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과 철인왕후
촌사람으로 살다가 얼떨결에 왕이 된 인물과 그의 가계도에 대한 이야기.
[철종, 철인왕후 가계도 - 강화도령 철종과 순조, 헌종, 고종 관계]
강화도령 철종과 철인왕후의 가계도는 몰락한 왕족과 세도정치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조-헌종-철종-고종으로 이어지는 조선 말의 운명... 그 흐름을 쫓아가 봅니다.
철종은 아버지 이광과 함께 멸문지화에서 살아났고, 철종 다음 왕 고종의 아버지 이하응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리석은 척 살아가야 할 정도로 왕이 되지 못한 왕족의 운명은 기구했습니다. 이 어두운 시대의 왕족의 이야기는 1800년부터 1907년까지의 흐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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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가계도
1724년부터 1800년까지는 조선 중후기에서 가장 태평성대였던 시기였습니다. 이때의 왕은 '영조'와 '정조'입니다. 그래서 이때를 "영정조 시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그 사이에 '장조'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서 굶어 죽은 '사도세자'이며 그 아들이 정조입니다.
정조가 너무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순조'는 어린 나이로 왕이 되었습니다. 11살에 즉위한 그는 조선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순조의 아들은 20살에 죽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순조가 죽었을 때는 손자인 '헌종'이 8살에 왕에 올라야 했습니다.
힘없는 왕이 연속되다 보니 삼정은 더욱 문란해지고, 안동 김씨 세력이 왕권을 뒤흔드는 세도 정치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헌종이 또 22살의 나이로 죽어버리면서, 조선은 후대를 이을 왕이 없다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때 순조의 왕비였던 '순원왕후'가 강원도에 살던 촌사람을 왕으로 지명했으니, 그가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입니다. 왕의 후대가 끊기면 왕족 중에서 다음 왕을 찾아야 하는데, 왕족들이 다 일찍 죽거나 역모로 죽어버려서 후계자를 찾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렇듯 순조, 헌종, 철종의 가계도는 위태롭게 이어지는 조선의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제25대왕 철종 즉위
철종이 촌사람으로 살았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철종의 할아버지 '은언군'은 정조의 이복형제였습니다. 그러나 은언군이 역모 사건으로 죽으면서 그의 집안은 왕족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44년 후, 철종의 아버지 '이광' 대에 유배가 풀려서 한성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이복형이 또 역모에 휘말려 죽으면서 다시 역적의 집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철종은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철종은 강화도령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강화도에서 살며 '양순이'라는 처녀를 만나 결혼을 약속한 그는 오랜만에 평범한 행복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정에서 왕이 돼야 한다며 그를 모시러 나왔습니다. 선대부터 계속 역모에 시달렸던 철종은 또 다른 역모 사건에 휘말린 것으로 오해하고 도망쳐버렸습니다. 영의정이 나서서 설득한 후에야 믿고 궁궐로 따라나선 철종은 마침내 조선 제25대 왕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신분이 미천한 양순이와 함께 갈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였지만, 눈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철종은 강제로 헤어지게 된 양순이를 그리워하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철종과 철인왕후
그러나 왕이 되면 당연히 새 중전을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세도가인 안동 김씨 '김문근'의 딸과 결혼하게 되는데, 그녀가 바로 철인왕후입니다. 철종과 철인왕후가 결혼하게 된 것은 철저하게 안동 김씨의 권력 욕심에 의한 것입니다.
이미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의 조카인 철인왕후까지 궁궐에 들어서면서 안동 김씨의 세력은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철종이 왕으로 지목된 이유가 아무런 힘이 없는 왕을 올리고 안동 김씨 마음대로 조선을 휘두르려는 흉계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왕권을 둘러싼 배경은 그런 상황이었으나, 철인왕후는 왕비로서의 품위를 잘 지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내성적이고 기품있던 규수였던 그녀는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헌종의 왕비인 '효정왕후'뿐 아니라 순원왕후까지 극진히 모셨다고 합니다.
아버지 김문근이 권력을 휘어잡았으나, 철인왕후는 철종에게 정치적 요구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드라마 등에서는 양순이를 잊지 못하는 철종의 마음을 알면서도 참아내는 역할로 자주 나옵니다.
장황제와 철인장황후
19살에 왕에 오른 그에게 왕이란 것은 너무나 어색한 것이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왔기 때문에 3년간은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소문에는 완전 일자무식의 왕이란 말도 있지만, 그래도 어릴 때 천자문과 소학 정도는 공부했으니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새벽 공부를 시작으로 온종일 공부해야 했던 다른 왕들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런 왕을 골랐을까... 앞서 안동 김씨가 조선을 좌지우지하려고 골랐다는 설을 얘기했으나, 다른 왕족들이 헌종과 10촌이 넘는 거리였으니 5촌 조카인 철종이 그나마 가까웠던 이유도 있습니다.
서민의 삶을 잘 알기에 즉위 초기에는 개혁을 시도하긴 했으나, 권력을 쥔 신하들의 반발에 부딪혀서 실패합니다. 그 후 좌절감을 느낀 철종은 술과 여색에 빠져서 마구 살다가 재위 14년 만에 죽게 됩니다. 첫사랑 양순이와의 사랑도 이루지 못하고, 철종과 철인왕후의 자식들은 일찍 죽고, 대신들의 세도에 눌리는 왕이었으니 기구한 삶이기도 합니다.
철종의 가계도를 정리하자면, 영조 - 사도세자 - 은언군 - 이광(철종의 아버지) - 철종으로 이어지는데, 역시 후사가 없어서 철종의 다음 왕으로 '고종'이 즉위하게 됩니다. 나중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철종의 이름은 '장황제'가 되고, 철종의 부인 철인왕후는 '철인장황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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