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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부터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남한산성까지 본문

유용한 지식 칼럼/역사&사건

임진왜란부터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남한산성까지

키스 키스세븐 2017. 10. 2.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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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부터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남한산성까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불과 40여 년 만에 벌어진 대 전쟁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대외적으로는 후금이 강해지면서 청나라가 되었고, 대내적으로는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쫓겨났습니다. 청나라의 국제정세와 조선과의 관계를 통해 병자호란의 원인과 배경에 접근해 봅니다. 




[글의 순서]

1. 정묘호란과 국제정세

2. 병자호란과 청나라

3. 인조반정과 외교

4. 병자호란과 조선의 악재


[엮인 글]

병자호란과 남한산성 역사 줄거리 - 남한산성 전투

병자호란 남한산성 패배의 원인 - 김자점과 이괄의 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1 - 국제정세


'병자호란'의 원인으로 광해군을 내쫓은 인조반정세력의 '배금친명 정책(후금을 멀리하고 명나라를 중시)'이 주로 거론되지만, 오직 그것만은 아닙니다. 병자호란의 배경을 알려면 '임진왜란', '정묘호란'까지 살펴봐야 합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29년만인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났고, 병자호란이 9년 후에 발생했습니다. 병자호란 이전의 '청나라'는 '후금'이라는 이름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사진: 영화 최종병기 활 자료화면. 병자호란의 청나라는 원래 후금이었다. 기마병이 주축이 된 빠른 공격이 그들의 특징이다. [정묘호란과 국제정세](사진: 영화 최종병기 활 자료화면. 병자호란의 청나라는 원래 후금이었다. 기마병이 주축이 된 빠른 공격이 그들의 특징이다. [정묘호란과 국제정세] / ⓒ 최종병기 활)


임진왜란의 군사 동원은 명나라에게도 치명적이어서 힘이 약해졌고, 그 틈에 후금이 강해졌습니다. 후금의 '여진족'은 고려시대에는 '금나라'였다가 멸망하여 만주 일대에 뿔뿔이 흩어져 살더니 다시 후금(후. 금나라)을 세웠습니다. 여진족의 뿌리인 말갈족은 몽골계통이므로 우리민족과 먼 친척뻘이 됩니다. 그들은 힘이 약할 때는 우리나라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도 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말갈족' - '여진족' - '금나라' - '후금' - '청나라'의 순서입니다. 


사진: 1630년대 전후의 동아시아 정세. 청나라는 명나라의 산해관에 막혀서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 중이었다. 명이 망한 것은 병자호란이 있은 후 1644년이 돼서다. [정묘호란과 국제정세](사진: 1630년대 전후의 동아시아 정세. 청나라는 명나라의 산해관에 막혀서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 중이었다. 명이 망한 것은 병자호란이 있은 후 1644년이 돼서다. [정묘호란과 국제정세] / ⓒ www.kiss7.kr)


광해군 때, 만주의 후금 세력이 커지면서 명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제력이 약한 후금에게 명나라와의 전쟁은 명나라와의 무역마저 중단되는 큰 단점이었습니다. 여진족은 내부에 필요한 자금을 명나라와의 인삼, 모피 등의 무역으로 마련해왔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강성해졌으나 생필품 가격 등이 치솟아서 백성의 물만이 높아졌습니다. 

더구나 기상악화로 식량사정까지 나빠져버렸습니다. 정묘호란, 병자호란 원인의 뿌리에는 결국 후금 내부의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변화된 환경과 기상악화가 새로운 고민을 만든 것입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2 - 청나라


후금이 이 문제를 극복하고자 시작된 것이 정묘호란이며 치욕적인 남한산성의 병자호란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 사이 조선에서는 서인세력이 광해군을 쫓아내고 인조반정을 일으켰습니다. 

정묘호란을 일으킨 후금이 겉으로는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에 대한 침략이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복잡한 국제 정세가 깔려 있습니다. 시조왕인 '누르하치'가 죽은 후 '홍타이지'가 왕위에 오르며 국제정세가 더욱 갈등관계로 치달았습니다. 


