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햅번과 마니 닉슨, 줄리 앤드루스 -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
제법 알려진 이야기지만, 마니 닉슨은 오드리 햅번의 마이 페어 레이디, 데보라 커의 왕과 나, 나탈리 우드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마릴린 먼로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대역 가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오드리 햅번에게는 마이 페어 레이디가 오히려 악몽 같은 작품이었고 상대적으로 줄리 앤드루스에게는 행운이 되었습니다.
[글의 순서]
1. 오드리 햅번과 대역 가수 마니 닉슨
2. 억울했던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드리 햅번
3. 오드리 햅번, 마니 닉슨, 줄리 앤드루스의 인연
오드리 햅번과 대역 가수 마니 닉슨
<마이 페어 레이디>는 1965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오드리 햅번'의 노래 대역을 맡은 가수가 '마니 닉슨'이었습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로마의 휴일 등에서 최고의 인기 여배우로 사랑받던 오드리 햅번이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 출연한 것은 행운이자 불행이었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오드리 햅번, 마니 닉슨, 줄리 앤드루스의 사진. 전혀 상관 없는 듯하면서도 인연이 있던 사람들. [오드리 햅번과 대역 가수 마니 닉슨] / ⓒ )
사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는 유명 작가인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이 원작입니다. 이 작품을 뮤지컬로 바꿔서 브로드웨이에 올린 이름이 마이 페어 레이디인 것입니다. 그리고 피그말리온은 연극으로도 각색되었는데, 그 작품이 또한 유명한 <리타 길들이기>입니다.
(사진: 연극 리타 길들이기는 아직도 연극무대에서 공연이 되고 있다.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이 원작이다. [오드리 햅번과 대역 가수 마니 닉슨] / ⓒ northernsoul.me.uk)
1960년대, 영화 제작사인 '워너 브러더스'는 초대형 뮤지컬 영화를 만들 생각으로 뮤지컬 공연 중인 마이 페어 레이디의 판권을 사들였습니다. 무려 450억 원 가량의 돈을 들였으니 배우와 제작진도 최고급만을 선택했습니다. 오드리 햅번은 당시 최고의 출연료를 받고 주인공을 맡았습니다.
(사진: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포스터. 상류층 교수가 하류층 여성을 멋진 숙녀로 만들어낸다는 줄거리이다. [오드리 햅번과 대역 가수 마니 닉슨] / ⓒ My Fair Lady)
그런데 문제는 오드리 햅번이 대작 뮤지컬만큼의 가창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드리 햅번은 직접 뮤지컬 노래를 하는 걸로 알고 출연했지만 제작진은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따로 노래 부분을 부를 대역가수를 섭외했는데, 그녀가 마니 닉슨입니다. 제작진은 오드리 햅번이 모르게 몰래 마니 닉슨과 노래를 녹음하였습니다.
(사진: 오드리 햅번, 데보라 커, 나탈리 우드, 마릴린 먼로의 노래를 대신 부른 가수 마니 닉슨. [오드리 햅번과 대역 가수 마니 닉슨] / ⓒ Marni Nixon)
마니 닉슨은 소프라노 성악 가수이며 노래와 목소리 대역을 하던 배우입니다. 뮤지컬 영화에서 마니 닉슨이 오드리 햅번의 노래를 대신 불렀지만, 당시에는 여러 영화에서 종종 있었던 일입니다. 하지만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의 오드리 햅번에게는 유난히도 대역 가수가 있었다는 것 때문에 자존심 상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억울했던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드리 햅번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에서의 주인공은 줄리 앤드루스로 유명했습니다. 영화로 마이 페어 레이디가 만들어지더라도 당연히 줄리 앤드루스가 여주인공을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초대작 투자를 한 워너 브러더스 사는 인지도가 높은 인기 여배우만을 고집했고, 영화 경력이 없는 줄리 앤드루스 대신 오드리 햅번을 섭외했습니다.
(사진: 영화 메리 포핀스에서의 줄리 앤드루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게 된다. [억울했던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드리 햅번] / ⓒ Mary Poppins)
오드리 햅번도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하고 마이 페어 레이디를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노래를 하고 있는 부분이 다 잘려나가게 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작진이 마니 닉슨과 몰래 녹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킨 것입니다. 오드리 햅번은 화를 내며 촬영장을 나가 버렸지만, 다음날 이 행동을 사과하고 촬영을 계속 했습니다.
