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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왜 제창과 합창의 차이가 문제인가? -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곡 논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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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왜 제창과 합창의 차이가 문제인가? -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곡 논란

키스세븐지식 2016. 7. 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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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왜 제창과 합창의 차이가 문제인가? -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곡 논란

5.18 광주민주화 항쟁을 대표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매년 5월 18일을 맞을 때마다 논란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5.18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을 부르는 순서에서, 누군가는 제창을 해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합창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 제창과 합창이 논란거리가 되었을까요?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과 제창의 차이? 


제창을 할 것이냐, 합창을 할 것이냐는 보수측에서 대통령이 된 이후, 매년 5.18을 맞을 때마다 논란이 됩니다. 진보측에서는 제창을 요구하고, 보수측에서는 합창을 고집합니다. 제창을 할 것인가, 합창을 할 것인가는 국가보훈처에서 결정하는데, 국가보훈처는 보수적인 기관이므로 제창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즉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의 핵심은 보수측이 5.18 민주화운동을 보는 시각이 어떠한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진: 5.18 민주묘지 전경. 1980년 5월 광주 민주운동에서 순국한 시민들을 추모하는 곳이다. 하지만 보수당이 집권한 이후 매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합창으로 논란이 있다.(사진: 5.18 민주묘지 전경. 1980년 5월 광주 민주운동에서 순국한 시민들을 추모하는 곳이다. 하지만 보수당이 집권한 이후 매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합창으로 논란이 있다. / ⓒ 518.org)


사전적 의미로 제창은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고, 합창은 합창단이 부르거나 참석자들이 같이 부르는 것입니다. 제창과 합창의 차이를 예를 들자면, 공식행사에서의 애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공식행사에서 애국가 제창순서가 되면 다 같이 일어나서 애국가를 불러야 합니다. 즉 약간의 강제적인 성격이 포함됩니다. 

하지만 애국가 합창이라고 하면 합창단이 부르는 것을 구경만 해도 되고, 그 순서에 다른 짓을 해도 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에서 제창과 합창의 주장 차이는 이렇게 달라집니다. 


사진: 이 장면은 합창을 하는 장면이다. 합창단에 맞춰 관객이 같이 노래하든 말든 상관없는 것이 합창이다. 만약 제창이라면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서 같이 노래해야 한다. 이것이 제창과 합창의 차이다.(사진: 이 장면은 합창을 하는 장면이다. 합창단에 맞춰 관객이 같이 노래하든 말든 상관없는 것이 합창이다. 만약 제창이라면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서 같이 노래해야 한다. 이것이 제창과 합창의 차이다. / ⓒ wikimedia.org)


그렇다면 왜 보수측은 구태여 제창을 막고 합창을 하게 하려고 하고, 진보측은 왜 제창을 원하는지 내면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5.18기념식이 찍힌 동영상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지만 어떤 보수인사들은 부르지 않는 모습이 보입니다. 

진보측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독재에 항거를 표현하는 상징인 반면, 보수측에서는 결국 기존 권력에 대한 대항의 상징일 뿐입니다. 즉, 겉으로는 할수 없이 5.18 광주항쟁을 민주주의 항거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온곡이라면 아예 합창도 해서는 안 되지만, 합창은 허용되고 제창은 막으려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진: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계엄군에 항거하는 시민 시위가 일어났다. 5.18 민주화운동은 세계기록 유산에도 등재되어 있어서 국내외에서 인정된 민주화운동이다. 사진은 시민 및 입시학원생까지 곤봉으로 구타하는 공수부대 대원들의 모습.(사진: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계엄군에 항거하는 시민 시위가 일어났다. 5.18 민주화운동은 세계기록 유산에도 등재되어 있어서 국내외에서 인정된 민주화운동이다. 사진은 시민 및 입시학원생까지 곤봉으로 구타하는 공수부대 대원들의 모습. / ⓒ 518.org)


얼핏 보면 5.18 민주화 운동이 과거의 독재정권인 전두환 정부에서의 항거 정도로만 보이지만, 전두환 정부는 박정희 정부처럼 독재정부를 하려고 했던 정부입니다. 또 얼핏 보면 그 이후 민주화가 되었기에 지금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지만, 지금의 새누리당의 뿌리는 그 이전의 한나라당이고 또 그 이전의 신한국당, 민주정의당에서 이어져 왔습니다. 

