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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키시마호와 폭침사건 - 실화 진실의 생존자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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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키시마호와 폭침사건 - 실화 진실의 생존자 2

키스 키스세븐 2019. 8. 1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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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키시마호와 폭침사건 - 실화 진실의 생존자 2]

우리는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70년도 넘게 지난 2019년 일본은 한국을 대상으로 무역보복을 합니다. 정치권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을 업신여기던 일본이 이 기회에 한국을 손봐주겠다는 의도로 진행됐다고도 합니다. 

이때 즈음 한국에서는 영화 <우키시마호>가 개봉을 했습니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의 실화를 다루어 진실을 파헤치려는 시도입니다. 일본의 대학살 만행으로 꼽히는 이 사건을 되짚는 두 번째 글을 연재합니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실화

1945년 8월 24일 일본 마이즈루 항에서 일어난 우키시마호 폭발사건은 큰 인명 피해를 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는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언론 통제가 있었다는 의심을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사건은 한국의 신문에도 올랐지만 한국정부 역시 대응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배 하부에 큰 충격이 있었고 우키시마호 폭발사건ㅊ의 폭발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물기둥을 봤다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내부 폭발의 흔적이 더 많아서 미스터리로 남았습니다. 

사진: 광복 후 우키시마호 폭발사전의 항로 설명(광복 후 우키시마호 폭발사전의 항로 설명 [영화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실화 생존자 진실] / ⓒ Valentim, www.kiss7.kr)



폭발 당시 배는 엔진이 꺼진 상태로 멈춰 서있었습니다. 물론 감응기뢰나 음향기뢰가 작동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우키시마호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일본인 군인과 승무원들이 구명보트를 타고 출발하자마자 폭발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 배는 출발 전에 폭약이 잔뜩 실어져 있었다는 문건도 발견되었습니다. 일본 방위청의 이 문서는 배의 선장에게 내린 "항해 금지 및 폭발물처리" 문서였습니다. 항해 중이면 폭발물을 해상에 버리고, 아니면 육지 격납고에 넣으라는 명령입니다. 



영화 우키시마호는 이 배가 폭발물을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실은 채 출항하는 것에 의심을 둡니다. 물론 해상에 버렸다는 증인도 없는 상황입니다. 반면 폭발 전에 미리 배에서 탈출하는 사람을 본 증인이 있기 때문에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일부러 폭파한 침몰사건이라는 의심이 갑니다.

또 다른 우키시마호 생존자 증인에 의하면 전깃줄이 기관실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고,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일본인 증인도 나섰습니다. 맞다면 장치를 연결해서 터트린 일본의 대학살 만행인 것입니다. 


사진: 인양된 우키시마호는 안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을 보여준다(인양된 우키시마호는 안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을 보여준다 [영화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실화 생존자 진실] / ⓒ 리병만)




영화 우키시마호와 현실

대참사 이후에도 별 관심을 안 보이던 일본이 1950년에 인양을 시도했습니다. 6.25 한국전쟁이 터지자 한국을 발판 삼아 목돈을 벌어보려는 일본이 고철로 팔려던 것이었습니다. 배의 구조는 안에서 밖으로 펼쳐진 형태였으니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 해체해 버려서 이제는 확인도 할 수 없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1995년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영화 <아시안 블루 - 우키시마호> 사건을 제작하고 반성했습니다. 부끄럽게도 한국에서는 모른 체하는 데도 말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우키시마호는 일본 뿐 아니라 한국도 관심이 없었다(우키시마호는 일본 뿐 아니라 한국도 관심이 없었다 [영화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실화 생존자 진실] / ⓒ Unknown)



1999년에는 북한에서도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실화를 영화화했습니다. <살아있는 령혼들>이 그것입니다.(한국은 2019년이 돼서야 큰 규모의 영화 <우키시마호>가 개봉했습니다.) 그동안 일본 내에서는 법정 소송이 있었고 지방법원은 안전책임의 유죄를 판결하며 피해자 15명에게 300엔 씩을 배상하도록 일부 승소를 했습니다.

그러나 재심이 다시 열리고 8월 15일 이후의 그들은 이제 일본 국민이 아니므로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방위청의 폭발물 문건도 제출되었으나 언론 공개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의 피해자들은 더 불행합니다. 한국의 법에서는 1945년 8월 15일까지만 개인청구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24일의 우키시마호 폭발사건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 때에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일본의 대학살 만행인 우키시마호 진실을 조사했을 뿐, 그 외의 정부들은 철저히 외면해 왔었습니다. 그 와중에 박정희 정부 때는 한일협정을 하고 박근혜 정부 때는 한일위안부합의를 해버렸습니다. 


사진: 강제징용자들은 험한 고생을 하고 억울하게 죽어 갔다(강제징용자들은 험한 고생을 하고 억울하게 죽어 갔다 [영화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실화 생존자 진실] / ⓒ i815.or.kr)


거기다가 한국의 어떤 국민들은 한일협정으로 배상이 완료됐다고 하고 있고, 심지어 일제 강점기 덕분에 한국의 근대화가 이룩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자신의 가족이 그렇게 생매장을 당했어도 논리적인 척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시대입니다.

무려 5천여 명이 광복의 기쁨도 누리지 못한 채 일본 앞바다에서 죽어갔는데, 70여 년이나 모른 척 살아가는 우리는 정말로 미래를 위해 역사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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