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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의 작품 속 눈동자와 모딜리아니의 여인 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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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의 작품 속 눈동자와 모딜리아니의 여인 잔

키스세븐지식 2016. 1.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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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의 작품 속 눈동자와 모딜리아니의 여인 잔] 




유독히 눈동자를 안 그린 작품이 많은 화가 모딜리아니에게는 잔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모딜리아니가 작품에서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사랑하는 잔에게 한 말을 유추하여 보면 모딜리아니의 작품세계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잘 생긴 얼굴에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화가, 그러나 너무나 가난하게 살아서 한편으론 안쓰러운 화가, 먹고 살기 위해 인물화가 대부분인 화가 모딜리아니... 그리고 애절한 죽음을 맞아야 했던 부인 잔...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유명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모딜리아니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법한 그림이 있습니다. 목도 길고 손가락도 긴 여인이 큰 모자를 쓰고 손가락으로 턱을 괸 그림입니다. 이 작품의 이름은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달력에도 장식품에도, 심지어 학생들이 쓰는 참고서에도 등장하는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모딜리아니입니다. 어떤 사람은 작품만 알고 어떤 사람은 화가의 이름을 알겠지만, 어떤 사람은 화가의 일생을 생각하며 애틋해 하는 그림입니다. 위의 모딜리아니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은 그의 부인 잔입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그의 부인을 그린 큰 모자를 쓴 에뷔테른 그림)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19세기말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36세에 요절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원래 부유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유태인의 토지소유를 금지한 법을 어기고 사업을 하다 몰락한 후 계속 어렵게 살았습니다. 14세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삼촌의 도움으로 그림공부를 했습니다. 

미술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피카소의 작품인 "알제의 여인들"입니다. 그리고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작품입니다. 가난 속에 힘들게 살았던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그가 죽은 뒤, 2015년에 미술품 경매에서 약 197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그림인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이유 - 모딜리아니 작품 세계 


당시 시대는 인상파의 르누와르, 입체파의 피카소, 야수파의 마티스 등이 유명해진 시기였고, 모딜리아니는 세잔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파리로 간 모딜리아니는 처음엔 누드를 배웠습니다. 조각가로 전향을 하고 싶어 했지만 폐결핵에 걸린 병약한 몸으로는 견딜 수 없어서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림을 향한 열정은 끝이 없었지만, 그림을 사주는 사람도 없었고 개인전을 열 돈도 없었기에 빈곤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피카소는 사교계에서 인맥을 쌓으며 명성을 다져갔지만, 모딜리아니는 그럴만한 사교술도 없었습니다. 

지인의 도움으로 평생 단 한 번의 개인전을 열 기회가 있었으나 전시된 누드작품들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빈곤하고 불우한 삶으로 요절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분석을 통해 최대한 단순화되고 대담한 표현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단순화를 통해서 그리기 때문에, 그림 속 인물의 성격이나 감정마저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얼굴, 목, 손 등을 길쭉한 도형으로 해석하여, 어찌 보면 연약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모딜리아니의 여성적인 화풍은 그래서 현대적인 감성과 잘 어울립니다. 

모딜리아니는 부인 잔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림의 눈동자를 그릴 것"이라고...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왜 모딜리아니의 작품에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작품이 많은지, 왜 주변 지인들의 초상화에는 눈동자가 그려져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눈동자를 영혼의 창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모딜리아니가 직접 자기 그림의 눈동자를 설명한 기록은 없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중에는 유독히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작품이 많다)





비극적은 결말, 애틋한 사랑의 모딜리아니와 잔느 


모딜리아니는 병약하고 가난한 화가입니다. 삼촌이나 동생, 몇몇 그림 후원가가 도와주었기에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유행한 데카당스적 영향까지 받아서 술과 대마초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화가에게 생계수단은 인물화를 그려 준 수고비가 고작이었기에,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인물화가 대부분입니다. 

잘 생긴 외모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한때 여기자와의 사랑에 빠지기도 했었지만, 그녀는 너무도 정렬적인 여자였기에 모딜리아니가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녀와 헤어진 후 모딜리아니는 더욱 피폐해져서 술을 얻어먹고 그림을 그려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중 33세의 모딜리아니는 모델 겸 화가 지망생인 19세의 잔을 소개 받았습니다. 둘은 열정적인 사랑을 했지만 잔의 부모는 독실하고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반대가 심했습니다. 



(비극적 자살을 한 모딜리아니의 부인 잔 에튀테른)


모딜리아니와 잔은 반대를 무릅쓰고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곧 예쁜 딸을 낳고 두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생활의 빈곤은 두 사람을 힘들게 했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모딜리아니는 술집이든 어디든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돈을 벌기도 했지만, 한 겨울이면 난방비도 없어서 추위에 고스란히 떨며 지내야 했습니다. 결국 아내 잔과 딸은 친정으로 가서 지내야 했습니다. 모딜리아니에게는 다시 노숙자 같은 생활이 시작되었고, 아내와 딸이 보고 싶어 찾아가도 장모의 냉대로 인해 그냥 돌아가야 했습니다. 나중에 모딜리아니의 병이 깊어져서 지방에 요양을 하러 내려갈 때는 다행히 잔이 병간호를 위해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었습니다. 파리로 돌아온 후 모딜리아니는 결핵성 뇌막염이 악화되어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스물두 살의 잔은 친정집의 5층에서 투신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잔은 임신 8개월의 몸이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둘은 10년간이나 따로 매장되어 있다가 가족의 도움으로 같은 곳에 묻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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