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지율 -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국정지지율(최고/최저)
대통령은 선출직이기 때문에 국정지지율은 행정동력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1990년대 이전엔 제왕적인 대통령중심제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지지율 조사가 가능해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의 대통령 지지율을 관찰해 봤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이슈를 함께 정리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임기별 최고 / 최저 대통령 지지율 비교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재임했습니다. 김영삼의 대통령 지지율은 최고 83%, 최저 6%였습니다.
(사진: 김영삼 제14대 대통령. 최초의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으나 IMF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았다. 대통령 지지율이 극과 극이었다. [임기별 최고 / 최저 대통령 지지율 비교] / ⓒ 미상)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재임했습니다. 김대중의 대통령지지율은 최고 71%, 최저 24%를 기록했습니다.
(사진: 김대중 제15대 대통령. IMF극복과 노벨 평화상 수상을 했으나 대북송금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고전했다. [임기별 최고 / 최저 대통령 지지율 비교] / ⓒ 미상)
그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재임했습니다. 노무현의 대통령 지지율은 최고 60%, 최저 12%입니다.
(사진: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최초의 현대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대통령. 서민 대통령으로 인기가 있었으나 재벌개혁에서 반격이 심하여 대통령 지지율은 불리햇었다.[임기별 최고 / 최저 대통령 지지율 비교] / ⓒ 미상)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재임했습니다. 이명박의 대통령지지율은 최고 52%, 최저 21%입니다.
(사진: 이명박 제17대 대통령. 대북 강경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격을 많이 당했고 4대강 사업으로 국민부담을 주었으나 비교적 대통령 지지율 관리를 잘 했었다. [임기별 최고 / 최저 대통령 지지율 비교] / ⓒ 미상)
마지막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재임합니다. 박근혜의 대통령 지지율은 최고 60%, 최저 5%입니다.
(사진: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독재정권 향수로 인해 대통령 지지율에서 득을 보았다. 고정 지지자가 있다는 유리함이 있으나 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무너지며 헌정사상 최저 지지율을 기록했다. [임기별 최고 / 최저 대통령 지지율 비교] / ⓒ 미상)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통 털어서 가장 높은 지지율은 김영삼 정부 초기의 83%입니다. 가장 낮은 지지율은 박근혜 정부 4년차의 5%입니다.
임기별 대통령 지지율 변화 그래프
각 대통령 별 지지율 변화를 그래프로 작성하여 시점 별 주요사건을 첨부하였습니다. 아래 사건들과 그래프를 비교하면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변화
(사진: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변화.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그래프이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변화] / ⓒ www.kiss7.kr)
2013년 :
3월 국정원 선거 개입 조작 논란, 4월 북한과 개성공단 공방, 5월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사건, 8월 적극적 외교 방문, 11월 NLL 대화록 논란으로 정국 물타기 시도, 11월 정의구현사제단 박근혜 퇴진미사, 12월 철도민영화 논란
- 2013년의 높은 대통령 지지율을 보인 원인은 외교 행보의 평가 때문이라고 합니다.
2014년 :
1월 통일은 대박 발언, 2월 세모녀 사건 후 무상복지 논쟁, 4월 최악의 재난사고 세월호 침몰, 8월 통합진보당 수사 시작, 10월 단통법 실시, 11월 한중FTA 체결, 12월 통진당 정당을 해산시켜 버림, 12월 정윤회 십상시 문건으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건
- 급격한 지지율 하락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개입 때문으로 보입니다. 임기 중 계속된 국정농단 사건과 비판이 있었습니다.
2015년 :
1월 담배값 인상, 3월 주미 대사 피습사건, 4월 정부 정치인의 금품비리 성완종 리스트 사건, 성완종 5월 메르스 전염병 대응 실패, 7월 국정원 해킹 도입 논란, 8월 DMZ 북한의 목침지뢰 사건, 10월 역사 국정교과서 사태, 11월 대규모 반 박근혜정부 항의 시위, 12월 피해자 동의없이 위안부 협상 타결
- 대북 안보 충돌 이후 극보수화가 되면서 국정교과서 문제 등에 보수층 집결이 일어나서 대통령 지지율의 상승이 있었습니다.
