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 - 주디 갈란드의 비참한 인생 ... 주디 갈랜드]
한 시대를 주름잡은 배우의 비참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을 맡은 주인공 주디 갈랜드는 화려한 명성 뒤에서 안타깝고도 서글픈 사연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의 주디 갈란드는 어린 시절부터 성상납과 약물남용 속에서 살았는데, 어머니와 어른들의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어린 시절, 적어도 한 번 쯤은 들어봤었을 <Somewhere over the rainbow(무지개 너머 어딘가)>는 1939년의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가입니다.
가사를 보면 "모든 괴로움이 레몬 사탕처럼 녹아내리는 곳... 새들은 무지개를 넘어 가는데, 왜 나는 그럴 수 없을까"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가사는 실제로 오즈의 마법사의 `주디 갈란드`의 인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진: 도로시 역의 주디 갈란드(주디 갈랜드)는 1939년 이후 귀여운 소녀의 이미지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 skeeze)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디 갈란드(Judy Garland)는 1922년에 태어나서 48년 동안 겪을 수 있는 고통이란 고통을 다 겪었습니다.
최고의 뮤지컬 배우로서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불우한 가정, 성상납, 학대, 약물중독, 불안정한 심리, 불행한 남자관계, 이용당한 혹사 등 온갖 불행을 다 체험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사진: 십대의 주디 갈란드 모습. 스타탄생과 오즈의 마법사는 주디 갈란드의 대표작이다. / ⓒ Insomnia Cured Here)
주디 갈란드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역으로 아카데미 아역상을 수상한 이후, 영화 <스타탄생>으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타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그래미상, 토니상도 수상하며 가수 및 뮤지컬 배우로서 최고의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오가는 듯한 인생을 산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의 주디 갈란드
본명이 `프랜시스 에설 검`인 주디 갈란드는 빌보드 배우인 아버지와 스타가 되고 싶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가정을 가지고도 동성연애를 하였지만, 주디를 아껴주었기에 그나마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를 보냈습니다.
문제는 열세 살 때 아버지가 죽은 후, 딸을 성공시켜서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어머니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사진: 주디 갈란드(주디 갈랜드)의 어버지와 어머니의 사진. 하지만 둘 다 그녀에게는 인생의 어둠을 남긴 사람들이었다. / ⓒ Bio.com)
이미 3살 때부터 언니들과 공연했고, 어린 시절부터 가창력을 인정받아서 단독으로 나이트클럽 등에서 공연했지만, 어머니는 더 큰 성공을 위해 헐리우드로 데리고 가서 MGM과 노예 같은 계약을 했습니다.
가창력과 연기력은 최고였지만 얼굴이 예쁜 편은 아니었기에 많은 출연을 했어도 인지도는 그저 그랬습니다.
(사진: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디 갈란드. 원작 동화를 바탕으로 1939년과 1985년에 영화화 되었다. / ⓒ Victor Fleming)
소속사를 정하면서 주디 갈란드가 간 학교에는 1세기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다는 미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있었고 `에바 가드너` 등 쟁쟁한 여배우가 될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어린 주디 갈란드는 그로인해 외모 콤플렉스를 겪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 남자나 관심만 주면 마음이 넘어가는 상황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사진: Gumm Sisters. 어린 시절의 주디 갈란드(주디 갈랜드)와 언니들이 공연을 다니던 때의 검 시스터즈 모습. / ⓒ Unknown)
당시 헐리우드는 무명배우에게 더욱 혹독해서, 실수를 하면 뺨을 맞아가며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역을 찍었습니다.
노예처럼 촬영에 동원되었고 피곤해서 졸면 각성제를 먹여서 촬영했습니다. 그러고 일과가 끝나면 다음 날 촬영을 위해 수면제를 먹여서 재워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생활이 미성년자인 주디 갈란드의 생활이었습니다.
(사진: 촬영장의 주디 갈란드.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 역을 할 때의 성상납 소문은 주변인의 전기를 통해 알려졌다. / ⓒ Victor Fleming)
더욱 큰일은 성접대였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의 주디 갈란드는 출세욕에 빠진 어머니의 주선으로 영화 관계자들과 자야했습니다. 더 많이 비중 있는 역을 따내기 위해 어머니는 갈란드를 침실로 넣었고, 영화 관계자들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못된 관행을 이어갔습니다.
화려한 스타가 되기 이전에 정신은 더욱 망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화려함 뒤의 망신창이
영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 역의 주디 갈란드는 영화의 성공으로 나름 명성을 얻었지만, 성공에 눈이 먼 어머니와 돈을 밝히는 소속사는 닥치는 대로 배역을 맡기며 혹사를 시켰습니다.
유부남에게 넘어가서 임신을 했을 때에도 어머니와 소속사는 연예계 활동에 지장을 주게 될까봐 강압적으로 낙태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사진: 미국 영화 협회에서 선정한 역대 10대 여성 스타 주디 갈란드(주디 갈랜드). / ⓒ Metro-Goldwyn-Mayer)
나중에 어머니와의 불화로 남남처럼 지내게 된 후에도 약물과 알콜중독, 자살 시도로 인해서 주디 갈란드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라는 화려함 뒤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섯 번의 결혼을 했지만 나쁜 생활이 몸에 밴 그녀는 안정된 가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접근하는 남자에게 쉽게 유혹 당했고, 그래서 가족들은 자살 소동으로 입원해도 병원조차 찾지 않았습니다.
(사진: 영화 스타탄생의 한 장면. 오즈의 마법사의 주디 갈란드는 스타탄생이라는 영화에서 최대의 전성기를 맞았다. / ⓒ George Cukor)
결국 소속사는 건강과 이미지가 나빠진 그녀를 버리다 시피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예 활동은 쉴 새 없이 이어졌습니다. 술과 약에 만취해서도 무대에만 올라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신하는 천부적인 무대체질 덕분에, 누구나 인정하는 뮤지컬계의 실력자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네 번째 남편마저 동성연애를 하면서 마지막까지 꼬여진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사진: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는 주제곡 섬웨얼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불렀는데, 아직도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 ⓒ cinematicparadox.com)
1969년 어느 날, 영화 오즈의 마법사와 주디 갈란드는 더 이상 성공신화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약물 과다로 인해 47세의 짧은 나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노래와 연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주디 갈란드는 누구나 인정할 스타였지만, 어른들의 나쁜 관행과 상업주의의 피해자로 전전하다가 인생을 모두 소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던 주디 갈란드는 미국 영화 협회에서 선정한 10대 여성스타로 선정되어 명예의 전당에 기록되었습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 - 주디 갈란드의 비참한 인생 ... 주디 갈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