(사진: 청순하면서도 귀여운 이미지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오드리 햅번.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함께 투톱 배우였다. [억울했던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드리 햅번] / ⓒ Audrey Hepburn)
더구나 외부 사람들에게도 마니 닉슨이 대신 부르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영화팬들은 노래를 잘하는 줄리 앤드루스를 버리고 인지도 때문에 오드리 햅번을 선택한 후 대역 가수를 써서 녹음한다는 것에 항의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지만 다른 영화들은 표면적으로 들어나지 않았기에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드리 햅번만 유난히 비난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진: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작품성도 인정을 받았지만 오드리 햅번은 인정받지 못했다. [억울했던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드리 햅번] / ⓒ Audrey Hepburn)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는 오드리 햅번의 인지도뿐만 아니라 최고의 제작진과 투자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6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그 해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드리 햅번은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남의 시상에 축하의 웃음을 보냈지만 본인의 속은 쓰라렸을 것입니다.
오드리 햅번, 마니 닉슨, 줄리 앤드루스의 인연
이 사건을 계기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노래를 대역한 나미 닉슨도 덩달아 유명해졌습니다. 사실 마니 닉슨은 <왕과 나>에서 '데보라 커'의 노래도 대역을 했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는 '나탈리 우드'의 대역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릴린 먼로'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는 너무도 역과 딱 맞는 목소리였기에 대역인줄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나탈리 우드, 데보라 커, 오드리 햅번의 모습. 모두 마니 닉슨이 대신 노래를 불러줬던 최고 배우들이었다. [오드리 햅번, 마니 닉슨, 줄리 앤드루스의 인연] / ⓒ Natalie Wood, Deborah Kerr, Audrey Hepburn)
한편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오드리 햅번에게 밀려서 캐스팅에 실패한 것이라고 동정 여론을 받던 줄리 앤드루스는 영화 <메리 포핀스>에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그 다음 해인 1965년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2회 연속 골든글로브 상까지 수상하며 최고의 뮤지컬 여배우로 성장했습니다.
(사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의 줄리 앤드루스.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사상 최고의 성공을 거둔 기록을 가졌다. [오드리 햅번, 마니 닉슨, 줄리 앤드루스의 인연] / ⓒ Julie Andrews)
줄리 앤드루스와 오드리 햅번, 마니 닉슨의 인연은 신기하게도 엮였습니다. 목소리 대역을 하던 마니 닉슨이 드디어 영화에 자기 얼굴로 배역을 받아 출연하게 되었는데, 그 영화가 사운드 오브 뮤직이며 '소피아 수녀' 역이었습니다. 또한 줄리 앤드루스가 나중에 결혼하게 되는 사람은 오드리 햅번의 유명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찍게 될 감독입니다.
(사진: 영화 사운도 오브 뮤직에 자기 얼굴로 배역을 맡은 마니 닉슨. 소피아 수녀로 나온다. [오드리 햅번, 마니 닉슨, 줄리 앤드루스의 인연] / ⓒ Marni Nixon)
마니 닉슨도 남의 노래나 대역하는 정도로만 보일지 모르지만, 성악가로서 배우로서의 활동도 열심히 한 사람입니다. 영화에서는 얼굴을 보기 힘들지만,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직접 출연하는 작품들이 있었고, TV방송에도 출연했습니다. 1970년대부터는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기도 하던 마니 닉슨은 1998년 영화 <뮬란>에서 할머니 '파'의 역할을 맡아 자기 이름으로 더빙으로 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마이 페어 레이디는 지금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공연이 되고 있다. 리타 길들이기의 뮤지컬판이다. [오드리 햅번, 마니 닉슨, 줄리 앤드루스의 인연] / ⓒ My Fair Lady)
오드리 햅번과 마니 닉슨, 줄리 앤드루스는 각자 자신의 일에서 열심히 살았던 배우들입니다. 다만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얽히고 설켜서 비난을 받기도 하고 동정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비교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로 미워한다거나 열등감 없이 살았다고 합니다. 당대에 한 획을 그은 여배우들과 뒤에서 영화를 살려준 마니 닉슨의 이야기는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를 얘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뒷이야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