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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미키 -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대피방송의 살신성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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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미키 -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대피방송의 살신성인

키스 키스세븐 2017.08.2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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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미키 -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대피방송의 살신성인]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라고 불리는 도호쿠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이 지진사태로 인해 엄청난 쓰나미가 일본 동부를 덮쳤고,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까지 겹치면서 역사상 최악의 지진피해를 보았습니다. 많은 피해자 중에는 위기관리과 직원인 엔도 미키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주민들을 대피시키려고 대피방송을 하다가 결국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글의 순서]

1. 동일본대지진의 엔도 미키

2. 엔도 미키의 쓰나미 대피방송

3. 동일본대지진의 피해


[관련 글 링크]

영화 너의 이름은, 줄거리 결말과 국내개봉, OST 등 정보 - 신카이 마코토 작품




동일본대지진의 엔도 미키


기록된 지진 가운데 최악의 지진은 1960년 칠레의 '발디비아 지진'입니다. 진도 9.5가 기록되었고 6천 명 정도가 사망했습니다. 그 외에도 1964년 '알래스카 지진', 2004년 '인도양 지진'이 있었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공식 사망자만 1만 8천 명이 넘고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까지 더해서 최악 중의 최악인 지진입니다. 

이때 '엔도 미키(遠藤未希)'의 쓰나미 대피방송이 있었습니다. 


사진: 일본 방송에서 소개되는 엔도 미키의 생전의 모습. 부모는 착하고 마음 여린 딸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목숨을 걸고 한 방송은 7천명의 인명을 구했다. [동일본대지진의 엔도 미키](사진: 일본 방송에서 소개되는 엔도 미키의 생전의 모습. 부모는 착하고 마음 여린 딸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목숨을 걸고 한 방송은 7천명의 인명을 구했다. [동일본대지진의 엔도 미키] / ⓒ 일본방송캡처)


2017년 1월을 뜨겁게 달군 영화가 있었습니다. 일본인 '신카이 마코토'감독의 영화 <너의 이름은>입니다. 예기치 않게 운석이 한 마을을 덮쳐서 마을 전체가 사라지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너의 이름은>의 줄거리를 보면 '사야카'라는 여학생이 마을 주민을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서 대피방송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은 동일본 대지진 때 쓰나미 대피방송을 했던 엔도 미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사진: 영화 너의 이름은을 보면 사야카가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방송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도호쿠 대지진 때의 엔도 미키에 대한 모티브이다. [동일본대지진의 엔도 미키](사진: 영화 너의 이름은을 보면 사야카가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방송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도호쿠 대지진 때의 엔도 미키에 대한 모티브이다. [동일본대지진의 엔도 미키] / ⓒ 영화 너의 이름은)


영화 <너의 이름은>을 개봉한 후 신카이 감독은 인터뷰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제작 동기를 말했습니다. 특히나 엔도 미키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에 기억되는 것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며 최선을 다한 부분입니다. 

당시 상황을 중계하던 TV에서도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며 망연자실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런 공포의 순간에도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진: 쓰나미가 덮친 일본 도호쿠 대지진 당시의 모습. 구조 헬기에서 불타는 현장을 찍었다. 이 피해로 1만 8천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후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도 터졌다. [동일본대지진의 엔도 미키](사진: 쓰나미가 덮친 일본 도호쿠 대지진 당시의 모습. 구조 헬기에서 불타는 현장을 찍었다. 이 피해로 1만 8천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후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도 터졌다. [동일본대지진의 엔도 미키] / ⓒ U.S. Navy)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쓰나미가 '미야기'현을 덮쳤을 때 엔도 미키의 나이는 스물네 살이었습니다. 결혼한 지 겨우 8개월이 된 새댁이며, 조그만 시골 읍사무소의 위기관리과 말단 직원이었습니다. 

2녀 중 장녀로 태어나 대학에서 간호과를 전공했지만 부모가 같이 살기를 원해서 병원을 포기하고 시골에 내려와서 취직을 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부모는 너무도 착하고 마음 여린 딸이였기에 끔찍하게 죽어간 것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엔도 미키의 쓰나미 대피방송


미야기 현은 일본 중부의 태평양 연안인 도호쿠 지방에 있는 읍입니다. 이곳은 일본 3대 절경인 '마츠시마 해안'이 자리한 곳입니다. 엔도 미키는 여기에서 위기관리과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에 일본 동쪽 가까운 태평양 해저에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했습니다. 

'쓰나미'란 일본어로 "항구의 파도"라는 뜻이며 지진 등의 영향으로 거대한 파도가 덮치는 현상을 말합니다. 


사진: 쓰나미가 덮치는 마을. 동일본 대지진의 미야기 현에는 높이 10미터가 넘는 해일이 덮쳤고,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엔도 미키는 자신이 맡은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엔도 미키의 쓰나미 대피방송](사진: 쓰나미가 덮치는 마을. 동일본 대지진의 미야기 현에는 높이 10미터가 넘는 해일이 덮쳤고,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엔도 미키는 자신이 맡은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엔도 미키의 쓰나미 대피방송] / ⓒ Roland Mey)


진도 9.0 이상의 큰 지진에 엔도 미키는 급히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3층 건물의 2층에 위치한 위기관리과에서 그녀는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높이 6미터의 큰 쓰나미가 예상됩니다. 즉시 고지대로 대피하세요. 절대로 바닷가에 가지 마세요!" 다급한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마을에 울려 퍼졌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10m+의 높이로 다가왔습니다. 이것은 10미터가 훨씬 넘기 때문에 정확히 잴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사진: 미야기현의 위치와 동일본 대지진 설명도. 태평안 연안에서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으로 지구의 자전축마저 흔들리는 대재앙을 겪게 되었다. [엔도 미키의 쓰나미 대피방송](사진: 미야기현의 위치와 동일본 대지진 설명도. 태평안 연안에서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으로 지구의 자전축마저 흔들리는 대재앙을 겪게 되었다. [엔도 미키의 쓰나미 대피방송] / ⓒ Gksdnf1999 / www.kiss7.kr)


시속 700km의 거대한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기 전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 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의 진앙지와의 거리로 볼 때 약 30분 정도의 대피시간이 확보될지도 모릅니다. 

