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권투경기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 - 김창엽, 황을수]
한국 복싱은 야구, 배구 등과 함께 일제시대에 들어왔지만 대부분 1970~80년대의 권투만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1966년 최초로 김기수가 세계챔피언에 오른 이후 홍수환, 유제두, 염동균, 박찬희, 장정구, 박종팔 등 유명 선수들이 줄줄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1930대에도 권투 최강기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권투경기인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 이후 김창엽, 황을수, 서정권 같은 강자가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당시의 초창기 한국 복싱의 뒷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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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권투 경기
우리나라에 최초로 권투가 전해진 것은 1912년 '유각권투구락부'라는 조직이 생기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적 권투가 제대로 시작된 것은 1916년 선교사 '질레트'에 의해 권투글로브가 들어오면서부터입니다. 질레트는 야구를 소개한 선교사이기도 합니다. 그 후 한국 최초의 프로복서 '김정연'이 탄생하고 아마복싱의 선봉장인 '황을수'가 나타났습니다.
(1938년 제5회 대회의 모습 [최초의 권투대회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 김창엽 황을수] / ⓒ 대한체육회)
이때부터 우리나라 권투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는데 '황을수', '김창엽', '박용진', '현해남' 등이 일제강점기의 민족 자존심을 세워주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전 일본선수권대회에도 참가하여 우승을 한 선수들입니다.
그 이전엔 권투 글로브만 꼈을 뿐 그냥 싸움을 하는 경기였다고 합니다. 규칙도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 경기를 하다가 진짜 싸움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패싸움도 종종 일어났습니다. 그중에는 주먹질을 하는 건달들이 꽤 참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권투대회인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는 1928년에 있었습니다. 당시 이 대회 최고의 뉴스거리는 난투극과 '김충성'의 우승 소식이었습니다. 결승에서 김충성의 상대는 김창엽이었다고 합니다.
이 대회 역시 선수들끼리 싸움질이 발생했고 관중까지 끼어들어서 집단 난투극이 벌어지곤 했다고 합니다. 권투에 대한 인식이 아직 잡히지 않았기 때문인지 깡패들도 선수로 참가한 대회는 완전 아수라장이 되곤 했답니다.
(동아일본의 조선권투선수권대회 기사와 김창엽 [최초의 권투대회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 김창엽 황을수] / ⓒ 동아일보)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 이후의 김창엽
김창엽은 당시 서울 수표교 일대에서 악명 높은 주먹 건달이었습니다. 반면 우승자인 김충성은 YMCA 소속의 온순한 성격인 복서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권투대회인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맞붙었지만, 역시 제대로 권투를 배운 김충성이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주먹 건달이지만 싸움꾼일 뿐이었던 김창엽은 3회에 KO 당했다고 합니다. 이 일을 개기로 김창엽은 제대로 권투를 배우기로 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황을수 선수. 이외에도 서정권 선수 등이 활약했다 [최초의 권투대회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 김창엽 황을수] / ⓒ y-archive.com)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 준우승자인 김창엽은 나중에 다른 대회에서 최초의 녹아웃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합니다. 그가 제대로 권투를 배우자 일본 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복서가 되었습니다. 경기를 보는 조선인들은 일본인과 공식적으로 일본인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권투에서 민족적인 분풀이를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선수들도 나타난 후, 1929년 전 일본선수권대회에서 황을수, 김창엽, 박용진, 현해남 등이 우승하며 일본을 휩쓸었습니다.
조선 선수들이 일본을 거의 평정한 후 1932년 제10회 LA올림픽에 황을수 선수가 최초의 권투 선수로 참가했습니다. 그 후 1934년 극동 올림픽에서 드디어 김창엽 선수가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일본 경기에서 맹활약 중인 황을수를 찾아가서 배운 '서정권' 선수가 일본에서 27전 전승을 거두고 미국까지 진출해서 서해안 일대의 복싱 강자가 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1937년, 일제는 권투가 적대국의 스포츠라며 갑자기 금지시켰고, 선수들은 아쉬운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권투대회 때와 비교한다면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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