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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과 영월부사 박충원 - 귀신 이야기와 엄흥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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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과 영월부사 박충원 - 귀신 이야기와 엄흥도

키스세븐지식 2018. 5. 1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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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과 영월부사 박충원 - 귀신 이야기와 엄흥도]

단종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원통하게 죽었습니다. 삼촌에 의해 죽어간 단종과 영월부사 박충원의 이야기는 그러한 원통함을 가졌기에 백성들에게 남아서 이어져 왔습니다. 단종은 청령포 생활 후 사약을 받았는데, 야사에는 귀신 이야기로 남아서 전해 옵니다. 






영월부사 박충원과 단종


'중종' 36년인 1541년 '박충원'은 '단종'의 영월에 군수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월은 민심이 매우 안 좋았습니다. 부임했던 영월군수들이 연달아 세 명이나 급사를 하자 관리들은 영월부사로 부임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박충원 영월부사가 부임 후 단종의 묘에 제사를 지냈고, 그 후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사진: 단종의 어진. 단종은 세조에게 쫓겨났다가 교살되었다고 한다.(사진: 단종의 어진. 단종은 세조에게 쫓겨났다가 교살되었다고 한다. [박충원, 단종, 청령포, 영월] / ⓒ 김호석)


그리고 단종과 박충원 영월부사의 "귀신 이야기"는 <금계필담> 등의 야사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새로 부임한 사또가 귀신을 보고 급사한다는 귀신 이야기는 다른 전설에서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영월부사들이 연달아 세 명이나 급사하는 것은 선조실록에 실제로 기록된 내용입니다. 또한 단종에 대한 안타까움은 당시 백성들에게 강하게 남았기 때문에, 무속에서 단종은 신령으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단종과 박충원 귀신이야기


단종의 영월에 박충원 영월부사가 부임한 후 사람들은 궁금해 했습니다. 세 명이나 군수가 연달아 죽어나간 이곳에서 과연 박충원은 살아남을 것인가는 관심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박충원이 영월에서의 첫날을 맞는 밤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들더니 등골이 오싹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박충원은 이것이 영월부사들의 죽음의 원인인가 보다 직감을 하였습니다. 


사진: 강원도 영월의 모습. 수려한 경치가 일품이다. 단종은 청령포에서 살았다.(사진: 강원도 영월의 모습. 수려한 경치가 일품이다. 단종은 청령포에서 살았다. [영월, 청령포, 단종, 박충원] / ⓒ MyungHyun Kim)


그런데 정신을 추려 다시 보니 곤룡포를 입은 귀신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비록 귀신이었으나 왕의 옷을 입었으니 박충원은 넙죽 엎드려 예를 갖추었습니다. 귀신은 말하였습니다. "내가 죽을 때 목을 조른 활줄이 아직도 답답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박충원 영월부사는 단종의 귀신임을 알고 그간의 연유를 여쭈었습니다. 단종은 신임 부사들에게 부탁을 하려고 찾아왔으나, 보는 즉시 놀라서 죽어버리더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진: KBS 드라마 중의 단종 연기. 단종은 12세에 왕이 되었다.(사진: KBS 드라마 중의 단종 연기. 단종은 12세에 왕이 되었다. [단종, 영월, 박충원, 청령포] / ⓒ KBS)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단종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지난 1457년 '사육신 사건' 이후, 삼촌 세조는 단종에게 사약을 내렸으나, 열일곱 살의 소년 단종이 이를 거부하자 목 졸려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슬 퍼런 쿠데타 세력이 무서워서 아무도 단종의 시신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단종의 귀신이 활줄을 말한 것은 죽을 때에 목을 조른 줄이 아직도 시신에 감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사육신의 비석.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어 비참하게 죽었다.(사진: 사육신의 비석.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어 비참하게 죽었다. [사육신, 단종, 엄흥도, 영월] / ⓒ Asfreeas)


영월부사 박충원은 단종에게 시신을 찾을 방도를 물었습니다. 단종은 '엄흥도'를 찾아가라고 하고는 사라져버렸습니다. 박충원은 즉시 엄흥도를 찾았습니다. 흠칫 놀란 엄흥도는 몰래 단군의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박충원은 단종의 묘를 다시 만들고 장사 지내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단종의 원한은 풀리게 되고, 세조에 의해 왕조 계보에서 지워졌던 단종은 숙종시대에 와서 정식으로 복위되었다는 얘기입니다. 





단종과 엄흥도, 장릉의 사연


사또의 명을 받는 호장이라는 말단 관직에 있었습니다. 엄흥도는 단종이 교살된 후 버려진 시신을 안타깝게 여겨서 몰래 묘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세조의 보복이 두려워 아들과 도망가서 숨어 살았습니다. 나중에 단종이 복위된 후 엄흥도는 충신이라고 칭손 받았고 그의 후손들은 관직에 올라 양반으로 살았습니다. 영조와 고종 시대를 거치면서 엄흥도의 충절이 더욱 높이 인정되어 판서에까지 추대되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강원도 영월의 장릉. 장릉은 단종의 묘다.(사진: 강원도 영월의 장릉. 장릉은 단종의 묘다. [영월, 단종, 엄흥도, 박충원] / ⓒ Korea.net)


중종 무렵이 되어 세조가 금기했던 단종 언급이 풀리고 노산군(단종)의 무덤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영월부사 박충원이 단종의 무덤을 찾아내고, 그 공이 엄흥도에게도 인정되었습니다. 단종이 복위된 후 단종의 무덤은 '장릉'이라 하여, 현재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열두 살에 왕에 올라 열일곱 살에 비통하게 죽어간 단종의 넋이 비로소 위로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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