니다. 아래 두 개의 글도 읽어 보기를 권장합니다.
미루나무 도끼 만행 사건 정리 2 -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과 전쟁 위기
공동경비구역 미루나무 도끼 사건 - 판문점의 64인의 특전사 특공대와 박희도, 김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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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정리 1 - 공동경비구역 도끼 만행 사건 이해
JSA 공동경비구역 도끼 만행 사건 배경
먼저 당시 상황을 설명합니다. 1976년은 미국이 베트남 전에서 패배하고 공산 국가들의 자신감이 높아지던 때였습니다. 한편 북한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 세습을 하려고 어수선한 상황이었고, 한국은 6.25전쟁을 휴전한 지 23년 된 해였습니다.
판문점의 JSA(공동경비구역) 중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는 남북의 경비 초소들이 바로 근처에서 서로를 감시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한의 CP3(제3초소)가 북한군 초소 3개에 포위된 듯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납치돼도 모르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남측 CP5는 항상 3초소의 안전을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사이에 있는 미루나무 3그루가 또한 문제가 됩니다. 12m나 무성하게 자란 나무 때문에 3초소가 잘 보이지 많던 것입니다. 이 나무가 결국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의 원인인 것입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란?
이미 북측도 근처 나무의 가지치기를 해왔고, 이에 남측에서 한 번도 방해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스럽게도 미루나무 가지 치기를 하기로 합니다. 1976년 8월 18일, 보니파스 대위, 바레트 중위, 김문화 대위 등 11명의 경비대는 5명의 작업 노무자와 가지치기에 들어갔습니다.
낮 10시 30분, 북한군 몇 명이 오더니 뭐하냐고 물은 뒤 돌아갔습니다. 그 후 47분에 북한군 박철 중위가 십여 명을 데리고 와서는 시비를 걸었습니다. 자기들이 심은 나무이니 손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박철은 다혈질이고 성질이 더러워서 미친개라는 소리를 듣는 자였습니다.
북한군 20여 명이 더 온 상황이지만, 보니파스 대위는 박철의 욕지거리에 대응하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박철이 "전부 죽여!"라고 명령했고, 북한 병사들은 박철처럼 미친개가 되어 몽둥이를 휘두르며 폭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시작된 것입니다.
참혹하고 잔인한 북한의 만행
쇠파이프와 몽둥이로 폭행하던 북한군은 놀란 노무자들이 버리고 달아난 도끼를 들고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공격에 보니파스 대위는 도끼를 맞고 쓰러졌고, 바레트 중위는 어디론가 추격당했습니다. 김문환 대위 등 한국군도 여러 명의 북한군에게 포위되어 격투를 벌였습니다.
집단 구타를 당하는 상황이었지만 총을 꺼내 들 수 없었습니다. 사소한 충돌이 큰 전쟁으로 번질까 봐, 어떠한 경우라도 먼저 총을 쏘지 말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군 병사들은 일단 도망치다가, 부상자들을 구출하여 다시 뛰어들었습니다.
일단 더 많은 북한군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오지 못하도록 트럭으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쓰러진 보니파스를 구해서 짚차에 태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처참한 모습으로 후송되던 중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겨우 4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제2의 한국전쟁 위기
몇 분 후, 남측의 신속 대응팀이 출동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종료되고 북한군도 다 돌아간 뒤였습니다. 바레트 중위를 발견했으나, 너무 참혹하게 다쳐서 그 역시 후송 중에 죽었습니다. 보니파스 대위는 본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이었고, 바레트 중위는 부임한 지 겨우 한 달되 신참인데 말입니다.
미군과 한국군의 통합 지휘권을 가진 미국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그날 밤, 유엔 사령관 스틸웰 장군은 긴급 참모 회의를 한 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포드 대통령에게 대응책을 보고했습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제2의 한국전이 될 큰 사건이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다음날, 한국군에게는 데프콘 3(전쟁 준비단계. 작전권이 한미연합사령부의 미군에게 넘어감)가 발령되었습니다. 군인들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이제 전쟁이 터지는구나...하고 있었습니다. 데프콘 3가 발령된 것은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과 아웅산 테러 사건, 단 두 번밖에 없던 위기입니다.
이글은 총 3개의 시리즈로 기획된 글 중에서 1편입니다. 아래 두 개의 글도 읽어 보기를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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