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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탕산 대지진 - 숨겨진 20세기 최악의 탕산 지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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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탕산 대지진 - 숨겨진 20세기 최악의 탕산 지진

키스세븐지식 2017. 12. 2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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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탕산 대지진 - 숨겨진 20세기 최악의 탕산 지진]

2008년 중국은 쓰촨 성 대지진으로 큰 피해가 발생하여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중국에는 무려 30여 년을 숨겨 온 20세기 최악의 지진이 따로 있었습니다. 1976년 중국 탕산 대지진은 도시 하나가 거의 매몰되는 수준의 지진이었습니다. 




[글의 순서]

1976년 중국 탕산 대지진

탕산 지진의 비극

탕산 지진과 칭룽 시



1976년 중국 탕산 대지진


1970년대의 중국은 `마오쩌뚱(모택동)`이 `문화대혁명`에서 오직 중국만이 최고이며 중국문명으로 모든 것을 개척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속마음은 외국 문물로 개혁을 하려는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한 술책입니다. 

그리고 일명 `4인방`이 권력을 이어받았을 때 탕산 지진이 일어났는데, 지도부의 자존심 때문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습니다. 


사진: 직하형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탕산 시의 모습. 중국은 거의 30년 동안 국가기밀로 해 왔다.(사진: 직하형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탕산 시의 모습. 중국은 거의 30년 동안 국가기밀로 해 왔다. / ⓒ karapaia.com)


탕산 시는 베이징 인근의 허베이 성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지리학적으로 `탄성반발설`이 제기되는 `탄루 단층대`입니다. 

사실 1976년 중국 탕산 대지진은 한참 전부터 강진이 올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권력 다툼에 눈이 먼 정부는 "민심을 동요시킨다"며 지진 경고를 하는 자들을 사상 교육대로 보내버렸다고 합니다. 


사진: 마치 엿가락처럼 비틀려 버린 철도길. 최근에야 탕산의 과거가 공개되었다.(사진: 마치 엿가락처럼 비틀려 버린 철도길. 최근에야 탕산의 과거가 공개되었다. / ⓒ U.S. Department)


7월 28일 새벽 3시, 규모 7.8의 직하형 지진이 덮쳤습니다. 

직하형이란, 지하가 붕괴되어서 땅이 꺼지듯 내려앉는 지진을 말합니다.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일어나므로 낮은 규모에서도 큰 피해를 냅니다. 1976년 중국 탕산 대지진은 실제로 탕산 시에 집중적으로 일어나서 도시가 매몰되듯 가라앉아 버렸다고 합니다. 


사진: 탕산의 위치. 보통 절단층에서 지진이 난다고 알고 있지만, 탕산은 일반 층인데도 거대한 지진이 있었다.(사진: 탕산의 위치. 보통 절단층에서 지진이 난다고 알고 있지만, 탕산은 일반 층인데도 거대한 지진이 있었다. / ⓒ Orlovic)


당시 중국 광공업 단지가 집중된 탕산은 공장과 난립된 건물들이 즐비한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였습니다. 

중국 공식 발표로는 탕산 지진에서 24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하지만, 30여 년 동안 여러 방법으로 피해를 숨겼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는 70만 명에 육박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그야말로 20세기 최악의 지진 피해인 것입니다. 





탕산 지진의 비극


탕산은 광공업 지구이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가 광산과 공장에 몰려 있던 곳입니다. 1976년 중국 탕산 대지진은 거의 20초 만에 허베이 성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상자의 절반 이상이 탕산 시에서 생겼으며 주택 붕괴율이 94%에 이르렀습니다. 탕산 시는 사망자가 부상자의 20배나 되었는데, 직하형 지진으로 건물이 붕괴되거나 순식간에 땅 속에 묻혀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진: 2010년 탕산 지진을 주제로 한 영화 탕산 대지진이 개봉하였다. 중국에서는 흥행을 거두었다.(사진: 2010년 탕산 지진을 주제로 한 영화 탕산 대지진이 개봉하였다. 중국에서는 흥행을 거두었다. / ⓒ 펑 샤오강)


