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 실화 -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힌츠페터와 김사복]
1980년 5월의 광주는 한국 현대사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시민이 독재정권에 의해 학살되고도 빨갱이라고 비난당하는 일이 아직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화는 김사복과 위르겐 힌츠페터의 경험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려준 사람들입니다. (이 글은 줄거리 등의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택시운전사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화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취재한 외국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영화에서 '피터')와 그를 돕던 택시운전사 '김사복'(영화에서 '김만섭')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실화는 아니고,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여 극적인 구성을 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평범한 시민이 불의의 상황에 어떻게 분노하고 느끼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투쟁해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영화 택시운전사의 포스터. 왼쪽은 주인공 김만섭 역의 송강호. 오른쪽은 피터역을 맡은 토마스 크레치만의 모습.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택시운전사] / ⓒ 택시운전사)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를 되돌려 달라는 학생들에게 군인들이 폭력을 가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말 그대로 민주주의 쟁취 시위였지만,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일반 시민들이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계엄령으로 파견된 공수부대가 총칼로 시민까지 폭행하자 일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집단으로 저항을 하게 된 것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며,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의 배경입니다.
(사진: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계엄군이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 독재군부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헬리콥터까지 동원해서 기관총 사격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택시운전사] / ⓒ 518.org)
당시 광주시민들은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전두환의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정권은 국민을 지키라는 군대를 보내서 국민을 때리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더 억울한 것은, 이 사실을 광주 밖의 지역에서는 몰랐다는 것이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이며 모티브입니다.
뉴스에는 폭도들이 살인과 약탈을 하고 있다고 보도되었고, 전라도 사람들이 흥분해서 경상도 사람을 보면 죽여버린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물론 악의적으로 만들어낸 조작입니다.
(사진: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의 배경이 되는 광주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 당시 언론들은 폭도로 광주시민들을 묘사했다. 각계에서는 이런 언론만 믿고 이성을 잃은 데모라는 비판도 가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택시운전사] / ⓒ 조선일보)
지금도 보수주의자들 중에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북한이 조종한 반란폭동이라며 빨갱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이런 악의적인 중상모략이 틀렸음을 증거로 남긴 사람이 바로 '위르겐 힌츠페터'입니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독일 NDR방송의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다가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화에서 광주로 뛰어들었습니다. 힌츠페터가 생생한 현장을 찍어서 몰래 해외 방송에 내보낸 덕에 해외에서는 광주의 진실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
박정희 군사독재에 이어 두 번째로 들어선 전두환 군사독재는 광주의 진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언론을 통제했습니다. 모든 뉴스는 검열당했으므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행히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필름을 독일로 빼돌리는 데에 성공하여 방송되었으며, 당시 독일에서는 '광주 마사커(학살)'로 알려졌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에 나온 김사복 씨는 위르겐 힌츠페터가 녹음기자인 '헤닝 루모어'와 함께 광주로 잠입하면서 만난 운전사입니다.
(사진: 위르겐 힌츠페터가 광주 민주화운동 현장을 촬영하자 택시운전사인 김사복이 긴박함을 알리는 장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긴박함을 잘 살렸다.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 / ⓒ 택시운전사)
이들은 검문소에서 가족을 구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통과했습니다. 원래 외국인 기자가 국내에서 취재활동을 하려면 홍보원에 등록해야 하고, 계엄령 지역의 취재를 위해서는 보안사령부에 취재를 신청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검열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한 위르겐 힌츠페터는 위법적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 현장에 잠입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는 이런 과정을 통해 극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사진: 최근 JTBC방송은 1980년 당시 신군부(전두환 등 쿠데타 세력)이 미국에도 거짓된 정보를 제공했음을 보도했다. 국내외에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 사태로 누명을 씌우는 짓을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 / ⓒ JTBC)
그들은 같은 나라의 군대로부터 마치 적군처럼 공격을 당하는 광주시민들의 비참한 현실에 놀라면서도 사실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화에서 위르겐 힌츠페터와 택시운전사 김사복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구석진 곳까지 취재를 다녔습니다.
