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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원본) / 삼조선(三朝鮮) 분립시대 - 제4장 "삼조선(三朝鮮) 분립 후의 '말朝鮮'"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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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원본) / 삼조선(三朝鮮) 분립시대 - 제4장 "삼조선(三朝鮮) 분립 후의 '말朝鮮'"

키스세븐지식 2023. 4.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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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원본)

삼조선(三朝鮮) 분립시대 - 제4장 "삼조선(三朝鮮) 분립 후의 '말朝鮮'"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책 조선상고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총 12권)

그러나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중요 부분에 형광색을 하여 요약 파악에 쉽도록 도움이 첨부된 포스팅입니다. 

(참고: 《조선상고사》(저자 신채호)는 저작권 만료로 현재 CC0이 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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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원본) / 삼조선(三朝鮮) 분립시대 - 제4장 "삼조선(三朝鮮) 분립 후의 '말朝鮮'"

 

 

'말朝鮮'의 천도(遷都)와 마한(馬韓)으로의 국호 변경

 

말조선의 처음 수도가 평양임은 이미 앞에서 말하였는 바, 그 후( 연대는 불명 )에 국호를 말한〔馬韓〕이라 고치고, 남쪽의 월지국으로 천도하였다가, 불조선왕 기준에게 망하였다. 그 천도한 원인이 무엇인지 이전 역사서에 보인 곳이 없으나, 대개 신 · 불 양 조선이 흉노와 중국의 잇따른 침략을 받아서 북방의 전운(戰雲)이 빈번하고 급하므로, 말조선왕이 난리에 염증을 느껴서 마침내 남쪽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천도하는 동시에 모든 침략주의를 가진 역대 제왕들의 칼 끝에서 빛나던 '조선'이라는 명사는 외국인이 시기하고 미워하는 바라 하여, 드디어 말조선이란 칭호를 버리고, 지난날에 왕호 ( 王號 ) 로 쓰던 '말한'을 국호로 써서 이두 로 마한 ( 馬韓 ) 이라 쓰고, 새로 쓰는 왕호인 '신한'은 이두로 진왕 ( 辰王 ) 이라 써서 '마한국 ( 馬韓國 ) 진왕 ( 辰王 ) '이라고 일컬었다. 똑같은 '한'이란 명사를 하나는 음을 따서 한 ( 韓 ) 이라 하여 국호로 쓰고 또 하나는 뜻을 따서 왕이라 하여 왕호로 씀은, 문자상 국호와 왕호의 혼동을 피한 것이다. 국호를 마한이라 쓰는 동시에 왕조는 한씨 ( 韓氏 ) 가 세습하여 국민들이 한씨왕의 존재만 아는 고로, 기준이 그 왕위를 빼앗고는 국민의 불평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본래의 성 기씨 ( 箕氏 ) 를 버리고 한씨 ( 韓氏 ) 로 고친 것이다.

삼국지에, “준 ( 準 )- - - 달아나 바다로 들어가서 한 ( 韓 ) 의 땅에서 살며 한왕 ( 韓王 ) 이라 이름하였다 ( 準- - - 走入海 居韓地 號韓王 ). ”고 하였고, 위략에는, “준의 아들과 친척으로 나라에 머물러 있는 자는 성을 한씨라 하였다 ( 準子及親 留在國者 冒姓韓氏). ”고 하였다 .

