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포브스 내시와 앨리샤 라지
[존 포브스 내쉬 조현병에 걸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와 앨리샤 라지]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은 '존 포브스 내쉬(또는 존 내시)'입니다. John Forbes Nash Jr는 노벨 경제학상을 탄 수학자입니다. 그는 겨우 스물두 살의 나이에 '내시균형이론'을 발표해서 제2의 아인슈타인이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후 45년이나 지난 다음에 노벨경제학상을 타는데, 거기에는 존 내시가 조현병을 앓았었다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는 물리학자이며 아내인 '앨리샤 라지'의 헌신적인 보살핌 속에서 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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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존 포브스 내시
세계적인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만유인력의 천재 과학자 '아이작 뉴턴' 등 유명 천재 중에는 조현병을 앓았던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조현병이란 현실과 비현실에 대한 구분에 문제가 생기는 정신질환입니다. 이들에게서는 망상, 환각, 환청, 이상한 행동 등이 나타납니다.
존 내쉬와 앨리샤가 결혼한 후, 당시에는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던 조현병이 존 내시를 덮쳐 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열렬해서 죽는 날까지 함께 삶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므로 존 포브스 내시의 연구에는 앨리샤 라지의 헌신도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28년에 태어난 '존 포브스 내시 주니어'는 16세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장학생으로...
그 후 프린스턴 대학에 박사 과정으로 들어가는데, 당시 지도교수의 추천서에는 단 한 마디만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수학 천재다" 이것만으로도 내쉬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50년에 박사 학위를 위해 27페이지짜리 논문을 제출하는데, 이것이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 준 "내시 균형 이론(비협력게임이론)"입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22세 때였습니다.
그는 성격이 남달랐습니다. 항상 혼자만 돌아다녔고 창문에다가 뭔가를 쓰며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이미 페르마의 정리를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대학교 때는 교수들도 어려워하는 문제를 풀어냈다고 합니다. 그는 수업 중에도 남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어떤 때는 토론 중에 갑자기 일어나 나가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화학을 하다가 수학이 재밌어서 수학으로 전공을 옮겼고, 국제경제학도 전공하는 등 학습에서는 더욱 남달랐습니다.
앨리샤 라지와의 결혼
그가 발표한 논문의 내쉬이론은 그 자체가 전혀 없던 발상은 아닙니다. 이 이론은 "비협력게임이론"으로 불렸는데, 고전 경제학의 거장인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뒤집는 이론입니다.
개인이 최대 이익을 위해 노력하면 사회 이익도 극대화된다는 게 이전 경제학의 기본 논리었는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낸 것이 존 내시의 균형이론입니다.
나중에 내쉬 균형이론은 '죄수의 딜레마' 실험을 통해서 입증되었고, 사화과학의 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쳤기에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타게 된 것입니다.
그는 MIT 교수가 되어 잘 나갔고 물리학을 공부하던 '앨리샤 라지'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30세가 되던 해, 존 포브스 내시는 조현병 증세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빨간 넥타이를 맨 사람도 봐도 공산주의자가 국가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미국이 음모에 빠져 공산주의자에 놀아난다고 여겼습니다. 신문 기사엔 공산주의자의 암호로 가득하므로 이를 해석해서 잡아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당시는 극냉전시대였기에 '매카시즘'이 극에 달한 때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빨갱이라고 공격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미국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무차별적인 좌파 누명 씌우기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둘 사이에 아기도 있는데 내쉬가 병원에서 조현병 판정을 받으니 앨리샤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 후 5년간이나 보살폈으나 결국 무너져내리고,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혼을 했다고 앨리샤가 그를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기와 셋이 같은 집에 있지 않을 뿐, 조현병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보살펴 주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시 7년 후, 앨리샤 라지는 집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서 존 내시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동안에도 존 포브스 내시는 계속 정신병원을 입원했다가 퇴원하길 반복했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의 존 내시
존 내쉬는 그렇게 30년 이상을 조현병으로 고생했습니다. MIT 교수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정신장애인이라면서 신용카드조차 만들지 못하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조현병이 좋아지는 희소식이 이어졌습니다. 이때는 내시 균형이론을 발표한 지 45년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그의 조현병이 나아진 것은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나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조현증이 좋아지자 그의 동료들이 나섰습니다. 1990년대가 되어 존 내시가 정상이 되었음을 확인한 노벨상위원회는 드디어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결정했습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66세 때입니다.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그는 객석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평생 수학 논리와 방정식들을 연구했지만 내 인생에서 소중한 발견은 어떤 논리나 이성으로 풀 수 없는 사랑의 신비한 방정식이었습니다.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모든 이유는 당신 덕분이지요"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이런 실존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실비아 네이사'란 기자가 추적한 기사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존 포브스 내쉬와 앨리샤 라지는 다시 재혼해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존 내시는 다시 프린스턴대학교 교수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편미분방정식 분야에 획기적인 업적이 생겼고,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벨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런데 이들은 마지막 또한 함께합니다. 존 포브스 내쉬가 88세 되던 2015년, 아벨상을 수상한 후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 택시를 탔는데, 충돌사고로 두 부부는 창밖으로 튕겨 나갔습니다. 평생의 고난을 함께 해 온 본 내시와 앨리샤 라지는 저세상으로 가는 비극마저도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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