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큐블러(스텔라 골드슐라흐) - 금발의 맹독 뜻, 의미]
한국에서는 일제시대에 민족의 피를 빨아먹고 지금도 떵떵거리며 잘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독일에서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죗값을 받고 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스텔라 큐블러(스텔라 골드슐라흐)'의 별명이었던 "금발의 맹독"의 뜻과 의미는 영어 "Blonde Poison"에서 왔습니다. 이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사회의 "독"이 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많은 유태인을 나치 독일에게 팔아넘겼던 그녀의 사례에서 한국의 친일자들의 현재를 비교해 봐야 할 것입니다.
금발의 맹독 뜻과 스텔라 큐블러
동족을 밀고하고 그 죽음으로 돈을 벌었다면 남은 인생은 반성과 헌신의 삶이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는 말을 하지만, 이러한 과거의 정리만이 미래의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죄를 덮고 부인하며 자신의 이익만 따지는 자들이 있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은 미래마저 분열되게 만드는 사회의 맹독약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독일 사회는 어떻게 대하는 지에 대한 사례가 있습니다. "블론드 포이즌", 즉 금발의 맹독이란 뜻의 별명을 가진 '스텔라 큐블러'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시절 꽤나 잘 나갔던 Stella Kubler [스텔라 큐블러 금발의 맹독 뜻 유태인 학살 스텔라 골드슐라흐] / ⓒ justiceforpolishvictims)
독일 이름인 '스텔라 골드슐라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살던 유태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뉴스 회사에서 근무했고 어머니는 꽤 잘 알려진 가수였습니다. 물론 가정형편도 괜찮았은데, 그녀는 성격이 쾌활하고 외모마저 예뻤기 때문에 항상 인기 있는 소녀였습니다.
금발의 맹독이라는 뜻의 별명이 붙은 것도 그녀의 찰랑찰랑한 금발머리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독일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치당이 집권할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유태인이 어떤 불이익을 당하게 될지 몰랐습니다.
나치 독일은 유태인들이 독일 자녀들과 같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래서 유태인 설립 학교를 다녔는데, 외모와 성격은 어디서나 눈에 뗬고 인기가 많은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녀가 16세가 되던 해에 가족은 이민을 떠나려고 했지만 비자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패션 디자이너 과정을 공부하고 누드모델로 활동하다가, 음악가인 '만프레드 큐블러'와 결혼을 했습니다. 20세가 되자 나치 독일의 유태인 추방정책이 시작되었고, 스텔라 큐블러는 유태인 지하조직에 도움을 받아 숨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금발머리의 밀고자, 원래 이름은 Stella Goldschlag [스텔라 큐블러 금발의 맹독 뜻 유태인 학살 스텔라 골드슐라흐] / ⓒ dpgmedia)
1943년, 스물한 살이 된 스털라 골드슐라흐는 부모와 함께 잔인한 '게슈타포'에게 붙잡혔습니다. 유태인 학살을 주도한 독일 비밀경찰 게슈타포는 모진 고문을 한 후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숨어있는 유태인을 밀고하면 부모를 강제수용소로 보내지 않을 것이며 300 라이히마르크의 돈을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녀는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의 정보를 넘겨주기 시작했습니다. 금발을 가진 그녀는 이렇게 "금발의 맹독 - 스텔라 큐블러"로 변신하여 공포의 배신을 시작합니다. 그녀가 죽게 한 유태인은 3000명(적어도 600명 이상)이나 된다고 합니다.
스텔라 골드슐라흐와 정의
독일 혈통인 '아리아인'의 외모에 미모까지 갖춘 스텔라 골드슐라흐는 점점 돈의 맛을 알아가고 나중에는 스스로 혈안이 돼서 동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수년간 유태인 지하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그동안 알고 지낸 유태인 인맥을 모조리 밀고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 문서에서는 그녀를 그리퍼(Greifer)라는 뜻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붙잡아 넣는 역할을 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스텔라 큐블러는 유태인을 찾아내기 위해 베를린을 샅샅이 뒤져서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컬러 복원한 Stella Goldschlag의 사진 [스텔라 큐블러 금발의 맹독 뜻 유태인 학살 스텔라 골드슐라흐] / ⓒ Landesarchiv Berlin)
그녀는 집요했습니다. 더 많은 유태인을 밀고하기 위해서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며 유태인을 끌어모으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스텔라 큐블러는 금발의 맹독으로 악명이 높아지자 새 남편을 끌어들여서 자기 대신 유태인 비밀 은신처에 가서 정보를 모아 오도록 했습니다.
영어에서 포이즌 펜(poison pen)은 중상모략의 글로 해석됩니다. 즉 금발의 맹독의 뜻에서 포이즌(poison)도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나 나치는 스텔라 골드슐라흐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추방되고 결국 학살되었습니다. 그녀의 첫 남편도 '아우슈비츠'로 추방되어 학살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녀는 스물세 살이 되는 해까지 밀고를 계속했습니다. 오히려 다른 그리퍼와 협력하여 나쁜 짓을 계속했습니다.
그녀의 몰락은 독일이 패망하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1945년 경쟁이 끝나자 잠적했던 그녀는 결국 소련에 체포되어 10년 간 수감되었습니다.
(한국과 달리 독일이 더 과거 청산에 확실했다 [스텔라 큐블러 금발의 맹독 뜻 유태인 학살 스텔라 골드슐라흐] / ⓒ ullstein bild)
그리고 다시 독일로 돌아온 스텔라 큐블러... 하지만 독일인들은 아직도 잘 못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독일에서 다시 재판을 받아야 했고 또 1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다만 이미 소련에서 복역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취소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사회는 또 달랐습니다. 그녀에 대한 기사와 소설까지 출판이 되자 결국 그녀는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으로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스텔라 큐블러의 자살이 아닙니다. 사회가 잘못한 자를 끝까지 잊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요? 아직도 친일자를 감싸고도는 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