시민들은 피신할 틈도 없이 빨려들 듯 파묻혔습니다. 약 7200 가구는 가족 전체가 몰살당했다고 하며, 천여 명 이상이 광산 갱도에 매몰되어 생무덤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탕산 지진 복구를 위해 군인을 10만 명이나 동원했습니다. 무너진 흙더미 속에는 사람들이 깔려 있는데, 외국 지원을 거한다며 최신 장비도 없이 무작정 인력으로만 하다 보니 실종자 확인 작업에 5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사진: 무너진 땅을 메꾸고 복구하는데에만 10년이 걸렸다는 이곳은 군부대 인력이 10만명이나 투입된 곳이다.(사진: 무너진 땅을 메꾸고 복구하는데에만 10년이 걸렸다는 이곳은 군부대 인력이 10만명이나 투입된 곳이다. / ⓒ gaochengnews.net)


그런데 중국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탕산 지진 자체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1976년 탕산 대지진이 일어난 후 외신 기자들을 단속했던 것은 외국으로 뉴스가 나가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자연재해마저 국가기밀로 하려는 행위 때문에 중국인들조차도 생존자들이 입소문을 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 영화 탕산 대지진의 한 장면. 주인공이 맨 손으로 돌을 헤치며 가족을 찾고 있다.(사진: 영화 탕산 대지진의 한 장면. 주인공이 맨 손으로 돌을 헤치며 가족을 찾고 있다. / ⓒ 펑 샤오강)


예측을 무시한 잘못을 감추고 싶었던 것이고, 도와준다며 접근하는 외국 세력이 귀찮았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중국 문화대혁명이 최고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일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저우언라이`가 사망하고 마오쩌둥도 사망을 앞두자, 권력을 독차지한 일명 `4인방`의 독재가 만들어낸 비극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는 정권 유지를 위해 대수롭지 않게 덮어버린 사고인 것입니다. 





탕산 지진과 칭룽 시


정부에서는 4인방의 독재 강화에 혈안이 돼서 지진 경고를 발설한 자를 사상교육에 보내버렸지만, 인근 만주족 자치구인 `칭룽`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칭룽의 공무원들은 지진 경고에 대비하여 비상교육을 실시하고 건물 안전을 확인을 했습니다. 덕분에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탕산 지진과 달리 칭룽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습니다. 


사진: 대지진으로 붕괴된 다리. 직하형 지진이므로 때문에 그대로 아래쪽으로 무너졌다.(사진: 대지진으로 붕괴된 다리. 직하형 지진이므로 때문에 그대로 아래쪽으로 무너졌다. / ⓒ ltsfrb.com)


이 부분에 대해 UN은 대표적인 지진 대비 성공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칭룽 시는이런 성과를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도 없었습니다. 탕산 지진을 비공개로 만들어버린 정부 때문입니다. 

중국의 힘만으로도 재난을 잘 극복하고 있다는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만이 1976년 중국 탕산 대지진에 대한 유일한 정보였습니다. 중국 정부는 10년 간이나 외국인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탕산 지진은 외국의 지원을 거부하고 낙후된 인력 복구에만 매달린 어처구니 없는 재해사건이다.(사진: 탕산 지진은 외국의 지원을 거부하고 낙후된 인력 복구에만 매달린 어처구니 없는 재해사건이다. / ⓒ backchina.com)


한쪽에서는 수십만 명이 죽어 가도 정권 강화에만 급급해하며 외국의 지원도 거부하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최선을 다해 주민을 모두 살려내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2005년 중국은 자연재해의 국가기밀을 거의 30년 만에 해제하였습니다. 탕산 시민들은 무엇을 위해 낙후된 구조에 의존해야 했으며, 투입된 군인들은 누구를 위해 10년이나 맨손으로 땅을 파야 했나... 1976년 탕산 대지진은 이런 역사의 관점에서 보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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