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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역사&사건

나관중 삼국지연의, 진수 삼국지 - 실화, 진실, 비교 1

2019. 8. 18.

[나관중 삼국지연의, 진수 삼국지 - 실화, 진실, 비교 1] 

중국은 금병매, 일본은 수호지, 베트남은 서유기, 한국은 삼국지를 선호한다는 말을 한 교수가 있었습니다. 한국인이 유독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선호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사람들이 대의명분과 유교를 중요시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원본 격인 진수 삼국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삼국지 실화를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중국인의 과장된 습관을 비교해 보면 문학은 문학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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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 진수 중 실화 삼국지는? 


먼저 삼국지가 무엇인가를 정리해 봅니다. 진수 삼국지와 나관중 삼국지연의 내용은 184년부터 280년(3세기)까지의 일로, 역사적으로는 '한나라' 말기와 '5호 16국' 사이의 중국 내전이 배경입니다. '진수'는 삼국 통일 후의 '진나라' 역사가입니다. 3세기에 살았던 그의 책은 사실을 적은 냉정한 역사서입니다. 

14세기에 살았던 '나관중'은 원말명초 시대의 소설가로, 거의 천년 후의 사람입니다. 이민족인 몽골의 지배를 오래 받았기 때문인지, 그 분풀이로 한족의 왕가인 유비를 주인공으로 했습니다. 


사진: 진수의 정사 삼국지(진수의 정사 삼국지 [실화 비교 1] / ⓒ xuehua.us)



삼국지연의의 3대 영웅은 유비, 조조, 손권입니다. 이 중에서 조조는 개인적 능력이 출중하고 혈통도 좋으며 가장 막강한 군대를 가졌었습니다. 그에 비해 손권의 오나라는 지방 토호들이 분열되어 있어서 그 큰 땅에서 1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기도 힘겨웠습니다. 

유비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 명 중에서 가장 어부지리로 성장한 군주입니다. 그럼에도 나관중이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은 몽골 지배에 대한 저항이며, 송나라 주자학 등의 유교 영향으로 혈통을 중요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수는 진나라 사람입니다. 위, 촉, 오가 내전을 하다가 위가 통일을 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위나라의 새로운 정권인 '사마' 가문이 세운 진나라가 통일 제국이 됩니다. 진나라는 위를 이은 정권이기 때문에 유비를 중심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진수의 삼국지는 철저하게 능력과 사건 위주로 적은 역사서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진수의 아버지가 제갈량 집안과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에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유비 위주로 흘러가는 것처럼 적을 일도 없었습니다. 


사진: 중국 삼국지 드라마 한 장면(중국 삼국지 드라마 한 장면 [진실 비교 1] / ⓒ 171u.com)




삼국지연의, 삼국지 비교 


나관중은 백화소설(역사를 소설로 옮긴 소설)로 중국문학의 기초를 닦은 사람입니다. 송 - 원 - 명으로 바뀌는 중세 중국에서 송나라 때부터 발달한 것이 연극입니다. 당시 연극에는 해설자가 있어서 줄거리를 말해주는 역할을 했었다고 합니다. 이 연극의 해설 대본인 '전상삼국지평화'와 전국 각지를 다니며 모은 설화를 바탕으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완성됩니다. 

"연의"의 뜻도 역사를 소설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진수의 <삼국지>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진수 삼국지와의 차이] / ⓒ FreCha)



그리고 삼국지연의와 정사 삼국지를 비교하면 과장이 매우 심합니다. 아무래도 설화와 연극이 바탕이 된 이유 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관도대전에서 원소가 70만 대군을 동원했다는 기록도 그렇습니다. 학계에서 당시 인구를 추론하면 중국 인구는 약 5천만 명으로 나옵니다. 

심지어 하나라 말기에는 한냉화가 나타나서 흉작에 전염병까지 심했습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것도 그런 이유이며 실제로는 약 3천만 명 밖에 안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70만 대군을 동원한다는 것은 과장을 해도 지나친 과장입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뒷부분을 보면 남만족이나 저족 등의 이민족이 전쟁에 참여합니다. 내전과 자연재해로 인해 중국 내부의 인구는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국가가 파악할 수 있는 인구는 내전 이전과 비교할 때 1/10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민족들이 중국 내부로 들어오게 되고, 진나라가 망한 뒤 5호 16국 시대가 될 때 한족은 이민족에게 쫓겨 내려가면서도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최근 다시 정리된 위 촉 오의 영역도(최근 다시 정리된 위 촉 오의 영역도 [중국어판 편집] / ⓒ Yu Ninjie / 편집 www.kiss7.kr)



삼국지, 삼국지연의를 비교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무미건조한 기록과 과장해서 재미를 쫓는 창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구나 중국은 정사 역사 자체도 뻥튀기가 심합니다. 친분을 위해 선물을 준 것도 모두 조공을 바쳤다고 쓰고 있으며, 전쟁에서 대패를 했어도 졌다고 적지 않습니다. 당나라 태종이 정예 정력으로 고구려에 쳐들어갔다가 태종이 죽을 뻔한 위기까지 겪었는데도 패했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 역사를 볼 때 무조건 중국 기록만 믿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점들은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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