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그라드 전투(1) - 2차대전 최악의 사상자를 낸 공방전]
인류 최악의 전투 중 하나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입니다.
스탈린그라드는 지금의 러시아에 있는 볼고그라드라는 도시의 옛 이름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이 도시의 시가전과 포위전에서 무려 2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소련군 병사의 평균 생존 시간은 24시간... 하루에 7만 명이 전사하기도 했던 독일군...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생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와 영화 "스탈린그라드"가 이 최악의 전투를 배경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스탈린그라드로 마음을 바꾼 히틀러
강원도의 남녀노소를 다 합친 인구가 200만 명인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젊은이 200만 명의 군인과 수만 명의 민간인이 사상자로 남은 어처구니 없는 전투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입니다. 애너미 앳 더 게이트는 당시 유명했던 스나이퍼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이고, 스탈린그라드는 일반 병사가 겪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영화입니다.
두 영화 모두 독일에서 제작한 것을 보길 권장합니다. 전장에서의 인간적 내면과 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나치독일의 모스크바와 스탈린그라드 침공 / 키스세븐 자체제작)
히틀러는 소련인을 얕잡아 봤었습니다. 1939년 폴란드 침공 후 독일과 소련이 불가침 조약을 맺었으나, 히틀러의 속마음은 언젠가는 소련을 제거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스탈린은 웬만하면 히틀러와 싸우지 않고 중간 이득을 보려고 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 구도가 깨진 것은 1941년 독일의 침공입니다. 이렇게 해서 소련측의 사상자 2000만 명을 포함한 총 사상자 3000만 명을 발생시킨 독일 동부전선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 (2001)
Enemy at the Gates
- 감독
- 장-자끄 아노
- 출연
- 주드 로, 조셉 파인즈, 레이철 와이즈, 밥 호스킨스, 에드 해리스
- 정보
- 액션, 전쟁 | 독일, 영국, 아일랜드, 미국 | 131 분 | 2001-05-19
히틀러는 6개월 정도에 소련을 싹쓸이 하려고 계획했었고 실제로 개전 초기에는 독일이 모스크바 함락을 눈앞에 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련의 저항이 생각보다 완강했고 겨울로 들어서며 모스크바 진격이 지지부진해지게 되었습니다.
1942년이 되자 히틀러가 병력을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소련 남부지역을 점령해야겠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참모들은 모스크바 점령마저 힘들어진다며 반대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독일 병사들을 사열하는 아돌프 히틀러 / 출처: telegraph.co.uk)
최정예 독일 6군의 스탈린그라드 침공
히틀러는 남부지역의 석유와 광물, 공업시설이 탐났던 것입니다. 유전지역을 확보하게 되면 소련의 연료공급을 압박할 수 있고, 더불어 독일의 연료문제는 해결이 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소련의 서남쪽을 공격하게 되는데 그곳이 스탈린그라드와 코카서스 지역입니다.
소련 입장에서는 스탈린의 이름이 붙은 공업도시인 만큼 스탈린그라드의 점령은 상징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는 이탈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군도 독일편에서 참가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시작 후 1942년까지만 해도 나치 독일군은 무적의 군대였다)
독일은 대규모 공습으로 스탈린그라드 시내를 폭격한 뒤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방어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시민들이 피난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로인해 수만 명의 민간인 피해가 생겼습니다.
더구나 방공망을 구축하기 위하여 여성 자원자를 고사포에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이 여성들은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 시 내에 진입한 후에도 끝까지 탱크와 맞붙어 싸우다가 거의 전멸하고 맙니다.
(폭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스탈린그라드를 공격해 들어가는 독일군들 / 출처: ww2today.com)
주력인 독일의 6군은 많은 전투경험으로 스탈린그라드의 외곽 방어선을 뚫는 데까지는 잘 해냈습니다. 그런데 독일군들은 시 내부에 진격한 후에는 정규전투가 아닌 희한한 전투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소련군들이 건물 하나하나마다 들어가서 목숨을 건 저항을 했기 때문에 독일의 자랑인 전차부대를 활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적의 부대가 어디 모여 있는지도 알수 없고, 그 큰 스탈린그라드라는 도시의 건물 하나하나마다, 공장 하나하나마다를 점령해야 했는데, 점령하고 지나가면 또 소련군이 몰래 들어가서 저항을 했습니다.
(폐허의 구석구석에 숨어다니며 저항하는 소련군들)
소모품이 된 병사의 목숨, 스탈린그라드 전투
어디서 총알이 날아오는지 알 수가 없는 희한한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에서 독일군은 진격하지 못하고 피해만 늘어갔습니다. 소련군 역시 병사가 죽으면 또 보내고 죽으면 또 보충하는 방식으로 목숨의 무한리필을 해 댔습니다.
이때 소련군은 스나이퍼(저격병)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그 활약상을 그린 영화가 "애너미 앳 더 게이트"입니다. 병사뿐 아니라 장교들까지 스나이퍼(저격병)의 총에 쓰러지자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은 마음대로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전투지역은 확인되지 않지만 독소전쟁에는 여성 스나이퍼들도 존재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독일군은 많은 병사를 소모하면서도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여 결국은 스탈린그라드의 소련군을 삼면에서 포위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한 면이 볼가강에 접한 탓에, 소련은 강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강 건너서 계속 병사를 충원하는 병사 소모전을 펼쳤습니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보충되는 소련 병사 때문에 독일군의 사기가 저하되게 되었습니다.
소련은 멀리 동쪽의 시베리아에서까지 부대를 끌어 모아 스탈린그라드에 투입하였습니다.
(아무리 죽여도 계속 오는 적.. 이건 사람의 전쟁이 아니었다 / 출처: 영화 스탈린그라드)
독일의 부대는 최정예 부대였기 때문에 소련이 견디기에는 버거운 상대였으나, 소련군은 복잡한 건물들로 게릴라전을 하고 계속적인 인해전술로 독일군을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워낙 전투가 치열해서 소련의 신병이 새로 투입되면 평균 24시간 만에 시체가 되었고 볼가강에서는 또 다른 신병이 계속 강을 건너 스탈린그라드에 투입되었습니다.
양쪽이 끝도 없는 병사 소모전을 벌이자 소련마저도 전략예비군을 스탈린그라드로 옮겨서 모스크바 공방전보다 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
(로그인 필요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