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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제와 등통 : 한나라 문제의 꿈에 나타난 황두랑의 등씨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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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제와 등통 : 한나라 문제의 꿈에 나타난 황두랑의 등씨전

키스 키스세븐 2017.07.1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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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제와 등통 : 한나라 문제의 꿈에 나타난 황두랑의 등씨전]

옛날 한나라에는 등씨전이라는 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돈의 명칭은 한나라 문제의 꿈에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총애를 받은 황두랑(등통)의 이름이었습니다. 뱃사공이었다가 마음대로 돈을 찍어 쓸 정도로 총애를 받은 등통과 한 문제의 이야기는 운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오랜 고사이기도 합니다. 


[글의 순서]

1. 한나라 황제의 꿈에 나타난 황두랑

2. 한 문제와 등통의 일화

3. 한나라 문제 이후의 등통의 운명






한나라 황제의 꿈에 나타난 황두랑


중국의 옛말 중에 '동산(銅山)'이란 말은 "산에서 동(銅)이 채굴되니 가만히 있어도 놀고먹을 수 있는 산"이란 뜻입니다. 당시에 돈을 만드는 재료가 구리(동)였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겼는데, '등씨전'의 뜻도 여기에 얽혀 있습니다. 

등씨전은 '한나라 문제' 때 실제로 사용된 돈입니다. 구리 동산에서 "등"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돈을 만들어서 사용했기 때문에 등씨전이라고 불린 것입니다. 그리고 동산에서 등씨전을 만들어 떵떵거리면 살았던 사람이 바로 '등통'입니다. 


사진: 한 문제의 총애를 받은 등통의 모습. 너무나 총애를 받은 나머지 개인이 돈을 만들어 쓸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고 한다. [한나라 황제의 꿈에 나타난 황두랑](사진: 한 문제의 총애를 받은 등통의 모습. 너무나 총애를 받은 나머지 개인이 돈을 만들어 쓸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고 한다. [한나라 황제의 꿈에 나타난 황두랑] / ⓒ kknews.cc)


중국 '한나라'는 기원전 200년 전후에 있었으며, 현재 중국인이 자신들의 "뿌리"로 삼고 있는 나라입니다. 

보통 '문제' 황제라고 하면 '수나라'의 문제를 말하지만, 한나라 문제는 기원전 180년 정도에 살았던 한나라의 제5대 왕입니다. 한 문제의 아버지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며, 아들은 '경제'입니다. 성격이 검소하고 '도가'의 "노장사상"을 바탕에 둔 정치를 하였으며, 한 경제와 함께 국력을 키운 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사진: 한나라는 전한과 후한으로 나뉜다. 유방이 처음 세운 후의 한나라를 전한이라고 하고, 위촉오 삼국으로 나뉜 한나라를 후한이라고 한다. 결국 유비, 조조, 손권의 각축 속에 사라진다. [한나라 황제의 꿈에 나타난 황두랑](사진: 한나라는 전한과 후한으로 나뉜다. 유방이 처음 세운 후의 한나라를 전한이라고 하고, 위촉오 삼국으로 나뉜 한나라를 후한이라고 한다. 결국 유비, 조조, 손권의 각축 속에 사라진다. [한나라 황제의 꿈에 나타난 황두랑] / ⓒ 편집 : www.kiss7.kr)


'한 문제'와 등통의 관계는 어느 날에 문제가 꾼 꿈에서 시작됩니다. 한나라 문제는 꿈속에서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도가사상을 믿었던 그에게는 신선이 되는 꿈인 셈입니다. 그런데 거의 다 올라갔을 쯤부터는 도무지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로 오르려고 애를 써 도 소용없던 그 때, 뒤에서 누군가가 밀어 주어서 결국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도와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뒤 돌아보았으나, 얼굴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허리 부분의 옷 솔기가 터져 있는 것만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 한나라의 유물. 한나라는 중국인들이 스스로의 뿌리로 여기는 나라이다. 그만큼 중국적이고 영향력이 많은 역사 속의 나라이다. [한나라 황제의 꿈에 나타난 황두랑](사진: 한나라의 유물. 한나라는 중국인들이 스스로의 뿌리로 여기는 나라이다. 그만큼 중국적이고 영향력이 많은 역사 속의 나라이다. [한나라 황제의 꿈에 나타난 황두랑] / ⓒ Chinanews.com)


