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영아 납치 사건
청부납치 후 70일된 아이와 실종 후 살해돼 - 평택 영아 납치 사건 -
[평택 영아 납치 사건 - 청부납치 후 70일된 아이와 실종 후 살해돼]
평택 모자 납치 사건은 2004년 일어났지만, 매우 잔인한 사건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고 언론에서도 사라진 사건이었습니다.
완전범죄로 묻힐 뻔한 이 사건의 범인은 2005년 잡혔습니다. 평택 영아 납치 사건은 과연 인간은 누구나 짐승과 다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듭니다. 인간을 짐승처럼 만드는 두 가지는 바로 이기적 욕심과 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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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영아 납치 사건- 납치사건의 원인
2005년 1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순찰 중이던 경찰이 차량 한 대의 검문을 시도했습니다.
뺑소니 사고 혐의로 수배 중이었던 차였습니다.
그러나 차에 탄 사람들은 그대로 도주해버렸습니다. 끝까지 추격한 경찰, 결국 그들을 잡았는데, 의외의 사건이 여기서 터집니다. 그것은 평택 영아 납치 사건이 다시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차를 운전한 정 씨 일당... 경찰은 차 안에서 배터리가 없는 휴대폰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누구의 휴대폰인지 추궁하는 말에 정 씨 일당은 차를 살 때부터 원래 차 안에 있었다고 하거나 길에서 주웠다는 등 횡설수설을 늘어놓았습니다.
수상해 여긴 경찰은 차가 흙투성이인 것도 이상하게 여겨 내부를 뒤졌습니다. 트렁크에는 삽과 장갑 등이 있었는데, 그 후 휴대전화 조회에서 전화의 주인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이어지는 자백...
평택 영아 납치 사건 - 청부납치 후 70일된 아이와 실종 후 살해돼 / ⓒ Republica
그들이 체포되기 7개월 전, 당시 38세인 김모 씨는 결혼 13년 차의 주부였습니다. 그녀는 잦은 가정불화로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았고, 그래서 나이트클럽을 드나들며 놀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녀가 만난 사람은 연하인 최모씨. 그 후 김 여인은 최모 씨와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가출까지 한 그녀는 아이를 임신했다며 최 씨에게 결혼을 하자고 압박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김 씨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다는 것. 거짓말로 아이를 가졌다고 해버렸으니 이제는 아기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심부름센터를 찾아가서 4천만 원을 주며 아이를 구해달라는 의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에 이 의뢰를 진행하게 된 것이 정씨였고, 그가 바로 2005년 1월에 잡힌 평택 영아 납치 사건의 용의자인 것입니다.
그 후 김씨는 최씨와 결국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더 점입가경인 것은, 그때도 김모 여인은 남편과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이것마저도 최씨에게 숨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가짜 임신을 숨기기 위해서 그녀는 갑자기 미국에서 가서 아이를 낳아 영주권을 얻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미국으로 떠난다고 하고는 경기도 근처에서 숨어 살며 잠적을 한 김모씨...
평택 영아 납치 사건 - 살인 사건의 전말
거짓말은 결국 범행으로 이어지는데, 신생아를 구해주겠다고 의뢰받은 정씨는 아이를 구하는 것에 실패하자 못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납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씨와 일당은 2004년 5월, 평택시 포승면에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길에서 생후 70일밖에 안 된 아기를 안고 걸어가는 고모 씨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범죄를 저지릅니다.
당시 고모 씨는 겨우 스물한 살의 앳된 엄마였습니다. 그들은 갑자기 차로 막아서고는 저항하는 그녀와 아기를 차 안에 밀어 넣어 납치했습니다.
고씨는 애원하며 아기를 돌려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러자 잔인하고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정씨 일당은 그녀를 목 졸라 죽이고, 그 시신을 강원도 고성군의 한 야산에 암매장해버렸습니다.
얼마 후, 그들은 김씨 앞에 나타나서는 아이를 건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악마로 변해있었습니다. 김씨에게도 협박을 시작한 그들... 남편에게 사실을 다 말하기 전에 돈을 더 달라는 협박이 이어졌고, 그 후에도 계속 돈을 요구하며 총 1억4천만 원을 뜯어갔습니다.
그리고, 불쌍하게 살해당한 고모 씨의 시신은 그해 6월, 온몸이 묶인 채 마대 자루에 담긴 상태로 발견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평택 영아 납치 사건 - 청부납치 후 70일된 아이와 실종 후 살해돼 / ⓒ KlausHausmann
다시 2005년, 이제 경찰은 실종된 아이를 찾아내야 했습니다. 김씨의 위치를 파악한 경찰은 매우 긴박하고도 철저한 비밀 속에서 김씨의 집을 덮쳤습니다. 다행히 아기는 무사했습니다. 김씨는 자신의 진짜 아기처럼 고가의 명품 아기용품을 준비하고 건강관리도 잘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야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에 뉘우치며, 미혼모의 버려진 아기를 원했을 뿐이라고 진술했습니다.
그 후 재판이 열렸습니다. 당시 평택 영아 납치 사건에서 아기의 어머니를 직접 살해한 정씨의 처남과 친구에게 무기징역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사건을 벌였지만 직접 살인에 관여하지는 않았기에 정씨에게는 징역 5년밖에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평택 영아 납치 사건과 살인 사건은 인간이 돈에 의해 얼마나 잔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끔찍하게 죽어간 고모 씨의 원한을 풀어줄 수도 없으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다행히 아기는 원래의 친족에게 무사히 돌아갔다는 것으로 끝납니다.
[평택 영아 납치 사건 - 청부납치 후 70일된 아이와 실종 후 살해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