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멸망 "정강의 변" 원인 - 송휘종, 송흠종, 곽경]
송 멸망의 원인인 정강의 변은 중국 한족이 가장 치욕스러워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북송시대 멸망은 황당한 세 인물과 함께 합니다. 송휘종, 송흠종, 그리고 도사 곽경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나라를 망하게 했습니다. 이 세 인물을 중심으로 당시 역사를 되짚어 봅니다.
정강의 변 - 뜻, 원인
'정강의 변'의 뜻은 "정강년(1126년)에 일어난 사건"이란 뜻입니다. 정강은 당시 중국 송나라 왕의 연호를 말합니다. 송나라는 역사상 가장 부자였던 나라로 꼽힙니다. 하지만, 당나라 말기가 온통 반란의 연속이었으므로 송나라는 지방의 군사력을 억제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방이 약해지는 약점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화려하고 부귀했던 북송시대의 송나라 모습 [북송멸망 정강의변 송휘종 송흠종 곽경] / ⓒ 청명상하도)
정강의 변이 발생한 시대의 국제관계는 매우 혼란했습니다. 우리나라로는 고려시대인데, 이때 북쪽에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강성했고, '여진족'의 '금나라'가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송나라는 요나라의 횡포에 시달리다가 금나라를 이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이이제이(以夷制夷)'입니다. 송나라는 금나라를 부추겨서 요를 치자고 했습니다.
(송나라 북송시대의 고려, 요나라와의 국제관계 [정강의변 송휘종 송흠종 북송멸망 곽경] / ⓒ 玖巧仔)
송나라 휘종의 목적은 요나라에게 빼앗긴 '연운 16주'를 되찾고, 요나라에게 받치던 조공을 그만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지도부가 엉망이라 금과의 연합작전에서 송은 전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금나라는 요나라에게서 찾은 16주 중에서 6주만 돌려주고는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했습니다.
(송나라 남송시대의 고려, 금나라와의 국제 정세 모습 [정강의변 곽경 북송멸망 송휘종 송흠종] / ⓒ 玖巧仔)
송나라 휘종은 금나라의 뒤통수를 치기로 했습니다. 패해서 달아난 요나라 왕 '천조제'에게 같이 금을 치자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후 요나라 천조제가 금나라에 사로잡혀서 이 사실을 다 말해버렸습니다. 화가 난 금나라 '아골매' 왕은 군사를 동원해서 송나라 휘종을 공격하기에 이릅니다.
황당한 왕들 - 송나라 휘종, 흠종
송나라 휘종은 글, 그림, 음악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가입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왕이 된 탓에 정치에 관심이 없고 도교에 빠져있었습니다. 문제는 간신과 무능한 신하들도 넘쳐났다는 것인데, 국방이 허술하여 요나라와 금나라 사이에서 계속 얻어터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평화는 경제적으로 부유했기 때문에 돈을 바치고 얻은 평화였습니다.
(북송 수도 카이펑은 변량이라고도 하며, 지금은 중소도시가 되어 있다 [북송멸망 정강의변 송휘종 송흠종 곽경] / ⓒ Peter Griffin)
하지만 이이제이 전략을 들킨 후, 화가 난 금나라 아골매가 1125년에 송나라로 쳐들어왔습니다. 금나라 군이 수도 '카이펑' 시에 근접하자 갑자기 송휘종은 아들 조항에게 왕자리를 넘겨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연호가 '정강'으로 바뀌게 됩니다. 얼덜결에 왕이 된 '흠종(조항)'도 도망치려고 했지만 신하들이 막아서서 할 수 없이 남았습니다.
(요나라 마상제를 표현한 그림. 요나라는 거란족이 세운 나라이다 [정강의변 송휘종 송흠종 북송멸망 곽경] / ⓒ Unknown)
송흠종은 강화파의 말에 따라 금과 화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금나라는 각종 조공을 바칠 것을 요구했고, 송나라는 큰아버지처럼 금나라를 모시겠다는 조약을 맺었습니다. 당시 송나라에는 100만이 넘는 병력이 있었고, 그중 적어도 20만 명의 병사가 송나라 수도 카이펑으로 모였지만, 겨우 6만의 금나라가 무서워서 굴욕적인 조약을 한 것입니다.
(금나라 국민들의 모습. 금나라는 여진족이며 나중에 청나라를 세운다 [정강의변 곽경 북송멸망 송휘종 송흠종] / ⓒ Unknown)
금이 물러가자 송흠종은 아버지 송휘종을 다시 모셔왔지만, 사실은 휘종이 지방에서 새나라를 세울까 봐 겁이 나서였습니다. 흠종은 아버지처럼 사치를 부리지 않았지만 겁이 많고 무능했습니다. 금이 물러났지만 송나라의 정치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금과 싸우자는 주전파와 화친하자는 강화파가 싸움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공격을 할 국방력도 없었고, 화친을 할 외교술도 없었습니다.
북송 멸망의 원인 - 도사 곽경
금나라의 첫 번째 공격에서 조카의 예를 맺은 송나라는 금과 싸우자는 주전파의 힘이 커지면서 금나라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때 또 한 명의 황당한 인물이 나타나니, 사람들은 그를 도사 '곽경'이라고 불렀습니다. 도술을 부린다 하여 도사라고 불렀는데, 수많은 북송 멸망의 원인들 위에 마침표를 찍어준 인물이 되었습니다.
(중국 드라마에 나오는 도사 곽경의 모습. 카이펑이 점령당하자 도망쳤다 [북송멸망 정강의변 송휘종 송흠종 곽경] / ⓒ sohu.com)
도사 곽경은 스스로 '육갑법'의 달인이라면서 도술로 금나라를 진압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송휘종과 송흠종이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는 것입니다. 1126년, 송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금나라는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권력을 받은 도사 곽경은 길일의 생일을 가진 7777명의 "신의 병사"를 뽑아서 카이펑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송나라 휘종과 흠종의 초상화. 금나라에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다 [정강의변 송휘종 송흠종 북송멸망 곽경] / ⓒ Unknown)
도사 곽경은 전투도 길일을 골라서 해야 한다며 금나라 군이 수도까지 오도록 내버려두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금의 병력이 카이펑을 포위하자 흰옷을 입은 7777명의 도술 병사들이 성문을 활짝 열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7777명은 순식간에 몰살당했습니다. 송나라 수도 카이펑의 백성들은 학살을 당했고 송흠종과 송휘종은 사로 잡혔습니다. 그 사이 도사 곽경은 몰래 도망가버렸습니다.
(북송의 멸망 후 금나라로 끌려가는 휘종, 흠종의 모습을 그린 그림 [정강의변 곽경 북송멸망 송휘종 송흠종] / ⓒ Unknown)
이렇게 해서 카이펑을 수도로 하던 북송이 멸망했는데, 정강의 변의 원인인 송휘종과 흠종 뿐만 아니라 1만 4천 명이 금나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북쪽은 금나라의 영토가 되었고 송흠종의 동생 '조구'가 남쪽에 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남송'입니다. 하지만 송휘종과 흠종은 평생 되돌아오지 못하고 포로로 살다가 죽어갔습니다. 역사에서 이렇게 황당한 멸망사를 가진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