월지국을 전사 ( 前史 ) 에는 백제의 금마군 ( 金馬君 : 지금의 益山 ) 이라고 하였지마는, 이것은 속전 ( 俗傳 ) 의 익산군 마한 무강왕릉 ( 武康王陵 ) 이라는 것을 인하여 무강왕을 기준의 시호 ( 諡號 ) 라 하고, 부근 미륵산 ( 彌勒山 ) 의 선화부인 ( 善化夫人)의 유적을 기준의 왕후 선화 ( 善花 ) 의 유적이라 하여, 마침내 기준이 남으로 달아나서 금마군 ( 金馬郡) 에 도읍하였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무강왕릉은 딴 이름이 말통대왕릉 ( 末通大王陵) 이요, 말통은 백제 무왕 ( 武王 ) 의 어릴 때 이름 ( 무왕의 이름은 '마동'이니 삼국유사의 薯童은 그 의역이고, 고려사 지리지의 末通은 그 음역 ) 이요, 선화는 신라 진평대왕 (眞平大王 ) 의 공주로서, 무왕의 후 ( 后 ) 가 된 아이고, 백제를 왕왕 마한이라 함은 역사에 그 예가 적지 아니하니, 이따위 고적은 한갓 익산 ( 益山 ) 이 백제의 옛 서울임을 증명함에는 부족할뿐더러, 마한 50 여국 중에 월지국과 건마국 ( 乾馬國 ) 이 있으니, 건마국이 금마군 ( 金馬郡) 곧 지금의 익산일 것이므로, 월지국 ----마한의 옛 서울은 다른 나라에서 찾음이 옳다. 그 확실한 지점은 알 수 없으나 마한과 백제 ( 백제 건국 13 년 ) 의 국경이 웅천 ( 熊川 )---- 지금의 공주 ( 公州 ) 이니, 월지국이 대개 그 부근일 것이다.

말한이 비록 국호가 되었지마는, 그 5,6 백 년 후에도 오히려 왕호 ( 王號 ) 로 쓴 이가 있다. 신라의 눌지 ( 訥祗 ) · 자비 ( 慈悲 ) · 소지 ( 炤智 ) · 지증 ( 智證 ) 네 왕은 다 '마립간 ( 麻立干 ) '이라 일컬었는데, 눌지 마립간 ( 訥祗麻立干 ) 의 주에, “마립은 말 ( 말뚝 ) 이다 ( 麻立也 ) ”라 하였으니, 궐 ( 橛 ) 은 글자 뜻이 '말'이므로, 마립 ( 麻立 ) 의 '마 ( 麻 ) '는 그 전성 ( 全聲 ) 을 취하여 '마'로 읽고, '입 ( 立 ) '은 그 초성 ( 初聲 ) 을 취하 여 ' 己 '로 읽고, '간 (干) '은 그 전성을 취하여 '한'으로 읽는 것임이 명백하므로 마립간은 곧 '말한'이요, 말한을 왕호로 쓴 증거이다.

 



 

낙랑(樂浪)과 남삼한(南三韓)의 대치

 

마한이 월지국으로 도읍을 옮긴 뒤에 그 옛 도읍 평양에는 최씨 ( 崔氏 ) 가 일어나서 그 부근 25 국을 통속하여 한 대국이 되었으니, 전사 ( 前史 ) 에 이른바 낙랑국 ( 樂浪國 ) 이 그것이다. 낙랑이 이미 분리되매, 마한이 지금의 임진강 이북을 잃었으나 오히려 임진강 이남 70여국을 통솔하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북방에서 지나와 흉노의 난리를 피하여 마한으로 들어오는 신 · 불 두 조선의 유민이 날로 많아지므로, 마한이 지금의 낙동강 연안 오른편의 1 백여 리 땅을 떼어 신조선의 유민들에게 주어 자치계 ( 自治: 고대에 모임을 계라 하였음 ) 를 세워서 이름을 '진한부 ( 辰韓部 ) '라 하고, 낙동강 연안 오른편의 땅을 얼마간 떼서 불조선의 유민들에게 주어 또한 자치계를 세워서 '변한부 ( 弁韓部 ) '라 일컬었다. 변한에는 신조선의 유민들도 섞여 살았으므로 변진부 ( 弁辰部 ) 라고도 일컬었다. 이것이 남삼한 ( 南三韓 ) 이니 마한이 구태여 진 · 변 두 한을 세운 것은 또한 삼신 ( 三神 ) 에 따라 삼의 수를 채운 것이다. 대단군 왕검의 삼한이 중심 주권자가 되고 말 · 불 두 한은 좌우의 보상 ( 輔相 ) 이 되었는데, 이제 남삼한은 말한 곧 마한이 가장 큰 나라, 곧 종주국이 되고, 신한 곧 진한과 불한 곧 변한이 두 작은 나라 ( 소속국 ) 가 된 것은, 그 이주민의 계통을 좇아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거니와, 삼한이 다 왕을 '신한'이라 일컬어서 ( 이를테면 마한의 왕은 말한 나라의 신한이라 하고, 진한의 왕은 신한나라의 신한이라 하고, 변한의 왕은 불한나라의 신한이라 하였음 ) 신한이 셋이 되니, 대개 앞의 것 ( 신한 셋 ) 은 삼조선 분립 이후에 세 신한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 며, 진 · 변 두 한의 두 신한은 자립하지 못하고 대대로 마한의 신한이 겸해 가져서 이름만 있고 실제가 없었으니 이는 남삼한의 창례 ( 創例 ) 이다.

