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MF 외환위기 정리 - 영화 <국가부도의 날> 실화]
1997년 국가부도의 날을 우리는 IMF라고 부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외환위기입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 자체를 바꿔버린 대재앙을 다시 정리해 봅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실화인 한국 IMF 외환관리 사태는 신세대가 잘 모르는 사태였으므로 순서대로 정리했습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실화
초반에 '오일쇼크'가 있었으나 1970년대~1980년대는 대체로 국제 경기가 좋았습니다. 국제적 "저금리"로 싸게 돈을 빌려와서 산업시설을 지을 수 있었고, 점차 "저유가"가 되며 물건을 싸게 만들 수 있었으며, "엔고 효과"로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한국은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빚을 져도 계속 투자하면 계속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부실한국의 상징인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모습 [영화 국가부도의 날 실화 한국 IMF 외환위기] / ⓒ 소방재난본부)
경제 민주화가 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에는 정치와 기업들이 뇌물과 접대로 자기 재산의 4~5배를 대출받기도 했었습니다. 더구나 단기 외채는 마구 가져와도 정부가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IMF 때까지도 얼마를 빌려왔는지 파악도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종금사들은 단기 외채를 빌려와서 장기로 대출을 해주었습니다. 국내 외환보유고는 겨우 300억 달러였는데 해외에 빌려준 달러는 1700억이나 되었니, 정작 외국에 갚아야 할 때는 달러가 없어서 IMF 외환위기를 겪게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부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실화 한국 IMF 외환위기 영화 국가부도의 날] / ⓒ 최광모)
더구나 1990년대는 경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경상수지는 적자에 빠졌는데 OECD에 가입하며 준비도 없이 자본 개방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1997년 초에 부채비율 2천% 이상의 한보가 부도났습니다. 이후 삼미, 진로, 한라, 해태 등이 줄줄이 부도났고 기아사태의 부도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적어도 12조 원 이상이 고중 분해되었습니다. 정부는 부실 경제를 억지로 감추느라고 가진 달러를 마구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IMF 구제금융 전후의 부도를 전하는 TV뉴스 장면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실화 한국 IMF 외환위기] / ⓒ KBS MBC SBS 편집 www.kiss7.kr)
문제는 미국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적자를 메꾸려고 외국을 압박하더니 금리를 높여버렸습니다. 일본 경제가 안 좋았던 시기에 동남아시아에 투자됐던 국제자본이 금리 이익을 보려고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또한 엔저 현상으로 경쟁력을 회복한 일본으로도 향했습니다. 그러자 태국이 달러 외환위기로 휘청했고 다른 국가에도 퍼지더니 한국을 강타했습니다. 한국 IMF 외환위기는 이유가 안팎으로 있었습니다.
1997년의 한국 IMF 외환위기
태국이 외환위기를 겪게 된 것은 수출실적을 고집하기 위해 억지로 달러를 쏟아부어서 태국 돈의 가치를 유지하려고 했던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도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전에 경제가 부실해져서 외환보유고가 적으니 늦은 일이었습니다. 한국 IMF 외환위기 원인은 관리에 무능한 정부, 부실한 기업, 외국 투자금의 달러 유출인 것입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실화는 이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국가의 부도의 날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포스터 [실화 한국 IMF 외환위기 영화 국가부도의 날] / ⓒ 최국희)
빠져나가는 달러를 사기 위해 원화를 계속 투입할수록 달러가 더 비싸져서, 결국은 더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미국 금리가 촉발점이 되어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진 후, 한국은 일본에서 돈을 빌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공개적 기록에 의하면 미국의 반대로 일본이 융통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97년 12월, 한국은 미국계 자금인 IMF를 신청하게 됩니다. 이런 흐름 때문에 "미국 음모설"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나오는 IMF 미국 음모설이 이것입니다.
