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제도와 찬성 반대
마지막 사형수와 사형 과정
대한민국은 헌법에 사형제도가 존재하는 국가지만, 실질적으로는 폐지 상태라서 사형제 존폐 논란과 찬성, 반대 여론이 갈립니다. 우리나라는 1997년 마지막 사형수들을 집행한 이후 지금까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형 선고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1997년 마지막 사형수 명단과 함께, 사형 집행 과정, 사형 존폐 찬성과 반대의 근거로 사용되는 조금 더 직접적인 현실을 정리했습니다. 현재 살아 있는 사형수 현황과 역대 집행 현황도 알 수 있으므로, 자료 참고에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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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제도와 찬성 반대 - 1997년 마지막 사형수 명단과 사형 과정
우리나라 사형 제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에서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는 총 902명입니다. 1997년 이후 현재까지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2007년부터 국제앰네스티에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보수 정부였던 1977년 박정희 정부에서 최대 사형을 했었고, 진보 정부인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집행이 중지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사형제도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닙니다. 사형폐지국이면서도 사형 선고는 나오고 있으며 44건의 사형 선고가 있었습니다. 2022년까지 59명의 사형수가 생존해 있는데, 한국에서는 사형제도를 "감형 없는 무기징역"처럼 사용하므로 영원히 사회로 출소하지 못합니다.
마지막 사형 집행은 1997년 12월 30일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1997년 12월 3일부터 IMF 사태를 맞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이때의 사형수는 모두 23명이었습니다. 1977년 때 28명 이후 최대 사형 집행이었습니다. 이로써 김영삼 정부의 총 사형수 집행은 57명이 되었습니다.
1997년 마지막 사형수 명단
1997년 마지막 사형 집행에서 죽은 사형수와 죄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모두 23명입니다.
- 임풍식 (누락, 남): 6살 여아를 강간하고 살해
- 김선자 (58세, 여): 채권자와 자신의 아버지, 여동생을 청산가리 살해
- 전장호 (26세, 남): 이상수와 공모하여 70여 차례 강도, 강간
- 이상수 (29세, 남): 전장호와 공모하여 70여 차례 강도, 강간
- 김정석 (28세, 남): 방화 사건으로 살인
- 곽도화 (36세, 여): 남편을 살해
- 오승관 (36세, 남): 남의 남편을 살해
- 김영환 (37세, 남): 부부 피해자 살해
- 이영길 (37세, 남):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
- 임상철 (29세, 남): 강간 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 신정우 (누락, 남): 집주인을 살해하고 시신을 암매장
- 김승도 (39세, 남): 살인죄
- 정은희 (누락, 여): 내연남과 공모하여 남편을 살해
- 변운연 (누락, 남): 법정에서 증언하는 사람을 살해
- 임영자 (49세, 여): 내연남 한춘도와 공모하여 남편 살해
- 한춘도 (47세, 남): 임영자와 공모하여 그녀의 남편 살해
- 강순철 (28세, 남): 강도, 강간을 저지르고 이유 없이 방화
- 김용제 (누락, 남): 여의도 광장 차량 돌진으로 2명 사망, 21명이 부상
- 한재숙 (51세, 여): 내연남과 공모하여 남편을 독살
- 유영택 (29세, 남): 강간 후 살해
- 장정근 (47세, 남): 다방 여주인을 살해
- 김준영 (33세, 남): 경찰. 총기 난사 4명을 살해
- 태규식 (30세, 남): 150여 차례 강도, 강간
사형 집행 과정
감방에서 교도관 2명이 사형수의 양팔을 붙잡고, 1명의 교도관이 앞장서서 사형수를 방에서 데려갑니다. 그날이 사형일인지 모르던 사형수들은 처음에는 순순히 따라오지만 사형장 가까이에 도착하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교도관들이 억지로 형장으로 끌고 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장과 보안과장, 검사와 서기 그리고 성직자 등 20여 명이 사형을 지켜봅니다. 사형수는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및 주소지로 본인 확인을 한 후 범죄 사실과 판결 내용을 확인받고 소장으로부터 '범죄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인정 심문을 받고 유언을 남깁니다.
어떤 사형수들은 형 집행 직전까지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돈 없고 배운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지경에 왔다며 통탄하는 사형수도 많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체념한 듯 조용히 집행 순서에 따르게 됩니다. 대부분 유언 순서에서 죄를 뉘우치거나 가족에게 미안함을 남깁니다.
사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사형장 커튼이 내려지면 사형수를 교수대로 끌고 가 얼굴에 천을 씌우고 손발을 묶고, 목에 건 올가미의 매듭이 동맥에 닿도록 길이를 조절합니다. 그 후 5명의 교도관이 집행 버튼을 누르는데, 실제 사형 버튼은 그중의 하나입니다. 누가 진짜 사형 집행 버튼을 눌렀는지 모르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합니다.
사형 집행에는 사형수가 믿는 종교의 성직자가 참석하고, 군인 사형수의 경우에는 군종장교가 형장에 참석합니다. 성직자와 군종장교는 직전에 기도를 해 주거나 설교를 해 줍니다. 사형이 집행되고 죽은 후에도 잠시간 감각이 살아 있기 때문에 성직자나 성가대 등이 계속 기도와 성가를 불러주기도 합니다.
5명의 교도관이 누른 버튼 중 하나가 작동하면 사형대의 직사각형 마루판이 아래로 꺼집니다. 그러면 사형수가 아래로 떨어지며 밧줄에 매달린 채 체중과 낙하 가속도에 의해 목이 부러져 즉사합니다. 군인의 경우 총살이면 총상에 의해 즉사합니다. 그러나 즉사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30분 정도 후에 사망을 확인한 뒤 시신을 내립니다.
사형제도 찬성 반대
1989년 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의 범인 김동술 집행 때는 교수대의 발판이 고장났습니다. 수리하는 45분 동안 사형수는 바닥에서 몸을 떨었다고 합니다. 1991년 살인 교사 혐의로 사형당한 강영리는 일반적인 교수형처럼 척추 골절로 사망하지 않았기에 질식사로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 놔둬야 했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과연 인간이 인간을 벌하기 위해 인간을 죽이는 제도가 옳은가 하는 여론도 형성됩니다. 죽은 피해자의 복수라는 입장에서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죽여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 체제 유지를 위한 것이 사형 제도의 목적이므로, 굳이 국가적 살인을 하지 않아도 격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외국처럼 감형 없는 무기징역이나 수백 년 징역형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사용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사형 제도이며, 사형을 선고하고 감형 없는 무기징역이 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법체제의 목적은 복수가 아니라 합리성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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