삼한은 우리 역사상에 비상히 시비가 많은 문제로 되었지마는 종래의 학자들이 다만 삼국지 삼한전(三韓傳)의 삼한 곧 남삼한을 의거하여, 그 강역의 위치를 결정하려 할 뿐이고 1) 삼한의 명칭의 유래와, 2) 삼한의 예제(禮制)의 변혁을 알지 못하여, 비록 공력은 많이 들였으나 북방 원유(原有)의 삼한을 발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남삼한과의 상호 관계도 명백히 알아내지 못하였다.

 

낙랑(樂浪) 25개국과 남삼한(南三韓) 70여국

 

낙랑의 여러 나라로 역사에 보인 것이 25 이니, 조선 ( 朝鮮 ) · 감한( 邯邯 ) · 패수 ( 浿水 ) · 함자 ( 含資 : 貪資라고도 함 ) · 점선 ( 黏蟬 ) · 수성 ( 遂城 ) · 증지 ( 增地 ) · 대방 ( 帶方 ) · 사망 ( 駟望 ) · 해명 ( 海冥 ) · 열구 ( 列 口 ) · 장잠 ( 長岑 ) · 둔유 ( 屯有 ) · 소명 ( 昭明 ) · 누방 ( 鏤方 ) · 제해 ( 提奚 ) · 혼미 ( 渾彌 ) · 탄렬 ( 呑列 ) · 동이 ( 東𦖮 ) · 불이 ( 不而 : 不耐라고도 함 ) · 잠대 ( 蠶臺 ) · 화려 ( 華麗 ) · 야두미 ( 邪頭味 ) · 전막 ( 前莫 ) · 부조 ( 夫租 ) : 沃沮 의 잘못인 듯 ) 등이니 , 위의 25 국은 한서지리지에 한 ( 漢 ) 낙랑군 ( 樂浪郡) 의 25 현 ( 縣 ) 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한서의 본문이 아니라,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하려고 할 때에 그 신하와 백성 들의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조선이 거의 다 지나의 옛 땅임을 위증 ( 僞證 ) 하고자 전대 지나의 역사책 중에서 조선에 관계되는 것틀을 죄다 가져다가 많이 고칠 때, 조선 고대의 낙랑 25 국을 낙랑군 25 현으로 고쳐 한서지리지에 넣은 것이니, 이는 제 4 편에서 다시 자세히 논술 하기로 한다.

25 국 중 '조선'과 '폐수'는 다 평양에 있는 나라인데, 조선은 곧 말 조선의 옛 땅이므로 조선이라 일컬어서, 낙랑의 종주국이 된 것이고, 패수는 '펴라'로 읽을 것이니, 24 속국의 하나이다. 조선국과 패수국과의 관계를 비유하면 전자는 평양감영 ( 平壞藍營 ) 과 같은 것이요, 후자는 이에 딸린 각 고을과 같은 것이다.