2016년 :
2월 개성공단 폐쇄, 2월 여당 강행처리에 항거한 야당의 필리버스터,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참패, 4월 보수폭력단체에 대한 청와대 지원설, 6월 국책기관 부서장의 천황폐하 만세 사건, 7월 성주에 미군 방공망인 사드미사일 배치 결정, 10월 국회에서 개헌 추진 언급, 10월 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 사건, 11월 헌정 사상 최저 대통령 지지율 5% 기록
- 국정권 개입, 십상시 국정농단 등의 의혹이 마침내 최순실 연설문 사건으로 지지율 최저를 만들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 6%를 깨고 역사상 가장 낮은 지지율을 얻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 변화
(사진: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 변화.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그래프이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 변화] / ⓒ www.kiss7.kr)
2008년 :
4월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 5월 한미 소고기 수입협상을 타결하며 전국적인 촛불시위, 7월 금강산 관광객의 피살 사고, 9월 과자 등 먹거리의 멜라민 사태, 10월 금융위기로 주가 하락 사태, 12월 노건평, 박연차 구속 수사
- 상위층 위주의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서민 등 일반 국민과의 소통이 안 된 것이 대통령 지지율 급하락의 원인입니다.
2009년 :
1월 과잉진압으로 용산 대참사 발생, 1월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4월 신종플루 공포의 유행, 5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월 아동폭행법 조두순 사건, 11월 롯데월드를 위한 봐주기 논란, 11월 대청해전으로 서해 남북충돌
-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보복성 수사로 또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북한과의 충돌로 인해 급상승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
2월 4대강 사업 강행에 따른 국론분열, 3월, 천안함이 피격사태로 침몰, 6월 총리실에서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 참패, 6월 세종시 행정기관 이전 백지화, 9월 김정은 세습 공식화, 11월 북의 연평도 포격으로 안보위기, 12월 한나라당(현,새누리당) 예산날치기로 3년 연속 날치기 강행
- 북한 강경 노선이었지만 오히려 더 많이 당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위기일 수록 대통령 지지율은 올라가는 현상에 힘 입어 지지율이 급상승합니다.
2011년 :
1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충돌, 1월 저축은행 사태로 경제 혼란, 1월 구제역 확산 사태, 7월 평창겨울올림픽 유치,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찬반투표로 극한 복지논쟁 돌입, 9월 장관과 검찰 로비사건인 이국철 폭로사건, 11월 한미FTA 강행통과로 극한 대치, 12월 김정일 사망, 12월 재벌들의 종편 개국
- 보수측에서 계속 복지논쟁을 일으켰으나 정치적으로는 지지율이 하락했습니다. 피해자는 서민이기 때문입니다.
2012년 :
5월 유럽 경제위기 여파, 7월 북한 김정은 권력 승계, 7월 세종자치시 공식 출범, 7월 강남스타일 세계음악 성공, 8월 대통령 독도방문, 11월 돈검사 성추문검사 브로커검사 비리사건, 12월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 12월 무역 1조 달러 돌파
- 이명박은 친일파라는 인식에 대해 대일 강경 발언도 했지만, 경제가 안 좋아서 지지율은 20%대로 마감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 변화
(사진: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 변화. 2003년부터 2007년까지의 그래프이다.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 변화] / ⓒ www.kiss7.kr)
2003년 :
3월 평검사와의 토론 이슈, 5월 부동산 대책 발표, 7월 부안 방폐장 사태, 7월 사스 전염병 사태 방역성공, 8월 전시작적권 환수 언급, 8월 대북특검 후폭풍, 9월 법원과 검찰 충돌, 10월 구.한나라당(현.새누리당) 차떼기 기업비자금 수사, 10월 대통령 재신임 언급, 11월 열린우리당 창당, 12월 수출 3000억 달러 달성, 12월 이라크 파병 확정
- 부동산 가격 상승의 큰 부담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했고, 재신임 언급 등으로 인해 인기가 떨어졌습니다.
2004년 :
2월 국군의 이라크 파병, 3월 대통령 탄핵 사건, 4월 칠레FTA협정 발표, 4월 고속철도 시대 개막, 5월 17대 총선 대승, 5월 슈퍼유럽연합 탄생, 9월 성매매특별법 단속, 10월 행정수도 이전 위헌결정, 11월 극보수 뉴라이트 확대, 12월 4대 개혁입법 진통
- 재벌 언론 개혁을 시도했으나 재벌 언론의 보복성 기사들로 인해 대통령 지지율 확보에서 가장 불리한 대통령이었습니다.