사진: 조선 백성들에게 피눈물을 자아내게 한 부자. 청나라의 시조 누르하치와 태종 홍타이지의 중국측 초상화. [병자호란과 청나라](사진: 조선 백성들에게 피눈물을 자아내게 한 부자. 청나라의 시조 누르하치와 태종 홍타이지의 중국측 초상화. [병자호란과 청나라] / ⓒ 편집 www.kiss7.kr)


정묘호란 때까지만 해도 경제적 구걸외교가 실패하자 후금이 무력으로 생떼를 부렸던 것에 비하여, 치욕적인 남한산성의 병자호란 원인은 조선의 착오가 컸습니다. 두 강자가 싸우는데, 한 쪽에만 배타적인 자세를 취한 것입니다. 후금은 몽골까지 점령하며 여러 나라를 거느린 황제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토와 국민이 늘어날수록 경제적 고통은 더 커졌습니다. 명나라와의 무역이 막힌 후 조선과의 무역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것도 실패했습니다. 조선은 상공업을 천시하는 나라이니 애초에 대규모 거래가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사진: 인조반정 이후 청나라의 황제 즉위식에서 조선 사진은 오랑캐 황제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하여 외교적 문제점을 만들었다. [병자호란과 청나라](사진: 인조반정 이후 청나라의 황제 즉위식에서 조선 사진은 오랑캐 황제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하여 외교적 문제점을 만들었다. [병자호란과 청나라] / ⓒ 미상)


후금은 이름을 '청나라'로 고친 후 조선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병자호란의 원인은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의 반감도 한 몫 합니다. 명나라와 세력이 비슷해졌음에도 조선이 노골적으로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여기는 것을 왕자 때부터 보아오며 못마땅했습니다. 

정묘호란 때는 수군이 없어서 강화조약 정도로 끝냈지만, 명나라 수군이 함선과 홍이포 등을 가지고 투항해 오면서 조선을 점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참에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국"의 관계를 "군신국"의 관계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병자호란과 인조반정 1 - 외교


임진왜란이 있던 선조 때 서인들은 '기축옥사'를 일으켜서 북인을 탄압했습니다. 그 후 광해군이 집권하며 북인계통의 동인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서인들은 1623년 인조반정을 일으켜서 광해군을 쫓아냈습니다. 서인은 임진왜란에서 큰 피해를 입게 한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쿠데타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병자호란의 원인 자체가 인조반정은 아닙니다. 인조 초기에는 광해군의 외교를 기본으로 따르고 성벽구축과 군체제 정비도 나름의 노력을 했었습니다. 


사진: 인조반정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은 우리 역사의 가장 치욕스러운 부분이다. 광해군의 절묘한 외교술은 약화되고 명나라에 충성하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인조반정과 외교](사진: 인조반정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은 우리 역사의 가장 치욕스러운 부분이다. 광해군의 절묘한 외교술은 약화되고 명나라에 충성하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인조반정과 외교] / ⓒ www.kiss7.kr)


그런데 문제는 조선 초기 성리학의 개혁적인 성향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습니다.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사대주의만 강해지며 보수화되었습니다. 심지어 조선은 명나라 황제의 제사까지 지내주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우리를 부르던 '동이족'의 이(夷)자는 오랑캐라는 뜻입니다. 병자호란의 호(胡)도 오랑캐를 뜻합니다. 이런 조선이 명나라를 아버지 나라라고 부르며 후금을 천하게 여기는 것을 청나라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왕자 때부터 이런 모습을 보아 온 홍타이지가 황제가 되자 노골적인 불만으로 터진 것이 병자호란의 원인 중 하나입니다. 


사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청나라 침입도. 명나라의 모문룡은 가도에서 백성들을 괴롭혔고, 청군은 백마산성 등 우리측 방어선을 우회하여 곧장 한양으로 내려왔다. [인조반정과 외교](사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청나라 침입도. 명나라의 모문룡은 가도에서 백성들을 괴롭혔고, 청군은 백마산성 등 우리측 방어선을 우회하여 곧장 한양으로 내려왔다. [인조반정과 외교] / ⓒ 교과서, 편집 www.kiss7.kr)


후금이 강해지면서 조선은 명나라 뿐 아니라 후금에게서도 예의 없는 일을 많이 당하였습니다. 다만, 명나라의 멸시는 받아들이면서도 새로운 강자인 청나라에게는 준비된 것 없이 발끈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병자호란의 원인이었습니다.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가 사신을 보내도 접견조차 하지 않은 일도 있었고, 황제 즉위식에 가서도 오랑캐에게 절을 할 수 없다하며 꼿꼿하게 버티다가 화를 샀습니다. 청나라도 '인열왕후'의 조문단으로 와서 예의 없이 굴었고, 더불어 백성들도 청나라 사신에게 돌팔매를 하는 등 사태가 악화되었습니다. 