한국 보수의 영원한 아킬레스건은 독재입니다. 어떡해서든 과거에 보수가 독재를 하지 않았다고 우기고 싶고, 독재를 했다는 사실을 뒤엎고 싶기 때문에 민주화를 인정하기 싫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진: 전두환의 민정당, 노태우의 민자당에서 부터 신한국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설명하는 변천사. 민정당 이전에는 박정희의 공화당이 있었다. 이런 분류는 기득권 정치정당의 주류의 흐름을 말한다.(사진: 전두환의 민정당, 노태우의 민자당에서 부터 신한국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설명하는 변천사. 민정당 이전에는 박정희의 공화당이 있었다. 이런 분류는 기득권 정치정당의 주류의 흐름을 말한다. / yonhapnews.co.kr 반종빈)







5.18과 임을 위한 행진곡, 무엇을 반대하는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것인지, 합창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이 지금처럼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민주화가 된 후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서 반역으로만 여겨지던 5.18 민주항쟁이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로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5.18 기념식에서 정식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해 왔었습니다. 

그러다가 정권이 보수세력으로 넘어간 이명박 전 대통령 시기에 슬쩍 비정식 순서에서 부르도록 빼버렸고, 2010년이 되자 아예 제창을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사진: 정식 순서에서 빼버리고, 다 같이 부르는 순서가 아니라, 합창단의 합창을 듣는 순서가 되어 버린 5.18 추모행사. 과거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으로 진행될 때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함께 노래를 불렀었다.(사진: 정식 순서에서 빼버리고, 다 같이 부르는 순서가 아니라, 합창단의 합창을 듣는 순서가 되어 버린 5.18 추모행사. 과거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으로 진행될 때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함께 노래를 불렀었다. / ⓒ 청와대 사진기자단)


국가보훈처는 애국가도 제창곡으로 지정되지 않았으므로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곡으로 지정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지만, 삼일절 날에는 삼일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고 개천절에도 역시 그러하므로 처음부터 제창을 막기 위한 목적을 정해 두고 막고 있다는 것이 맞겠습니다. 

또한 보수연합 등에서는 이 노래가 반체제곡이므로 반대한다고 하고, 시민보수단체는 5.18 자체를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보수측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보는 시선이 어떠한지 누구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겉표면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합창이 문제지만, 속알맹이는 5.18 민주항쟁을 문제삼고 싶은 것이 핵심입니다. 


사진: 합창과 제창의 차이는 행사에 모인 참관인들의 마음이 통합되어 표현되느냐 아니냐의 관계이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등에서는 국민통합과 갈등해소를 위해서라며 금지를 하고 있으나,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이 되고 만다.(사진: 합창과 제창의 차이는 행사에 모인 참관인들의 마음이 통합되어 표현되느냐 아니냐의 관계이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등에서는 국민통합과 갈등해소를 위해서라며 금지를 하고 있으나,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이 되고 만다. / ⓒ newsis.com)


임을 위한 행진곡이 반체제 혁명곡이라서 안 된다는 주장을 보면, 정부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개념에서 정부란 어느 시기의 정치를 맡고 있는 정치 주체입니다. 즉 정부가 잘하면 계속 정치를 주도하고, 못하면 다른 정부로 바꾸는 것이 민주주의 개념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후진국형 사고관념을 가진 사람은 정부가 곧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즉 국가에 대항해서는 안 되듯이 정부에도 대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정부가 잘못하는 정부였다면, 당연히 반체제 혁명 노래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모습. 제창과 합창 논란이 왜 문제인지 이해 못한다면 이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모습. 제창과 합창 논란이 왜 문제인지 이해 못한다면 이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없던 것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문제없이 해 오던 것을 슬그머니 못하게 하는 상황".... 이것이 핵심이다. / ⓒ YTN)


표면적으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느냐, 합창하느냐의 차이 정도로 보이지만, 그 내면은 결국 5.18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의 심각한 문제에 다다릅니다. 현재 대통령은 국론분열의 위험성이 있어서 이 노래의 제창을 반대한다고 하였지만, 그 내면에는 민주화를 반대하는 편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해석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만약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가자 높은 가치에 둔다면, 국민분열을 이유로 세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화운동을 국민에게 홍보하고 계몽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곧 국가라는 후진국형 개념에 잡혀 있다면, 정부가 아무리 잘 못 하더라도 민주항거는 결국 반역이고 반란이므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진: 12.12 군사쿠데타로 대통령까지 오른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우측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이다. 보수측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반체제곡이라면서 반대하지만, 오히려 전두환, 노태우가 반체제 국가 전복을 통해 대통령에 오른 사실은 생각해보지 못한다.(사진: 12.12 군사쿠데타로 대통령까지 오른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우측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이다. 보수측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반체제곡이라면서 반대하지만, 오히려 전두환, 노태우가 반체제 국가 전복을 통해 대통령에 오른 사실은 생각해보지 못한다. / ⓒ MBC)


지금도 극보수 단체의 홈페이지에서는 광주폭동이라며 당시의 독재정부를 편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5.18 민주화 추모행사에 맞불을 놓기 위해서 일부러 계엄군 전사자 추모집회를 합니다. 마치 시샘 많은 어린아이 같습니다. 물론 계엄군도 명령에 의한 전사이니 추모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에는 부산/마산 시위나 서울 시위 등이 벌어지고 있었고, 부산/경남도 야권지역이었기 때문에 광주와 같은 희생은 대구를 제외한 어디든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광주이기 때문에 좌파논란을 씌우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1987년 6.10 민주화항쟁은 승리한 항쟁이었기에 승복하고, 1980년 5.18 민주화항쟁은 진압당한 항쟁이라서 아직도 공격당해야 하는 불운이 있을 뿐입니다. 