'소명'은 지금의 춘천 ( 春川 ) 소양강 ( 昭陽江 ) 이요, 불이는 그 뒤에 동부여가 된 것으로 지금의 함흥 ( 咸興 ) 이니, 낙랑국의 전체가 지금의 평안 · 황해 두 도를 비롯하여 강원도 · 함경도의 각 일부분을 차지한 것이었다. 삼한의 여러 나라로서 역사에 보인 것이 70 여국이니, 마한은 애양 ( 爰襄 ) · 모수 ( 牟水 ) · 상외 ( 桑外 ) · 소석색 ( 小石索 ) · 대석색 ( 大石索 ) · 우휴모탁 ( 優休牟탁) · 신분고 ( 臣憤沽 : 臣憤活이라고도 함 ) · 백 제 ( 伯濟 : 伯齊로도 씀 ) · 속로불사 ( 速盧不斯 ) · 일화 ( 日華 ) · 고탄자 ( 古誕者 ) · 고리 ( 古離 ) · 노람 ( 怒藍 ) · 월지 ( 月支 ) . 치리모로 ( 治離牟盧 : 咨離牟盧라고도 함 ) · 소위건 ( 素謂乾 ) · 고원 ( 古爰 ) · 막로 ( 莫盧 ) · 비리 ( 卑離 ) · 점비리 ( 占卑離 ) · 신흔 ( 臣釁 : 占釁이라고도 함 ) · 지침 ( 支侵 ) · 구로 ( 狗盧 ) · 비미 ( 卑彌 ) · 감해비리 ( 監奚卑離 ) · 고포 ( 古蒲 ) · 치리국 ( 致利鞠 ) · 염로 ( 冉路 ) · 아림 ( 兒林 ) · 사로 ( 駟盧 ) · 내비잡 ( 內卑雜 : 內卑離라고도 함 ) · 감해 ( 感奚 ) · 만로 ( 萬盧 ) · 벽비리 ( 辟卑離 ) · 구사오단 ( 臼斯烏旦 ) · 일리 ( 一離 ) · 불미 ( 不彌 : 不離라고도 함 ) · 지반 ( 支半 : 友半이라고도 함 ) · 구소 ( 狗素 ) · 첩로 ( 捷盧 : 첩盧라고도 함 ) · 모로비리 ( 牟盧卑離 ) · 신소도 ( 臣蘇塗 ) · 고랍 ( 古臘 ) · 임소반 ( 臨素半 ) · 신운신 ( 臣雲新 ) · 여래비리 ( 如來卑離 ) · 초산도비리 ( 楚山塗卑離 ) · 일난 ( 一難 ) · 구해 ( 狗奚 ) · 불운 ( 不雲 ) · 불사분야 ( 不斯분邪 ) · 원지 ( 爰池 ) · 건마 ( 乾馬 ) · 초리 ( 楚離 ) 등 54 국을 통솔하였다. 비리 ( 卑離 ) 의 여러 나라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 百濟本紀 ) 의 부여와, 백제지리지 ( 百濟地理志 ) 의 부리 ( 夫里 ) 이니, 비리는 부여 ----지금의 부여이고, '감해비리'는 고막부리 ( 古莫夫里 )---- 지금의 공주 ( 公州 ) 요, '벽비리'는 파부리 ( 波夫里 )--- 지금의 능주 ( 綾州 : 和順 ) 요, '신소도'는 신수두 곧 대신단 ( 大神檀 ) 이 있는 곳이니, 성대호 ( 省大號, 일명 蘇泰 )--- 지금의 태안 ( 泰安 ) 이요, '지침'은 지심 ( 支潯 )---- 지금의 진천 ( 鎭川 ) 등지요, '건마'는 금마군 ( 金馬郡)---백제 무왕릉 ( 武王陵 ) 이 있는 곳이다. 이 밖에도 상고할 것이 많으나 아직 두어둔다.