2005년 :
2월 황우석 줄기세포 파문, 3월 호주제 폐지, 6월 총기난사 사건, 7월 구.안기부(현.국정원)의 불법도청 비리 적발, 8월 종합부동산 대책 발표, 9월 코스피지수 주가 최고치 기록, 10월 검찰과 청와대 수사지휘권 충돌, 11월 새 청계천 개방, 11월 쌀시장 개방 비준, 11월 세종특별행정시 본격 진행
- 주가 경제 호조에 힘 입어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했지만 쌀개방은 국민의 강한 저항을 받았습니다.
2006년 :
5월 재보선 참패, 6월 최초의 여성 총리 지명, 7월 북한 핵실험 유엔 제재 결의, 8월 바다이야기 오락실 파문, 9월 중국 동북공정 역사왜곡 사건, 10월 반기문 유엔총장 임명, 10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란, 11월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11월 부동산 버블, 12월 한미FTA 논쟁, 12월 여권 정계개편 발언,
- 부동산 문제가 다시 생기고 각종 논쟁이 계속되면서 심각하게 국민의 지지율이 떨어졌습니다.
2007년 :
6월 한미FTA 정부 협상, 7월 주가 2천과 펀드 3백조 돌파, 7월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해결, 10월 남북정상회담, 10월 삼성그룹 비자금 폭로, 11월 세계육상 대회, 아시안게임에 이어 세계박람회 등 잇달아 유치, 12월 태안 기름유출사고
- 주가와 펀드의 호조와 남북정상회담으로 대통령 지지율의 다시 상승하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지지율 변화
(사진: 김대중 대통령 지지율 변화. 1998년부터 2002년까지의 그래프이다. [김대중 대통령 지지율 변화] / ⓒ www.kiss7.kr)
1998년 :
6월 현대회장의 소떼 북한방문, 10월 시민단체의 소액주주운동 시작, 10월 일본대중문화 개방, 10월 사상논증 논쟁사건, 11월 현대 금강산관광 사업 시작, 11월 구.한나라당(현.새누리당)의 북한에게 세풍, 총풍 부탁사건 재조사, 12월 그린벨트 재조정, 12월 나라살리기 금모으기 운동
- IMF 극복을 위해 국민들의 대통령 지지율이 매우 높았었습니다. 보수당의 북한 결탁사건 이후 더욱 인기가 상승했습니다.
1999년 :
3월 한일 어업협정 파동, 5월 옷로비 의혹사건 청문회, 6월 씨랜드 대형화재 사고, 6월 서해교전 충돌, 9월 동티모르 국군 파병, 10월 대우그룹 몰락, 10월 독재시대 고문경관 자수, 11월 미군 노근리 사건 결론
- 대우그룹 몰락 등으로 경제불안 심리가 다시 생기면서 지지율 하강국면을 맞았습니다.
2000년 :
3월 구제역 파동, 4월 낙산사 소실, 6월 남북 정상회담, 8월 의약분업 갈등, 8월 현대그룹 왕자의 난, 11월 코스닥 불법대출 게이트, 12월 주한미군 소파 개정, 12월 김대중 노벨 평화상 수상
- 남북정상회담 등 정치적 변화에 국민의 대통령 지지율이 수직 상승하였습니다.
2001년 :
2월 언론사 세무조사, 3월 인천신공항 완공, 4월 일본 교과서 왜곡 사건, 5월 건강보험 파탄 위기, 9월 주가조작 게이트 특검, 10월 IMF 조기 졸업, 11월 정보기관 도움받은 살해은폐 공작 사건
- 건강보험, 주가조작 게이트 등 정치적 부담이 IMF 조기 졸업의 업적보다 영향이 컸었습니다.
