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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폭발로 발해 멸망설이 생긴 이유 - 백두산 화산폭발 역사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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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폭발로 발해 멸망설이 생긴 이유 - 백두산 화산폭발 역사 1

키스세븐지식 2019. 12. 19.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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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폭발로 발해 멸망설이 생긴 이유 - 백두산 화산폭발 역사 1]

이 문서는 왜 발해와 백두산 분출설이 생겼는지 이유를 알아보는 글입니다.

'발해'는 '고구려' 멸망 후 유민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고구려만큼이나 강했습니다. '해동성국'이란 말은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강력한 나라가 926년, 15일 만에 망합니다. 병자호란 때 허약한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할 때까지 42일이나 걸렸는데, 말갈족까지 대군을 거닐었던 발해가 겨우 15일이라는 것은 아무리 봐도 이상합니다. 그래서 백두산 폭발로 발해 멸망이 있었다는 설이 나옵니다. 이에 발해와 백두산 화산폭발 역사를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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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멸망의 미스터리

발해의 영토는 고구려보다도 컸습니다. 그러나 발해의 역사가 228년이나 되는데도(대조영 건국. 698년~926년) 우리는 그 존재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926년 발해가 너무도 갑자기 망해서 자료나 유물이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은 모든 학자들에게 의문이었고, 그중의 한 설이 백두산 폭발설입니다. 

백두산 화산 폭발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인 939년이 첫 기록입니다. 그리고 946년 백두산이 대폭발했는데, 천년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서 "밀레니엄 분화"라고 부릅니다.


사진: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 북부의 발해 영토 지도(만주와 연해주, 한반도 북부의 발해 영토 지도 [백두산 화산폭발 발해 멸망 역사] / ⓒ www.kiss7.kr)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발해의 멸망 연도는 926년인데 백두산 화산폭발은 946년이라는 것입니다. 거의 20년이나 차이가 나는 이 문제는 과연 백두산 분출이 발해 멸망과 관계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줍니다. 

일단, 946년의 대폭발은 거의 확실시됩니다. 2017년, 과학자들이 당시 용암에 죽은 나무의 성분 분석을 했었는데 946년 겨울 정도에 실제로 대폭발이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 기록에 문제가 없었나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백두산 화산폭발 역사의 미스터리가 되는 것은 '거란'의 역사책인 <요사>에 적힌 기록입니다. 

거란의 '야율아보기'는 925년 겨울, 발해를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최전방의 부여성을 포위 3일 만에 점령하고 다시 6일을 파죽지세로 진격한 후 수도인 홀한성(상경성)을 포위합니다. 3일 후, 제15대 왕이며 발해 마지막 왕인 '대인선'이 항복하고 포로가 됨으로써 발해는 역사에서 멸망으로 지워집니다. 동북아시아의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발해가 겨우 15일 만에 어처구니없이 멸망을 한 것입니다.


사진: 발해 유물 용머리상. 기상이 넘치는 나라(발해 유물 용머리상. 기상이 넘치는 나라 [백두산 화산폭발 발해 멸망 역사] / ⓒ tjfriese)


그런데 이상한 것은 거란이 침입하기 전인 925년부터 이미 발해의 백성들이 고려에 투항해 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해 9월~12월 사이에 이미 1100호 이상의 백성들이 발해를 탈출했습니다. 

더구나 거란의 역사책인 요사에서는 "발해 민심이 멀어진 틈을 타서 싸우지 않고 이겼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나라는 상류층의 부패와 분열, 혹은 반란으로 멸망하는데, 발해는 백성들이 탈출하여 민심이 멀어졌다고 합니다. 반란 기록 같은 찾아볼 수도 없는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진: 거란 역사서 요사의 페이지(거란 역사서 요사의 페이지 [백두산 화산폭발 발해 멸망 역사] / ⓒ jianglishi)




백두산 화산폭발 역사


거란은 발해를 점령한 뒤 그 자리에 '동란국'이라는 허수아비 나라를 세웁니다. 하지만 이것도 의문입니다. 동란국은 2년 뒤 갑자기 수도를 '요양(라오양)'으로 천도해 버립니다. 역사에서는 '사민정책' 때문이라고도 하고, 너무 오지라서 다스리기 어려웠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상합니다. 영토의 끄트머리로 수도가 옮겨진 것이니 말입니다. 

거란은 천도하면서 발해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그 수는 약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백두산을 중심으로 두만강, 압록강, 쑹화강, 동해안의 마을은 폐쇄됩니다.


사진: 압록강, 두만강, 쑹화강, 백두산 위치 지도(압록강, 두만강, 쑹화강, 백두산 위치 지도 [백두산 화산폭발 발해 멸망 역사] / ⓒ Tschubby / 편집 www.kiss7.kr)


검색을 해 보면 당시 거란이 폐쇄한 마을들에서 홍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백두산의 화산이 폭발하면 화산재도 분출하겠지만, 천지의 20억 톤의 물과 녹은 눈은 홍수가 되어 쏟아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연쇄적으로 일어난 해일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폐쇄된 발해의 주요 도시인 중경, 동경, 남경은 당시 계절이 겨울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북서풍의 영향을 받는 지역입니다.

즉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백두산의 남동쪽이므로 화산폭발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책에 의하면, 실제로 화산폭발이 있었다면 규모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고려의 기록이나 일본의 기록을 보면, 그 소리가 450km 떨어진 개성에서도 들렸으며 1,000km 떨어진 일본에서도 화산재 분출이 보였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발해 지역이 폐허가 되어 재건조차 불가능한 곳이 되었으며, 지금 유물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제대로 된 나라가 들어선 것은 200년이나 지난 1115년 '금나라'가 세워지고 나서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지금도 화산 마그마에 데워진 뜨거운 기가 올라 온다(지금도 화산 마그마에 데워진 뜨거운 기가 올라 온다 [백두산 화산폭발 발해 멸망 역사] / ⓒ Shizhao)



하지만 발해 역사를 조금 더 살펴보면 아예 사람이 멸종한 것까지는 아니었습니다. 928년 '후발해'가 세워져서 거란군을 궤멸시킨 후 예전의 영토를 거의 회복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직 학계에서 정식 역사로 인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역사서인 요사를 보면 1월에 망했다는 발해가 4월에도 당에 사신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것은 935년까지 8차례나 계속되었고 930년대에 일본과의 교류도 여전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미스터리입니다. 과연 거란의 요사는 믿을만한 것일까요? 이것이 발해와 백두산 연관설의 시작입니다.


[백두산 폭발로 발해 멸망설이 생긴 이유 - 백두산 화산폭발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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