10여 분이 지나자 위험한 낌새를 느낀 다른 직원들이 옥상으로 대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선박과 자동차가 물 위에 둥둥 떠 있었고, 심지어 집이 파도에 떠밀려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엔도 미키는 끝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았습니다. 아직 쓰나미 대피방송을 못들은 누군가가 있을까봐 경고안내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쓰나미에 의해 집이 떠내려가는 모습. 자동차 뿐만 아니라 선박이 육지로 6km까지 밀려왔고 지상 3층 이상의 집들도 안전하지 못하였다. [엔도 미키의 쓰나미 대피방송](사진: 쓰나미에 의해 집이 떠내려가는 모습. 자동차 뿐만 아니라 선박이 육지로 6km까지 밀려왔고 지상 3층 이상의 집들도 안전하지 못하였다. [엔도 미키의 쓰나미 대피방송] / ⓒ Katrina R. Menchaca)


미야기 현 해안에는 1만 7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중 7천여 명이 이 30여 분간의 방송을 듣고 목숨을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주택들은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만,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공포의 순간에도 맡겨진 임무에 충실했던 엔도 미키에게 2층까지 덮치는 높이의 쓰나미가 엄습했습니다. 마지막 경고를 말하고 뒤늦게 계단으로 향했지만, 물살에 빨려들어 떠내려가는 그녀를 옥상의 동료들이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일본 지진이 일어난 지 52일만에 그녀는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남편이 선물한 발찌가 엔도 미키의 마지막을 함께 했었습니다. 





동일본대지진의 피해


동일본 대지진의 진도는 9.0 이상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1만8천여 명의 사망자와 2천여 명의 실종자, 6천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식집계일 뿐이고, 그 외의 피해는 더 엄청났을 것이라고 합니다. 조선인 대학살로 이어진 1923년 관동대지진의 진도는 8.2였습니다. 

엔도 미키가 살았던 미야기 현 등 도호쿠 지방에서 큰 피해가 있었기 때문에 동일본 대지진은 도호쿠 대지진이라고도 불립니다. 


사진: 도호쿠 대지진에서 해일(쓰나미)가 밀려드는 모습. 그 후 마을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때 위기관리과에서 맡은 인명구조 방송을 하다가 엔도 미키는 휩쓸려 떠내려 가게 되었다. [동일본대지진의 피해](사진: 도호쿠 대지진에서 해일(쓰나미)가 밀려드는 모습. 그 후 마을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때 위기관리과에서 맡은 인명구조 방송을 하다가 엔도 미키는 휩쓸려 떠내려 가게 되었다. [동일본대지진의 피해] / ⓒ Japan Times)


그 이후에는 후쿠시마 원전의 공포가 전 세계를 휘감았습니다. 원자로 해체까지 앞으로도 40년 정도는 더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약 175조 원의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금도 약 26만 명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미야기 현에서 엔도 미키가 마지막 방송을 할 때 10미터 이상의 쓰나미가 덮쳤지만, 인근 '오후나토'시에는 40.1m의 대형 쓰나미도 기록되었습니다. 쓰나미는 일본 내륙으로 최대 6km까지 물로 덮어버렸습니다. 


사진: 엔도 미키가 생전에 찍었던 사진. 해맑은 웃음으로 착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이었지만 공포 속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동일본대지진의 피해](사진: 엔도 미키가 생전에 찍었던 사진. 해맑은 웃음으로 착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이었지만 공포 속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동일본대지진의 피해] / ⓒ 엔도 미키)


어떤 연구에서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열도가 2.4m나 이동을 했고 한반도도 5cm의 이동이 생겼다고 합니다. 또한 자전 속도에 영향을 주어서 지구의 자전축이 10cm 정도 이동했고 하루 시간이 1천만 분의 16초 정도 짧아졌다고도 합니다. 

그만큼 공포스러운 순간에도 대피방송을 못 들은 사람이 있을까봐 죽기 직전까지 마이크를 놓지 못했던 사람이 엔도 미키였습니다. 그때 경고방송을 듣고 살아난 사람들은 그녀 덕분에 생명을 건졌다고 회고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실종된지 52일만에 죽은 채로 발견된 엔도 미키의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이 몰렸고 방송에도 소개되었다. 그후 그녀의 마지막 방송 이야기가 (사진: 실종된지 52일만에 죽은 채로 발견된 엔도 미키의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이 몰렸고 방송에도 소개되었다. 그후 그녀의 마지막 방송 이야기가 "천사의 목소리"라는 제목의 교과서에 소개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의 피해] / ⓒ 일본방송 캡처)


동일본 대지진의 쓰나미가 엄습할 때, 죽어간 사람 중에서 90%가 바닷물에 휩쓸려 익사한 사람들입니다. 엔도 미키의 목숨을 건 마지막 방송이 수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치입니다. 

그녀의 이름에서 미키(未希)의 뜻은 "미래의 희망"입니다. 한자어인 未來(미래)와 希望(희망)을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합니다. 그녀는 정말로 세상사람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주고 하늘로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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