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사망 사건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이 기사는 2014년 연천 28사단에서 사망한 윤승주 일병 사망과 가혹행위 범죄 사건을 다룹니다. 피해자뿐 아니라 범죄자의 모든 정보는 언론에 이미 공개된 것들만을 가지고 정리했습니다. 징역 후 근황까지도 정리합니다.
이 사건은 인간성의 악마화, 수사의 문제점, 군과 정부의 시각 문제 등이 모두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한 달 동안 밤낮으로 학대 받던 병사가 고통스럽게 죽어갔는데, 유가족마저 냉대당하고 배상마저 제대로 받지 못한 억울한 전 과정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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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사망 사건 - 경기도 연천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죽음부터 재판까지 모두 억울했던 사건
2014년, 경기도 연천에 있는 육군 28사단에서 선임병들의 집단 구타 및 가혹행위로 인해 윤승주 일병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더구나 문제는 군이 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마터면 억울한 죽음이 될 뻔했지만, 다행히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진실이 밝혀질 수 있었습니다.
윤 일병은 전남과학대학 간호학과에 다니던 중, 2013년 입대했습니다. 이후 그는 28사단 예하의 977포병대대로 파견되어 근무했습니다. 그의 원래 성격은 꼼꼼하고 사회성이 좋으며 낙천적인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어둡고 말도 어눌해져 갔습니다. 선임들의 학대 때문이었습니다.
윤 일병을 학대한 자들은 주동자인 이찬희 병장을 비롯해서, 이찬희와 의형제 같던 유경수 하사, 하선우 병장, 이상문 상병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지정현 상병과 이 모 일병은 상급자들의 구타 및 강압에 의해 구타, 가혹행위, 성추행 등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윤 일병 말투가 어눌하다며 깔보고 더욱 괴롭혔습니다.
윤 일병 사망 사건
사건은 2014년 3월부터 시작되어 윤 일병이 사망한 4월 7일까지 35일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새벽 3시까지 기마자세 잠을 재우지 않고, 치약 한 통을 강제로 먹게 하고, 누운 상태로 물 1.5리터를 마시게 하기도 했습니다. 바닥에 과자를 뿌리고 먹게 하며 심지어 바닥에 가래침을 핥으라고 시켰습니다.
가혹행위로 다치면 절뚝거린다는 이유로 또다시 폭행하고, 이런 사실이 드러날까 봐 가족 면회는 물론 교회 참석까지 막았습니다. 이찬희가 기독교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치욕적인 성추행까지 하면서 히히덕거리는 짓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인간말종의 학대를 하던 그들은 밥도 못 먹게 방해하고 5kg 역기로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주동자 이찬희는 자신의 아버지가 조폭이라고 하면서, 가족에게 해를 끼치고 납치하겠다는 협박도 했습니다. 사실 조폭이라는 말은 거짓말이었지만, 황폐해진 윤 일병의 심리 상태는 이미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연천 28사단 윤승주 사망 사건
결국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4월 6일, 선입병들은 냉동만두를 강제로 입에 넣고 때렸습니다. 그러면서 낄낄거리는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윤 일병은 실신 상태로 쓰러졌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엄살 부린다며 또 폭행했습니다. 쓰러진 피해자 위에 이찬희와 이상문이 올라타서 다시 때렸습니다.
실신 직전의 윤 일병은 64회 정도 폭행을 당했고 근육이 터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전부터의 폭행으로 비장 파열과 함께 다른 장기들에도 엄청난 피가 고여 있었습니다. 거의 죽어가던 사람을 지독하게 패대던 범인들은 나중에야 맥박이 사라지는 상태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뒤늦게야 심폐소생술과 삽관을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윤 일병은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날 밤 가해자들은 다른 부대원들에게 아무 것도 못 본 거라며 위협을 했습니다. 하지만 윤 일병은 다음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때 군 당국은 윤 일병이 기도 폐색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군의 거짓말이었습니다.
군과 정부의 조직적 은폐
군 당국은 단순 폭행치사 사건으로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음식이 기도에 막혀서 기도가 막혔다는 것입니다. 즉 고의적 살해가 아니라고 은폐했던 것인데, 사실은 폭행으로 인한 쇼크사였습니다. 부검 결과에서 이미 드러난 사실이지만, 군은 이를 숨기기 위해서 유가족이 현장 검증에 참관하지 못하도록 속였습니다.
국방부뿐 아니라 부검의, 군 검찰까지 계획을 짜서 거짓말을 해댔습니다. 이들은 수사 기록을 유가족에게 보여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 놓고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은 심폐소생술 중에 생긴 것이라고 거짓 발표를 했습니다. 유가족이 목격자를 만나려고 해도 국방부는 이를 무시했습니다. 유가족은 무려 4개월을 아무 것도 모르고 보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군인권센터는 방송 등 언론에 폭로해 버렸습니다. 국가를 지키라고 자식을 군에 보냈던 부모들은 국방부의 배신에 분노했습니다. 결국 국민들의 항의와 비난 속에서 군 당국은 은폐를 포기하게 됩니다. 재수사가 이루어지게 되고, 군인권센터는 사건 수사 기록을 유가족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이찬희, 하선우, 유경수, 이상문, 지정현의 징역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징역 25년 ~ 45년이 중형이 나왔으나, 범죄자들이 항소하면서 형량이 줄어들었습니다. 주범인 이찬희 병장은 징역 40년, 하선우 병장 징역 7년, 유경수 하사 징역 5년, 이상문 상병 징역 7년, 지정현 상병 징역 7년이 선고되었습니다. 살인죄가 아니라 살해가 고의가 아니었던 상해치사죄라고 하며 감형된 것입니다.
마침내 윤 일병의 억울함은 풀렸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로 지정하지 않고 보훈보상대상자 분류했습니다. 담당자가 공문서를 대필 위조해서 남몰래 진행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오히려 유족들이 수사 의뢰를 당하게 되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윤 일병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군의 부실 수사와 은폐 의혹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심, 2심, 그리고 대법원까지 모두 패소했습니다. 재판부는 살인 목적 증거와 군 수사기관의 사건 은폐 증거가 부족하다며 국가 책임이 없다고 선고했습니다.
윤 일병 사건 범인들의 근황
사건 이후 범인들은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찬희는 국군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교도소 안에서 또 가혹행위를 저질러서 징역 3년이 추가되었습니다. 다른 수감자를 폭행하거나 성추행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것입니다. 또한 교도소 안에서도 숨진 윤 일병과 유족까지 조롱했다고 합니다. 현재 민간 교도소로 이감되었으며 2054년에 출소하게 됩니다.
학대를 방조한 유경수는 2019년에 출소하며 불명예 제대를 했습니다. 그 역시 페이스북에 반성 못하는 글을 올렸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선우은 2021년에 출소한 후 용인시의 휴대폰 대리점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상문은 2021년에 출소한 후 수원시의 식품 공장에서 일한다고 합니다. 지정현은 인천의 물류센터에서 일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건이 터진 2014년은 박근혜 보수 정부 때였습니다.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사회와 공무원 체계가 경직되는 현상이 있는 데다가, 군대라는 특수성이 이러한 국방부 등의 은폐 시도를 부르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미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정부 책임 소송이 무더기 패소를 하고 있던 점도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배경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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