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실존인물 김정남 - 민주화 운동의 대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은 김정남이란 인물이 주목받습니다. 설경구가 연기한 그는 누구길래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일까요? 정의하자면 김정남은 민주화운동의 대부이며 은둔형 투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 한국의 굵직한 민주화운동은 그의 기획에 의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영화 1987 실존인물 김정남은 지금 변절된 보수주의자라는 말도 듣습니다. 그 원인도 함께 관찰하며 한국 민주화운동 30년 역사를 그의 활동과 함께 흩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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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김정남 - 누구인가
영화 1987 실존인물 '김정남'은 누구일까요? 그는 '인혁당 사건' 진상을 폭로했고, '김지하'의 양심선언과 함께 했으며,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폭로한 장본인입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고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민주화운동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고은' 시인도 "찾을 수는 없지만, 그는 있어야 할 때, 있어야 할 곳에 항상 있었다."라고 그를 떠 올립니다.
(영화 1987에서 김정남을 연기한 설경구 [김정남 1987] / ⓒ 장준환)
그는 윤보선, 김영삼, 함세웅 뒤에서 몰래 활동할 뿐 한 번도 자신을 내세운 적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야 그의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정치학과 출신으로 도피와 수배로 인생의 대분을 보냈음에도 말입니다.
김정남은 1964년 '6.3 사태'의 배후 인물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과 굴욕적 외교를 한다며 '한일협정'을 반대하다가 교도소에 간 것이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박정희의 3선 개헌 반대를 통해 독재에 항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가혹한 노동조건에 항거하다가 분신한 '전태일'의 평전은 김영기라는 작가의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사실 김영기라는 이름은 '김정남', '조영래', '장기표'를 한자씩 추린 가명입니다. 검열 때문에 국내 출판이 불가능하자 일본에서 <불꽃이여, 나를 감싸라 - 어느 한국 노동자의 삶과 죽음>의 출판을 기획한 것도 그였습니다.
1974년 방정희 독재정권이 죄 없는 대학생, 지식인들을 죽인 '인혁당 사건'의 뒷바라지도 했습니다. 당시에 그런 행동은 정부 감시와 탄압이 기다리는 데도 말입니다.
(KBS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정남 [김정남 1987 영화] / ⓒ KBS)
영화 1987 실존인물 김정남은 억울한 구속자들과 당국에게 쫓기던 수배자들을 돕다가 결국 구속당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글을 잘 썼고 정국 기획능력이 뛰어나서 그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의 글이 인정받는 것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동의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야당 의원일 때 정부의 탄압을 받자 그의 연설을 도와준 것도 김정남이라고 합니다. 출소 후 그는 해외 지원자들의 민주화운동 지원을 연결해 주는 역할까지 했습니다.
1987 실존인물 김정남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부영'은 1987년 3월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습니다. 이미 세상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끄러웠지만 정부가 거짓으로 덮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부영은 이 사건의 진범이 더 있다는 정보를 알아내고 교도관 '한재동', '전병용'의 도움을 받아서 쪽지를 보냈습니다. 영화 1987의 한병용은 한재동과 전병용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또한 영화 1987의 김정남은 벙거지 모자를 쓴 설경구가 신비감 있는 인물로 연기를 한 사람입니다. 김정남에 대한 궁금증은 여기서부터 퍼졌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박종철 [김정남 실존인물] / ⓒ Unknown)
이부영의 쪽지를 건네받은 김정남은 이 사실을 '김승훈' 신부님에게 전달했습니다. 김승훈 신부도 영화 1987의 실존 인물로 한국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한 종교인입니다. 1987년의 한국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 때문에 저항이 거센 시기였습니다. 김정남은 5.18 명동성당 추모 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폭로를 기획했습니다.
낭독 문의 초안도 그의 글이라고 합니다. 이후에도 그의 연설문 작성은 유명 연설에 등장했고 김영삼의 연설 중에도 꽤 많이 나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영화 1987의 김정남이 김영삼에게 간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갈 경우 더욱 탄압을 받을 것을 우려해서라고 합니다. 당시 정권은 김대중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나마 민주화운동이 가능한 선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결정으로부터 그의 투사적인 면모는 사라져 갑니다. 김영삼이 3당 합당을 통해서 군부 세력과 결탁하여 보수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지하, 김문수, 이재오 등도 그렇게 보수화가 되었습니다.
(뉴시스에서 보도된 김정남 관련 기사 [김정남 1987 영화] / ⓒ newsis.com)
수십 년을 변변한 직업도 없이 지내니까 어린 딸이 통반장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 바람 때문이었는지, 나중에 김영삼이 집권한 뒤 청와대 비서실의 교육문화수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영화 1987 실존인물 김정남은 한국 민주화 역사를 정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원래 은둔의 기획자였던 그는 지금도 인터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만나기 어렵다고 합니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정남은 지금은 보수화가 됐지만, 30년 전 그날을 위해 필요했던 인물로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