꿈에서 깬 한 문제는 자신을 도와 준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 하며 왕궁 전망대로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배에서 노를 젓는 직책인 '황두랑'이 지나기에 그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나라 문제는 황두랑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허리 쪽 옷 솔기가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이 터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한나라 황제의 꿈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황두랑을 총애하며 아끼게 되었습니다. 이 황두랑이 바로 등통이며 한 문제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한 문제와 등통의 일화


옛 기록에 의하면 등통은 중국 서남부의 남안현이라는 지방에서 온 사람으로, 노를 잘 저어서 황두랑(黃頭郞)을 맡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노를 잘 젓는다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 문제의 꿈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 인생이 달라진 등통은 새로운 재주를 보였습니다. 그것은 황제에게 아첨하는 재주였습니다. 심지어 한 문제가 종기를 앓고 있었는데, 잘 짜지지 않자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기까지 했습니다. 황제는 그를 크게 믿으며 '상대부'라는 관직을 주었습니다.


사진: 진나라 후기 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유통된 일명 반량전. 한나라 문제는 기원전 200년 경의 사람이고, 등씨전은 그 사이에 유통된 화폐이다. 이외에도 명도전, 오수전 등이 유명하다. [한 문제와 등통의 일화](사진: 진나라 후기 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유통된 일명 반량전. 한나라 문제는 기원전 200년 경의 사람이고, 등씨전은 그 사이에 유통된 화폐이다. 이외에도 명도전, 오수전 등이 유명하다. [한 문제와 등통의 일화] / ⓒ xuite.net)


다음 왕이 될 '한 경제'는 아버지가 아첨만 잘하는 등통에게 놀아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사기열전에 의하면, 종기를 입으로 빨아내면 시원하다고 생각한 한 문제가 경제에게 종기 고름을 입으로 빨아달라고 명하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황제는 꿈에 나타난 등통의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열 번도 넘게 수많은 돈을 내려주었는데, 경제 뿐 아니라 신하들도 보는 눈이 곱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수시로 등통을 불러서 함께 했고, 황두랑은 아부를 떨며 기쁘게 만드는 세월이 계속되었습니다. 


사진: 한나라 문제의 초상. 한나라 황제의 꿈과 황두랑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등통은 개인적인 충성을 다한 황두랑인데 운명과 농단이라는 측면의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다. [한 문제와 등통의 일화](사진: 한나라 문제의 초상. 한나라 황제의 꿈과 황두랑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등통은 개인적인 충성을 다한 황두랑인데 운명과 농단이라는 측면의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다. [한 문제와 등통의 일화] / ⓒ 미상)


그런데 어느 날, 한 문제가 관상가와 만난 자리에서 등통의 관상을 보는 일이 생겼습니다. 관상가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황두랑을 감히 "굶어 죽을 상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최고의 권력자인 황제가 그토록 아끼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다는 말을 하다니 한나라의 문제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황제는 꿈에 나타나 도와준 등통을 보살펴야겠다고 생각하고 '동산'을 하사했습니다. 더불어 마음대로 돈을 만들어 쓸 수 있도록 허락하니, 이것이 한나라의 등씨전입니다. 


사진: 한나라 시대의 동 채굴 광산터의 모습. 당시는 동, 즉 구리로 돈을 만들었다. 철기문화가 흔해지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한나라 문제는 등통에게 이렇게 중요한 동산을 주었다고 한다. [한 문제와 등통의 일화](사진: 한나라 시대의 동 채굴 광산터의 모습. 당시는 동, 즉 구리로 돈을 만들었다. 철기문화가 흔해지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한나라 문제는 등통에게 이렇게 중요한 동산을 주었다고 한다. [한 문제와 등통의 일화] / ⓒ Amarespeco)