2002년 :
7월 월드컵 개최와 4강 신화, 8월 태풍 피해, 9월 부산 아시안게임 개최, 9월 일명 개구리소년 유해 발견, 11월 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 두 아들 구속, 11월 공무원 노조 출범, 12월 미군장갑차 여중생사망 사건, 12월 북한 핵시설 봉인 파문
- 월드컵 개최 등으로 대통령 지지율의 호조가 있었으나 두 아들의 게이트로 인한 구속사건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 변화
(사진: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 변화. 1993년부터 1997년까지의 그래프이다.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 변화] / ⓒ www.kiss7.kr)
1993년 :
4월 군내 비리집단 하나회 척결, 4월 공직자 재상공개 및 사정, 7월 국군 첫 해외파병, 8월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8월 대전엑스포 개회, 9월 한의사와 약사 분쟁, 10월 기차, 여객선, 비행기 대형 참사 계속 발생, 12월 우루과이 라운드 쌀개방 타결
- 군부독재의 영향으로 초기 인기가 높았으나 하나회 척결를 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1994년 :
3월 조계종 난투극, 7월 김일성 사망, 7월 서강대 총장 주사파 발언 파문, 9월 세무비리 대형 수사, 9월 지존파 폭력조직 범죄, 10월 전두환, 노태우 쿠데타 수사, 10월 성수대교 대형참사, 10월 북미 제네바 협약 기본합의문 서명
- 각종 참사로 인해 국민의 대통령 지지율도 불리한 상황을 맞이 했고 어수선한 한 해였습니다.
1995년 :
4월 대구지하철 폭발 사고, 5월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 돌입, 6월 북한에 쌀지원, 6월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7월 케이블방송 개막, 7월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 8월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11월 전두환, 노태우 구속, 11월 유엔 안보리 이사국 진출
- 각종 대형 참사가 계속되었지만 쿠데타 재판으로 다시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는 국면을 맞이합니다.
1996년 :
6월 2002년 월드컵 개회 확정, 8월 전두환, 노태우 내란음모 재판, 8월 한총련 사태, 9월 장기불황 시작, 10월 선진국클럽 OECD 가입, 10월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 12월 노동법 날치기 통과
- 장기불황이 시작되면서 레임덕을 뛰어넘는 지지율 저조현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
1월 한보특혜대출 비리, 2월 북한 노동당 비서 망명, 5월 대통령 아들의 국정농단 사건, 8월 북한 핵경수로 시작, 8월 괌 칼기 추락 사고, 9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11월 최대 국난 IMF시대
- 아들의 국정농단 사건은 치명적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맞아고 IMF사태로 인해 6%의 최악의 대통령 지지율을 보입니다.
참고할만한 대통령 지지율의 변화
현대적 통계에 의해 대통령 지지율이 조사되면서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83%이었습니다. 박정희 독재군부를 이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던 하나회를 청산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가장 낮은 최저치를 기록한 대통령 지지율은 박근혜 대통령의 5%입니다. 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비리가 큰 이유였습니다.
(사진: 국민이 방문한 청와대 모습. 대통령은 그 힘이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 대한민국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예전의 왕처럼 모셔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헌신직인 것이다. [참고할만한 대통령 지지율의 변화] / ⓒ 해외문화홍보원)
참고로 가장 낮은 지지율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어서 바로 잡습니다. 노무현 참여정부 때 지지율이 5.4%였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지금은 대통령 지지율을 조사할 때 4가지 중에서 고릅니다. '매우잘한다', '잘한다', '못한다', '매우못한다' 중에서 "매우잘한다+잘한다"를 지지율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당시 통계조사 회사는 이상한 방법을 썼습니다. '매우잘한다', '잘한다', '보통이다', '못한다', '매우못한다'의 5가지 중에서 고르게 한 것입니다. 즉 잘한다를 선택할 사람들이 '보통'으로 이동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고는 "매우잘한다+잘한다"만을 가지고 5.4%라고 언론에서 유포시켰습니다. 그런데 왠지 이명박 대통령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이런 통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 노무현 시대에 불리하게 작용하도록 보수 언론들이 국민을 속여먹은 경우입니다.
(사진: 통계의 허와 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통계가 이루어진 당시와 그 전후의 상황 판단이 같이 있어야만 한다. 무조건 높거나 무조건 낮은 것이라고 훌륭하고 그렇지 않고는 말할 것은 아니다. [참고할만한 대통령 지지율의 변화] / ⓒ Gerd Altmann)
당시 '보통'을 선택한 사람이 29%였으므로, 이명박, 박근혜와 같은 4가지 선택조건이라면 15%~24%는 나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이, 통계라는 것은 그것을 만드는 주제에 따라 악의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수 성향 회사에서 조사할 경우 보수당이 유리하고 진보성향 회사에서 조사할 경우 진보당이 유리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악의를 목적으로 했을 경우라면 조사대상을 처음부터 유리한 부류로 정해 놓고 통계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통계는 그 숫자 그대로만 보면 안되고, 당시 주변 상황과 흐름, 그 이전의 영향관계를 고려해서 판단해야만 적정한 평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