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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소떼 방북 정리 - 금강산 사업, 개성공단과 정주영 고향 배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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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소떼 방북 정리 - 금강산 사업, 개성공단과 정주영 고향 배경

키스세븐지식 2023. 3. 2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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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소떼 방북 정리 - 금강산 사업, 개성공단과 정주영 고향 배경 / ⓒ KTV


 

정주영 소떼 방북

정주영 회장 고향 배경 등

 

1998년,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은 소 떼 1001마리를 이끌고 방북했었습니다. 전쟁 후 날카로운 대결 상대였던 북한과의 첫 번째 민간인 물꼬였기 때문에 이것은 큰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정주영은 왜 소 떼를 몰고 방북했을까... 그 배경과 과정, 그리고 영향은 무엇인지를 정리합니다. ​

 

< 차례 >

  • 정주영 회장 고향 배경
  • ​실향민의 소떼 방북 배경​
  • 정주영과 1001마리 소떼
  • 최초의 공식 남북 민간 교류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소떼 방북 정리 - 금강산 사업, 개성공단과 정주영 고향 배경

 

정주영 회장 고향 배경​

 

정주영 회장의 고향인 강원도 통천 아산리 (현재 북한) / ⓒ KTV

한국 현대사를 이끈 두 명의 재벌을 꼽으라면 단연 현대 회장 '정주영'과 삼성 회장 '이병철'입니다. 그런데 이 둘은 극단적인 비교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병철이 만석꾼 집안에서 잘 교육받은 사람이었다면, 정주영은 농사꾼 실향민으로 학력도 그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중 북한 지역인 통천군 아산리는 정주영의 고향입니다. 일본에서 대학까지 나온 삼성 이병철과 달리, 정주영은 초등학교가 학력의 끝입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보통학교 불리던 이 정도도 국민 4%나 다닐 수 있었기에 아주 가난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린 정주영은 공부가 하기 싫었습니다. 아버지는 농사꾼이 되라고 하지만 그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17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훔쳐서 가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노동자가 되어 막노동하며 돈을 벌어갔습니다.

 

 


 

실향민의 소떼 방북 배경

 

고향으로 가고 싶었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소들 / ⓒ KTV

실향민이었던 정주영은 고향으로 가고 싶은 꿈을 접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992년부터 소를 몰고 방북할 준비를 했었습니다. 현대의 충남 서산농장에서 150마리의 소로 시작한 그는, 나중에 70만평에서 3천 마리의 소를 키우는 대농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보수정권 시대에 IMF가 터지면서 진보정권으로 교체되었습니다. 거의 50년 만에 보수정부가 끝난 것입니다. 그러자 1998년 "남북경협 활성화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소모적인 전쟁 위협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정주영은 그토록 기다리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83살이었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소 떼 1001마리를 이끌고 휴전선을 넘어서 북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1998년 6월과 10월, 이렇게 두 번에 걸쳐서 적십자 마크를 단 50대의 흰색 트럭에 500마리씩을 싣고 판문점을 넘었습니다. 휴전 이후 첫 민간인 공식 육로 방문이 열린 것입니다.

 

 


 

정주영과 1001마리 소떼

 

정주영 소떼 1001마리의 의미 / ⓒ KTV

소떼들이 트럭에 실려 가고, 정주영 회장은 걸어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을 지나며 군사분계선을 넘었습니다. 소 떼는 모두 암소였습니다. 황소들은 난폭해서 오랫동안 트럭에 실을 수 없었습니다. 그중에는 새끼를 밴 암소도 100마리 넘게 있었으니, 사실상은 1001마리보다 많았습니다.

 

이동에 필요한 비용에는 약 42억 원이 들었습니다. 장기 이동에 필요한 차량이 필요했기에 현대자동차에서 특수 제작해서 트럭들을 준비했습니다. 정 회장은 소 떼의 숫자에도 신경 썼습니다. 단순히 많은 소가 아니라, "시작"이라는 의미가 담긴 숫자이길 바랬습니다.

 

1998년 정주영의 방북 사건 / ⓒ KTV

정주영 방북이 소 떼를 몰고 간 것이었던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소 한 마리 값을 훔쳐서 재벌이 된 정주영... 그는 그동안의 물가 오름세를 봤을 때, 그 이자가 1000배는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000마리의 소와, 원금 소 한 마리를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민간인 방북이었지만, 갑자기 '김정일'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예정에 없던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후 정주영은 금강산 관광사업권을 유치했으며, 개성공단 건설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리고 2006년 미국 언론 "타임"은 아시아의 영웅들 명단에 정주영을 올렸습니다.

 

 


 

최초의 공식 남북 민간 교류

 

방북 정주영과 소떼를 실은 트럭들 / ⓒ KTV

처음 한 공식 민간 방북, 그것도 소떼를 1천마리나 몰고 올라간 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현대그룹은 이로 인해, 투입 비용의 수십 배 이상의 광고효과를 얻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하지만 문제도 있었습니다. 장시간 로프에 묶여서 이동했기에 소들이 병에 걸려 죽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몇 년 후, 북한에 살던 소들도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북한은 축산 기술마저 남한보다 뒤처져서 효과적인 관리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주영은 남북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라고 말했습니다. 남북간에 민간교류가 공식적이면서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주영의 소 떼 방문 사건은 북한 경제가 몰락하고 핵무장에 집중하면서, 역사 속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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