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해상 납치 사건
세토우치 여객선 납치 사건

1970년 5월, 일본에서는 무장한 범인이 여객선을 장악하고 인질극을 벌이는 급박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본 세토우치 해상 납치 사건이었습니다. 극한 대치 끝에 경찰은 범인을 사살하고 인질을 구출했습니다.
그런데 사건 자체도 대형 사건이었지만, 이를 지켜 본 일본 국민들의 충격은 더했습니다. 이 과정이 언론에 생중계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총기 규제 강화, 경찰의 소극적인 총기 사용 등의 사회적 이슈까지 크게 번졌었습니다.
일본 해상 납치 사건 - 일본 세토우치 여객선 납치 사건과 충격적인 방송중계
1970년 5월 : 일본 해상납치 사건과 생중계
이 사건은 다수의 승객을 태운 선박을 라이플과 샷건으로 무장한 범인이 장악하고, 경찰이 범인을 사살하여 인질을 구출한 일본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범인 사살 장면이 TV 뉴스로 전파를 타면서 온 국민이 생생하게 지켜봤다는 사실입니다.
카와후지가 갑판으로 나오자 경찰 저격수가 그의 가슴을 저격했고 경찰은 프린스호로 진입해 피투성이 카와후지를 배 밖으로 이끌냈습니다. 카와후지가 저격당하는 과정은 히로시마 TV의 카메라가 고스란히 잡았고 전 일본에 방송되었습니다.

사건 발생 전날: 범인 후지 노부히사의 도주와 계획 실패
사건의 배경과 과정을 보면 이렇습니다.
범인 후지 노부히사는 공범 2명과 함께 후쿠오카 시내에서 차량을 훔쳐 히로시마 방면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마구치 현 내에서 경찰의 검문에 걸려 체포되고 맙니다.
그러나 후지 일당은 경찰서 연행 도중 숨겨둔 칼로 경찰관을 위협하며 탈주를 감행했습니다. 도주 과정에서 차량을 또 훔치고 옷까지 갈아입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히로시마 시내의 우체국을 습격하여 자금을 강탈하려 했지만, 경찰의 삼엄한 경비망에 가로막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5월 12일 : 사건 당일: 세토우치 여객선 납치 사건
히로시마 시민으로부터 "엽총을 든 수상한 2인조가 산에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이미 그들은 다음 범행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범인은 히로시마 현 아키 군 후추 정에서 경찰관의 총을 빼앗고, 지나가던 트럭 운전사를 협박하여 히로시마 시내의 총포상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라이플과 실탄을 강탈한 후, 다시 트럭 운전사를 협박하여 히로시마 항으로 향하는 대담함을 보였습니다.

총격 사건이 실시간 중계된 사건
오후 4시 55분, 후지는 히로시마 항 우지나 제1부두 대합실에서 총기를 난사하여 71세 남성에게 부상을 입힌 뒤, 출항을 준비 중이던 여객선 프린스호에 승선하여 사무장을 인질로 삼고 선박을 장악했습니다. 프린스호는 승객 33명과 승무원 11명을 태우고 오후 5시 20분경 출항했으며, 후지는 선장에게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라"고 협박하고 추격하는 순찰정 및 취재 헬리콥터에 총을 쏘는 뻔뻔함을 보였습니다.
당시 언론의 과도한 취재 열기가 수사에 방해를 주거나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사건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한 언론사 헬리콥터는 총에 맞고, 다른 언론사 경비행기는 연료 탱크에 총알이 박히는 아찔한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는 언론이 사건 취재 시 자제력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일본 해상 납치 사건 : 범인의 광기 어린 인질극
프린스호는 4시간 후 마쓰야마 항에 입항했지만, 후지는 선장에게 다른 배를 요구했습니다. 선장은 경찰과 협의하여 승객을 하선시키면 연료를 보급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후지는 이를 수락하여 승객 37명을 석방했습니다. 그러나 하선하는 승객과 경찰, 취재진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는 광기를 보였습니다. 이후 후지는 선장과 승무원 7명을 인질로 잡고 5월 13일 자정 무렵 마쓰야마 항을 출발, 다시 히로시마 항으로 향했습니다.
경찰은 동료를 데려오라는 후지의 요구를 거부하고, 히로시마 항에 완전 무장한 경찰관 300명을 배치하여 사살을 염두에 둔 작전을 준비했습니다. 또한, 오사카부 경찰에서 라이플 베테랑 저격수 5명을 급파하고, 해상자위대 헬리콥터까지 동원하는 등 초강경 대응을 펼쳤습니다. 경찰은 후지의 아버지와 누나를 설득에 나섰지만, 오히려 후지는 총을 난사하며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쎄도우치 시 이자악 사건 : 저격과 그 이후
오전 9시 52분,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저격수는 후지의 좌측 가슴을 관통하는 총알을 발사했고, 그는 갑판에 쓰러졌습니다. 경찰은 즉시 선박에 진입하여 후지를 제압하고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결국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이 사건은 인질 피해 없이 해결되었지만, 범인을 사살한 저격수와 사살 명령을 내린 경찰 본부장은 고발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정당방위로 판단했고, 오히려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건 이후, 범인을 사살한 경찰관은 일부 여론과 언론의 비난으로 사직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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