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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의 일화 - 명포수 홍범도의 사격 실력과 젊은 시절 일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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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의 일화 - 명포수 홍범도의 사격 실력과 젊은 시절 일화

키스세븐지식 2022. 8. 1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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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의 일화 - 명포수 홍범도의 사격 실력과 젊은 시절 일화


 

홍범도 장군의 일화

명포수 홍범도의 사격 실력과 젊은 시절 일화

 

이 글은 홍범도 장군 일화 중 명포수, 사격 실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홍범도가 사격의 달인, 명사수로 성장하는 과정이 주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서, 머슴으로 태어나서 온갖 고생을 하며 성장하여 독립군이 되기까지의 홍범도의 일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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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의 일화 - 명포수 홍범도의 사격 실력과 젊은 시절 일화

 

홍범도 장군은 누구? - 어린 시절

 

스스로 일어난 백성들의 의병 활동 / ⓒ 독립기념관

'홍범도' 장군은 의병장 중에서도 매우 험난한 삶을 산 독립군입니다. 그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고생 그 자체였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7일 만에 죽었기에, 아버지가 동냥젖으로 키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마저 9살에 죽어버리고, 그는 아버지를 이어 머슴살이를 하며 컸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자 들어간 곳은 "친군서영"이라는 군대입니다. 17살은 돼야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나이를 속이고 열다섯 살에 입대합니다. 그가 맡은 보직은 나팔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사격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못 배운 사람, 더구나 신분이 낮은 사람에 대한 천시가 심했습니다. 그의 상관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참지 못한 범도는 상관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탈영한 그가 숨어든 곳은 공장이었는데, 여기서도 못된 사장을 만나서 고생하다가 복수한 후 달아났습니다.

 

 


 

화승총과의 인연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묘사된 산포수 홍범도 장군

어쩌다가 한 여인과의 사랑을 이루는가 싶었지만 생사를 모르는 상황이 되고, 홍범도는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고 떠돌았습니다. 그러다가 다다른 강원도, 심한 고생과 큰 덩치 때문에 그의 모습은 마치 산포수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진짜 포수인 줄 알고 화승총을 팔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홍범도가 명사수가 되는 인연이 됩니다. 어차피 이리된 것, 그냥 포수로 살아가리라 마음 먹은 그는 가진 돈을 다 털어서 화승총을 샀습니다. 그리고 산에 들어가서 3년 동안 총연습을 하며 살았습니다. 애초에 사격에 재능이 있었던 홍범도는 이제 명포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산포수 홍범도가 의병이 된 결정적인 개기는 1907년의 일제의 총포 단속이었습니다. 조선인들의 의병 활동을 막기 위해 아예 모든 무기를 빼앗겠다는 흉계였습니다. 하지만 총으로 먹고 사는 포수들에게는 막막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14명의 포수들과 뜻을 모아 일어섰습니다. ​

 

 


 

의병이 된 명사격수 홍범도

 

오른쪽에 총을 찬 홍범도 얼굴 사진

홍범도의 키는 거의 190cm였다고 합니다. 큰 키에 날렵하게 산을 뛰어다니던 그는 외모 자체가 장군감이었습니다. 더구나 먼 거리에서 총을 쏴서 병의 입구 안으로 총알을 관통시킬 정도의 사격 실력이 있었습니다. 포수 중에서도 명사격수이다 보니 다들 그를 따랐습니다.

 

홍범도가 훌륭한 의병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소탈한 하층민이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양반들은 의병장이 돼서도 부하들을 괴롭히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층민 병사들과 똑같이 입고 고생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니 부대의 단합력은 최고가 될 수 있었습니다.

 

1907년 이후, 중부와 경상도 방면의 의병들이 거의 무너진 상태가 되고 전라도와 함경도 의병만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함경도의 의병이 건재할 수 있는 것은 홍범도 장군의 존재가 큰 역활을 했습니다. 일본군의 소탕 작전에도 대장에 대한 병사들의 믿음은 찰떡같았던 것입니다.

 

 


 

명포수 홍범도의 일화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제작한 청산리 전투 대첩도

'후치령 전투' 이후 홍범도는 60여 차례의 교전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 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대파합니다. 그로 인해 그의 별명은 "나는 호랑이"가 됩니다. 산포수 출신 병사들이 산을 마치 평지처럼 달렸으니 일본군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전해져 오는 말에 의하면, 산포수 홍범도의 사격 솜씨는 역시 달인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군과 싸우기 전, 통신망을 두절시키기 위해 총을 쏘아 전선줄을 끊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 옵니다. 더불어, 총알을 매우 아꼈다는 일화와 총을 잘 쏘기 위해 오른쪽 수염을 위로 올렸다는 등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가 73살이 되던 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습니다. 아직 1940년대, 조국은 광복을 맞을 기미가 안 보이고 장군은 나이가 들어 은퇴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소련 땅에 살고 있었기에 소련 정규군에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거절당하고 맙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러자 그는 사격장에서 직접 자신의 사격 실력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30m 거리에서 작은 동전을 명중시키는 괴력을 보일 정도로 그의 사격 실력은 나이와 관계없이 대단했습니다. 일부는 과장되었을 수도 있으나, 홍범도가 명포수였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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