돈을 국가가 관리하지 않고 개인에게도 허락한다는 것은 거의 보기 힘든 일입니다. 황두랑 등통은 등씨전을 만들어 배불리 먹고 살았으며, 한나라 문제의 치하에서 등씨전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그래도 한 문제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지 또 하나의 대비책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누이인 '장공주'에게 만일 자신이 죽으면 등통이 굶어죽지 않도록 보살펴달라고 부탁까지 해 놓았습니다. 한나라 황제의 꿈에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한나라 문제 이후의 등통의 운명


황제에게 충성하여 온갖 보살핌을 다 받으면서 호화생활을 하게 된 뱃사공 등통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운명도 바꿀 수 있는 것일까요?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보면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최고책임자가 객관적인 중심을 벗어났을 때의 문제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후세의 역사가들도 허구가 많이 섞인 일화라고 말하지만 운명론과 개척론의 드라마틱한 관심은 어쩔 수 없습니다. 


사진: 중국 고대 화폐인 오수전의 모습. 우리나라에서 명도전, 오수전 등이 발굴된다는 것은 중국과 활발한 무역을 했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돈을 '천' 또는 '등씨'라고 하는 때도 있었다. [한나라 문제 이후의 등통의 운명](사진: 중국 고대 화폐인 오수전의 모습. 우리나라에서 명도전, 오수전 등이 발굴된다는 것은 중국과 활발한 무역을 했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돈을 '천' 또는 '등씨'라고 하는 때도 있었다. [한나라 문제 이후의 등통의 운명] / ⓒ hsuanhaocoin)


결국 한 문제에게도 운명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병에 걸려 죽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중 삼중으로 등통이 굶어죽지 않도록 대비해 놨으니 걱정은 덜했습니다. 황두랑 등통은 지금도 부자이고, 등씨전을 가지고 앞으로도 부자일 것이며, 장공주의 보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부자일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문제 자신에게서 나왔습니다. 다음 황제로 즉위한 아들 경제가 한나라 문제의 등통을 벼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진: 한 경제의 모습. 문제의 뒤를 이어서 한나라의 경제가 나라를 맡았다. 그러나 총애를 받았던 등통을 싫어했으므로 그의 재산을 몰수했다고 한다. [한나라 문제 이후의 등통의 운명](사진: 한 경제의 모습. 문제의 뒤를 이어서 한나라의 경제가 나라를 맡았다. 그러나 총애를 받았던 등통을 싫어했으므로 그의 재산을 몰수했다고 한다. [한나라 문제 이후의 등통의 운명] / ⓒ tokitank.com)


한 문제가 죽자 등통은 벼슬을 그만두고 가버렸습니다. 조정에 남아 있어봐야 할 일도 없었거니와, 그동안 보는 눈들이 좋지 않았으니 겁을 먹고 낙향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 경제는 이런 저런 구실로 등통의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등통의 재산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글에서는 장공주를 만나기도 전에 진짜로 굶어죽었다고도 하지만, 사마천은 한나라 문제가 없는 등통은 말년을 궁핍하게 살다가 외롭게 죽었다고 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운명론과 개척론은 팽팽한 주장이다. 역사란, 어떻게 보면 운명론적이고 어떻게 보면 개척론적이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 보면 결국 운명론과 개척론은 하나의 뿌리임을 알 수 있다. [한나라 문제 이후의 등통의 운명](사진: 운명론과 개척론은 팽팽한 주장이다. 역사란, 어떻게 보면 운명론적이고 어떻게 보면 개척론적이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 보면 결국 운명론과 개척론은 하나의 뿌리임을 알 수 있다. [한나라 문제 이후의 등통의 운명] / ⓒ Alexandra)


운명은 정해져 있기도 하고, 개척론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사실 그 자신 때문입니다. 한 문제와 등통이 아무리 운명을 지키려고 한들 자신이 뿌린 씨앗은 결국 자신이 거두게 되는 법입니다. 애초에 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나라 문제가 형평성 있게 바뀌었다면, 만약 등통이 개인에게만 충성하는 버릇을 고쳤다면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운명이란 정해져 있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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