병자호란과 인조반정 2 - 조선의 악재


1600년대 초기의 청나라는 매우 답답한 처지였습니다. 식량문제와 경제문제가 심각한데 명나라를 돌파하지도 못하고 시간만 흐르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명나라를 치기 전에 뒤통수가 될 조선을 먼저 제압하려는 것도 병자호란 원인이 됩니다. 

인조반정 조정도 나름대로는 여러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광해군 때의 절묘한 외교전술을 배워서 청나라의 부당한 요구도 웬만하면 참았습니다. 더불어 각 지역의 성을 축조하고 어영군, 수어청, 총융군을 신설하고 전국의 속오군 병력을 증가시켜 9만 명 정도를 확보했습니다. 


사진: 어영군, 수어청, 총융군 등은 인조반정 후 정묘호란을 거치면서 설치된 직업군인 제도이다. 실제로 병자호란의 정방산성 등에서 실력을 보여주었다. [병자호란과 조선의 악재](사진: 어영군, 수어청, 총융군 등은 인조반정 후 정묘호란을 거치면서 설치된 직업군인 제도이다. 실제로 병자호란의 정방산성 등에서 실력을 보여주었다. [병자호란과 조선의 악재] / ⓒ drunker)


그러나 문제도 있었는데, 정묘호란 때는 '모문룡'도 한 가지 원인이었습니다. 모문룡은 명나라 장수로서 평안도 '가도'에 주둔해 있었습니다. 후금이 명나라를 치러 가면 뒤에서 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모문룡이 가도에 있었던 진짜 이유는 명나라와 조선의 무역을 중개해서 막대한 이익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조선 정부의 보조를 받아서 떵떵거리며 살았고, 정묘호란이 끝나자 다시 돌아와서는 평안도 양민을 학살하며 보복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사진: 남한산성의 모습. 남한산성의 방어는 훌륭한 편이지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지방군의 활동이 무력하다는 것이다. [병자호란과 조선의 악재](사진: 남한산성의 모습. 남한산성의 방어는 훌륭한 편이지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지방군의 활동이 무력하다는 것이다. [병자호란과 조선의 악재] / ⓒ Noh Mun Duek)


조선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악재도 겹쳤는데, 정묘호란 때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자 남은 일당들이 후금으로 도망가서 조선을 칠 것을 요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묘호란 이후에는 인조가 각 지방에 청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라는 공문을 보냈는데, 이것이 청나라 사신의 손에 들어가는 실수까지 있었습니다. 뒤늦게나마 청의 심기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화해문서를 가지고 만주로 출발했지만, 그 사이 이미 청나라의 대부대가 국경을 넘어버렸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병자호란의 인조반정 조정은 서인들의 벼슬 나눠먹기로 인해 지휘관이 무능했고, 모함을 일삼아서 지방군이 훈련도 하지 못하던 때이다. [병자호란과 조선의 악재](사진: 병자호란의 인조반정 조정은 서인들의 벼슬 나눠먹기로 인해 지휘관이 무능했고, 모함을 일삼아서 지방군이 훈련도 하지 못하던 때이다. [병자호란과 조선의 악재] / ⓒ KBS 왕의 얼굴)


결국 병자호란의 원인은 수많은 이유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인 것입니다. 보수적인 조선의 사대부들은 상대의 힘을 알면서도 정신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애써 상대를 무시했고, 수많은 백성의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국세정세 상에서 어쩔 수 없는 전쟁일 경우, 국가 지도자가 해야 할 최우선은 국민의 희생이 최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조와 조정에서는 명나라를 섬기는 것과 서인이 정권을 독차지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으니, 현대에 주는 교훈이 남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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