(1997년 11월, IMF 구제금융 신청을 보도한 신문 [영화 국가부도의 날 실화 한국 IMF 외환위기] / ⓒ 부산일보)
한국은 IMF 외환위기 지원을 받아들이는 대신 '긴축재정'과 '구조조정'을 해야 했습니다. IMF는 환율을 고정하고 30%대의 고금리를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시중의 자금을 끌어모아 안정시키는 역할은 있었지만 기업에게는 사형선고였습니다. 환율 때문에 수출이 나아지지도 않는데, 이자율 때문에 갚아야 할 돈이 더 필요해진 것입니다. 결국 1998년 상반기에만도 1만 개의 기업이 부도처리되었습니다.
(IMF 후 자살한 중소기업 사장의 가족들 [실화 한국 IMF 외환위기 영화 국가부도의 날] / ⓒ MBC)
한국의 IMF 외환위기 전 30대 대기업 중에서 대우, 쌍용 등 17개 그룹이 퇴출당했습니다. 또한 동화, 대동 등 9개의 은행들도 문을 닫거나 흡수되었습니다. 은행이 망한다는 것은 IMF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각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한다며 대규모 권장 퇴직을 실시했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고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자살률은 150%나 증가되었습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실화는 영화보다 수십 배 참혹했습니다.
한국 외환위기의 극복, IMF의 문제
한국 IMF 외환위기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가장 혹독한 치욕을 겪었습니다. 국가의 경제권을 지배받았으니 말입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는 미국 음모설도 나오지만, IMF 원인으로 보기에는 아직 증거가 적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일본과 미국이 저가 상품에서 이득을 본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한국 기업과 부동산, 산업시설 중에는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헐값에 외국자본 지배로 넘어가는 것도 많았습니다.
(IMF 국제통화기금 금융지원을 공식 발표하는 순간 [영화 국가부도의 날 실화 한국 IMF 외환위기] / ⓒ 국내방송사)
기업 소유주들에게도 혹독했지만, 그중에서 현찰을 가진 이들은 오히려 더 부자가 되었습니다. 말도 안 되게 싸게 나오는 부동산과 빌딩 등을 사재기했다가 IMF 외환위기를 졸업할 때 비싸게 팔아넘겼습니다. 더구나 금리가 높았기 때문에 그들 중에는 한국 IMF 외환위기가 오래갔으면 좋겠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에서 헐값 매매로 600억 원의 차익을 거뒀는데,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도 아직도 모릅니다.
(줄을 서서 금을 헐값에 내놓는 국민들의 금모으기 운동 당시 방송 [실화 한국 IMF 외환위기 영화 국가부도의 날] / ⓒ MBC)
한국은 IMF 외환위기로 130만 명의 실업자가 생기며 서민들의 고통이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정경유착을 했던 정치인들도, 부실한 경영을 했던 기업인들도 국가부도의 날 이후 처벌받은 사람은 몇 없습니다. 오히려 다음 정부가 훼방을 놓아서 대처를 못 했다는 핑계를 대는 정치인들이 많았고, 기업이 망해도 개인 자금을 빼돌려서 여생을 편히 보낸 기업인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나라가 망해도 돈놀이에 혈안인 자들은 오히려 빈부격차만 벌려 놓았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사치" 때문에 IMF가 왔다고 적은 교과서가 있었습니다.
(국민의 사치 때문에 IMF를 겪었다는 교과서와 교육자료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실화 한국 IMF 외환위기] / ⓒ 교과서)
어찌 되었든... 혹독한 시련 끝에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2001년에 끝냈습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은 IMF를 가장 성공적으로 잘 이용한 나라이기도합니다. 하지만 IMF가 외국자본 부족으로 파산한 한국을 내부 산업 때문에 파산한 국가처럼 다루어서 더 많은 피해를 입혔다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이 때문에 이후의 IMF는 많은 비판을 받았고, 지원 조건과 방법도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IMF 극복의 공로자를 꼽자면, 월급이 깎이고 해고당하면서도 금까지 모아준 "국민"이라는 결론으로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