학살현장과 병원 등의 피해자들을 찍는 도중에는 참혹한 현실에 눈물이 너무 흘러서 촬영을 멈춰야 했었다고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담을 극으로 구성하여 2017년에 개봉한 영화가 <택시운전사>입니다.
(사진: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학생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폭행 당하고 학살 당했다. 위르겐 힌츠페터와 김사복의 활약 덕분에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이 기록영상으로 남을 수 있었다.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 / ⓒ 화려한 휴가)
한편 광주 시민들은 열렬하게 이들을 환영했습니다. 억울하게 왜곡되어 방송되고 있는 자신들의 진실을 제대로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국내의 언론이 강한 자의 편에 서서 폭도들이라고 왜곡하고 있지만, 외국에서만이라도 제대로 진실을 알게 해 달라고 원했습니다. 독재에 항거하며 죽어가는데, 폭도라는 누명까지 써야 했으니 너무도 원통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위르겐 힌츠페터가 김사복과 함께 광주로 들어가 찍은 이 장면들은 해외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몰래 들여와져서 진실을 알게 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위르겐 힌츠페터와 김사복
1980년 5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촬영 장면을 빼돌리기 위한 국외 탈출도 긴박했다고 합니다. 전두환 군부독재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폭도들로 조작하기 위해서 모든 경로로 검열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검열에 빼앗기지 않고 광주의 진실을 국외로 들고 나가야 했습니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가 담긴 필름을 허리띠에 숨기기도 하고, 과자로 위장해서 숨기기도 했습니다. 갖은 노력으로 인해 결국 일본으로 빼돌려진 필름은 독일로 전달되어 방송전파를 탈 수 있었습니다.
(사진: 1980년 5월,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화인 광주 민주화운동의 실제 현장 사진. 광주 시민들은 민주주의와 군부쿠데타 독재세력에게 항거했다. 이들은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아직도 공격받고 있는 중이다. [위르겐 힌츠페터와 김사복] / ⓒ 518.org)
위르겐 힌츠페터와 헤닝 루모어, 그리고 그들을 도와준 김사복... 이런 인물들 덕분에 광주시민끼리 있을 때는 질서정연하고 단합된 상태였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어떤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폭도들이 무법천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역사에 폭도로 남을 뻔한 억울함을 풀어준 공로가 매우 큰 사람들입니다.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의 김사복은 위르겐 힌츠페터의 기억 속에 남았던 인물이지만, 현재 찾을 수는 없다고 합니다.
(사진: KBS와 인터뷰 중인 살아 생전의 힌츠페터. 그는 광주에서 받은 상태 때문에 5.18 민주화운동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죽으면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이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이다. [위르겐 힌츠페터와 김사복] / ⓒ KBS)
영화에서의 설정은 주인공이 월세도 못 낼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고, 광주로 태워주면 10만 원을 준다는 급한 요청에 본의 아니게 사건에 뛰어드는 줄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민주화운동 때문에 돈벌이가 어렵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욕을 해대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비로소 독재에 대한 울분을 느끼고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점이 영화에서 관객이 느껴야 할 진짜 포인트입니다.
(사진: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의 운전사인 김만섭은 가상의 인물이다. 실제 인물은 김사복으로 전해졌으나, 힌츠페터가 기억하는 이름일뿐 실제로 그를 찾는데는 실패했다. 영화에서는 평범한 인물의 정신성장으로 줄거리를 이끌어 나간다. [위르겐 힌츠페터와 김사복] / ⓒ 택시운전사)
영화 제작진이 영화 택시운전사 실화의 김사복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영화에서 주인공 김만섭의 일상생활은 허구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투병생활을 하던 중에 영화 제작진을 만나 경험담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추가 정보: 후에 택시운전사 김사복 실존인물을 찾게 됩니다. 아래 링크로 추가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2003년 한국 언론의 공로상을 수상하였고, 광주를 잊지 못해서 죽으면 한국에 묻히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결국 영화 개봉을 보지 못하고 2016년 사망했는데, 유족들은 그의 뜻을 받들어서 머리카락, 유물 등을 518 구묘역에 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