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도호 납치사건 (일본 351편) - 공중납치로 평양에 간 적군파]
일본도 한 때 거친 공산사회주의 운동이 있었습니다. 일본 적군파는 일본 공산화를 위해 활동하던 조직으로, 후지산 상공에서 항공기를 납치하여 평양으로 도주한 적도 있었습니다. 일본 요도호 납치사건은 일본항공 351편을 납치해서 평양에 간 무모한 납치범들의 일화입니다.
[엮인 글]
일본 적군파 하이재커
지금은 그 세력이 희미하지만, 한때 일본에도 공산주의 혁명세력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를 공부하고 혁명을 일으켜서 일본을 공산화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반기파', '정황파' 등도 있었으나 일본 '적군파'는 무력투쟁을 주장하는 조직이었고, 군대를 조직하여 테러리스트 활동도 하였습니다.
1970년에는 일본 351편 항공기 납치 사건을 벌였는데, 내용을 알고 나면 황당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일명 '요도호 납치사건'으로 유명했던 사건인데, 후쿠오카로 향하던 비행기를 후지산 상공에서 공중 납치하여 평양으로 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적군파 하이재커들의 계획을 알고 보면 미숙하고 무모하기 그지없었습니다.
10대 1명을 포함한 9명의 일본 적군파는 351편의 공중납치에 성공했습니다. 후지산 상공에서 총을 들이대고 항로를 변경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으로 가서 혁명 테러를 위한 훈련과 지원을 받아내기 위함입니다. 120여 명의 승객을 인질 삼아서 일본 당국의 저지선을 뚫으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일본항공 351편의 납치범들은 일본칼, 총, 폭탄 등으로 위협을 했습니다. 요도호 공중납치사건을 성공한 후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이 적군파들이 가진 총은 장난감 모형이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무기로 위협하는 상황에 실험을 해볼 수도 없겠지만, 장난감 총으로 항공기를 하이재킹하고 공산독재국가로 가려는 계획을 세운 적군파들도 참으로 황당한 자들이었습니다.
어설픈 요도호 납치사건
침착한 기장은 머리를 짜내어 국내선 비행기이므로 국외까지 갈 수 없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사실은 바로 옆 나라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적군파 하이재커들은 그 말을 믿고 '후쿠오카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일본 당국은 요도호 납치사건을 해결 지으려고 해지만,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테러사건이 나기 전까지 전 세계가 대테러부대를 만든 적이 없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기장의 설득 끝에 노약자들을 먼저 내리게 하는 데 성공했으나, 결국 공중납치당한 일본항공 351편은 평양으로 향했습니다. 적군파는 국내선 기장에게 참고하라며 북한 평양으로 가는 지도를 줬습니다. 그것은 기장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황당해할 지도였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 자들이 준비한 지도라는 것이 중학생들이 학습용으로 보는 간단한 지도였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일본항공 351편 요도호는 공중 납치되어 북위 38선을 넘었습니다. 하이재커 일본 적군파들은 이제 평양에 들어가는 줄 알았지만 이것도 오판이었습니다. 6.25전쟁 후 휴전선은 동쪽이 북으로 더 올라가 있습니다. 38선을 넘었다고 해서 아직 북한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강원도 상공에서 날고 있을 때 국외선에 익숙지 못한 부조종사까지 착각을 해서 서쪽으로 기수를 꺾었습니다.
서쪽이 평양인 줄 알고 날아가던 요도호는 서울로 날아갔습니다. 때마침 남한 당국은 평양에 왔으니 착륙 지도를 하겠다는 무선을 보냈습니다. 이 허술한 일본 적군파들은 영어는커녕 남한말과 북한말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순조롭게 평양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평양공항으로 착각한 김포공항에 일본항공 351편은 무사히 착륙을 하였습니다.
일본 351편 공중납치범의 결말
이렇게 하이재커 적군파를 향한 대사기극이 펼쳐졌습니다. 남한 당국은 김포공항에 "평양 도착 환영"이라는 플랜카드를 내걸고 북한군 복장을 한 군인을 배치했습니다. 일본 당국도 이 상황을 알고는 멍청한 하이재커 적군파를 남한이 잘 처리해 주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도 승객들에게 '레닌 전집' 책을 빌려주고 있었던 일본 적군파들은 나중에야 평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한국 당국은 비행기 재시동에 필요한 조치를 거부했고, 요도호 공중납치 하이재커들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이들과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일본어밖에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의 운수성 차관이 개입했습니다. 그리고 순진한 인질범들과의 협상을 통해 승객들과 운수성 차관을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129명의 승객은 안전하게 풀려나서 일본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고, 요도호 납치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다시 북한 평양으로 출발한 요도호는 드디어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일본은 북한과 접촉하여 인도적인 차원에서 도와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북한은 공중 납치된 요도호가 내리자 무기를 먼저 버리도록 했습니다. 장난감모형 무기를 압수한 담당자도 황당해 했을 것입니다. 북한은 일본 적군파들을 망명자로 받아들이고 비행기와 승무원 등을 일본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요도호 납치사건 이후에는 9명의 하이재커 납치범들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었습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17세의 소년은 나중에 일본에 간첩으로 들어갔다가 잡혀서 감옥에 갔었습니다. 3명은 북한 밖에서 불법을 저지르다가 국제적 지배수배를 받고 있고, 그 외 3명 정도는 병 등의 이유로 이미 죽었으니, 공산혁명 군사훈련을 받으려는 목적은 완전히 실패하였습니다. 한때 허망한 꿈을 꾸던 일본 적군파는 이제 세력을 잃고 사라져 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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