사진: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5.18 민주화운동에서 많은 시민들도 죽었고 진압하던 군인들도 죽었다. 그 사이에는 독재정부의 흉계가 있었다. 북한 관련설을 처음 공식으로 유포한 것도 군사 독재정부였고, 외신 기자들도 보수측의 주장이 허황된 주장임을 증언하고 있다.(사진: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5.18 민주화운동에서 많은 시민들도 죽었고 진압하던 군인들도 죽었다. 그 사이에는 독재정부의 흉계가 있었다. 북한 관련설을 처음 공식으로 유포한 것도 군사 독재정부였고, 외신 기자들도 보수측의 주장이 허황된 주장임을 증언하고 있다. / ⓒ 영화 화려한 휴가)







합창과 제창의 논란인 "임을 위한 행진곡", 어떤 노래인가?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1년에 만들어졌습니다. 1980년 쿠데타로 새로운 독재정권이 들어서자 이에 항거하다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오랜 독재를 한 후 1979년 암살당하자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국민이 스스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발상입니다. 암살사건이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한국은 부산, 마산의 부마항쟁 등 민주화요구가 일어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광주가 아니라면 부산/마산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는 사건입니다. 


사진: 1979년 부산, 마산의 부마항쟁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지며 탱크가 도시에 들어간 모습.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 아직도 공격을 받는 이유는 전라도였기 때문이다. 만약 부마항쟁 때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지금과는 다른 대우를 받을 것이다.(사진: 1979년 부산, 마산의 부마항쟁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지며 탱크가 도시에 들어간 모습.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 아직도 공격을 받는 이유는 전라도였기 때문이다. 만약 부마항쟁 때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지금과는 다른 대우를 받을 것이다. / ⓒ 김탁돈)


5.18 민주화운동이 폭력 진압된 후, 5.18 민주화 운동 중 사망한 학생과 야학 시민운동 중 사망한 학생을 위한 영혼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얼마 후, 영혼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던 황석영, 김종률, 전용호는 그 마음을 노래테이프로 만들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작곡은 대학가요제에서 수상한 적이 있는 김종률이 하였고, 작사는 소설가 황석영이 시민운동가 백기완의 시에서 따와 개사를 하였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일본과 동남아시아 등에 민중가요 및 노등가요로 보급되어서 제법 알려진 곡이기도 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가 되었던 백기완의 시는 "묏비나리"라는 시입니다. 시에서 따온 가사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진: 김종률 작곡의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작사에 이용된 백기완과 황석영을 문제 삼지만, 이 곡이 5.18의 상징처럼 된 것은 애절한 (사진: 김종률 작곡의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작사에 이용된 백기완과 황석영을 문제 삼지만, 이 곡이 5.18의 상징처럼 된 것은 애절한 "영혼결혼식"의 영향 때문이었다. / ⓒ 미상)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사진: 아래 인물의 안타까운 영혼결혼식을 올린 박기순과 윤상원.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시위대를 위한 곡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영혼결혼식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이다.(사진: 아래 인물의 안타까운 영혼결혼식을 올린 박기순과 윤상원.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시위대를 위한 곡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영혼결혼식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이다. / ⓒ 미상)


가사의 내용을 보면, 이미 죽은 자를 추모하며 앞으로의 다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북논란을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여기서 죽은 임은 북한의 김일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김일성은 살아 있었습니다. 

백기완과 황석영이 반정부 인사였고 황석영이 불법방북을 했던 것에서 종북논란은 더해집니다. 하지만 이 곡이 만들어진 시기와 상황은 황석영이 방북을 하기 훨씬 이전의 것이었고, 황석영은 말년에 보수정권을 편들기도 했었으므로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더구나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이 2년이나 지난 후에 만들어진 곡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매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 때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해야 한다와 합창해야 한다로 논란이 불거집니다. 프랑스가 세계 최초의 민중민주주의를 중요시하여 2월 혁명, 7월 혁명을 기념하듯이, 한국이 아시아 최초의 자력 민주주의 정권탄생을 중요시하려면 5.18을 더욱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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