변한은 미리미동 ( 彌離彌凍 ) · 접도 ( 接塗 ) · 고자미동 ( 古資彌凍 ) · 고순시 ( 古淳是 ) · 반로 ( 半路 ) · 낙노 ( 樂奴 ) · 미오야마 ( 彌烏邪馬 ) · 감로 (甘路 ) · 구야 ( 狗邪 ) · 주조마 ( 走漕馬 ) · 안야 ( 安邪 ) · 독로 ( 瀆盧 ) 등 12 부 ( 部 ) 를 통털어 일컫는 말이다. 미동 ( 彌凍) 은 '믿'으로 읽으니, 수만 ( 水灣 ) 이란 뜻이고, 고자 ( 古資 ) 는 '구지'로 읽으니, 반도 ( 半島 ) 란 뜻이고, 야 ( 邪 ) 는 '라'로 읽으니, 강 ( 江 ) 이란 뜻이다. 위의 12 부는 신라 지리지와 가락국기 ( 駕洛國記 ) 에서 그 유지 ( 遺址 ) 를 찾아보면, '고자미동'은 고자군 ( 古自郡 )--- 지금의 고성만 ( 固城灣 ) 이요, '고순시'는 고령가야 ( 古寧加耶 )--- 지금의 상주 ( 尙州 ) 와 함창 ( 咸昌 ) 사이에 공갈못〔恭儉池〕이니, 공갈은 고령가야의 촉음 (促音 ) 이요, '반로'는 '벌' 로 읽으니, 별〔星〕이란 뜻으로 성산가야 ( 星山加邪 )--- 지금의 성주 ( 星州 ) 요, '미오야마'는 미오마야 ( 彌烏馬邪) 로도 써서 '밈라'로 읽으니, 임나 ( 任那 )--- 지금의 고령 ( 高靈 ) 이요, '구야'는 '가라'로 읽으니 대지 ( 大地 ) 라는 뜻으로 지금의 김해 ( 金海 ) 요, '안야'는 '아라'로 읽으나, 수명 ( 水名 ) 으로서 지금의 함안 ( 咸安 ) 이다. 위의 여섯 나라는 곧 뒤에 가라 ( 加羅 ) 여섯 나라 ( 제 4 장 제 2 절 참고 ) 가 된 것이고, 그 나머지는 자세치 아니하나 대개 그 부근일 것이다 .

진한은 기저 ( 己저 : 己抵로도 씀 ) · 불사 ( 不斯 ) · 근기 ( 勤耆 ) · 염해 ( 冉奚 ) · 군미 ( 軍彌 ) · 여담 ( 如湛 ) · 호로 ( 戶路 ) · 주선 ( 州鮮 ) · 마연 ( 馬延 ) · 사로 ( 斯盧 ) · 우중 ( 優中 ) · 난미리미동 ( 難彌離彌凍 ) 등 12 부를 통털어 일컬음이니, 위 12 부는 오직 사로가 신라인 줄을 알 수 있고, 그 밖의 각부의 연혁은 알 수 없으니, 이는 신라 말에 한학자들이 그 명사를 모두 전의 이두자를 버리고 한자로 의역하였기 때문이다. 그 자세한 것은 제 4 편 제 4 장에서 논술한 것이다 ( 변한 12 부와 진한 12 부는 책에 따라 서로 드나들어 같지 아니함 ).

마한이 본래 거의 압록강 동쪽 전부를 차지하였으니 따라서 낙랑 · 진한 · 변한 세 나라가 생겨 지금의 조령 ( 鳥嶺 ) 이남과 임진강 이북을 나누어 차지하였으나, 진 · 변 두 한은 이름은 나라로되 설상은 신 · 불 두 조선의 유민의 자치부 ( 自治部 ) 로써 마한에 대하여 조공과 납세를 끊지 아니하여 낙랑 같은 적국이 아니었다.

 

 

[조선상고사 (원본) / 삼조선(三朝鮮) 분립시대 - 제4장 "삼조선(三朝鮮) 분립 후의 '말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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