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일화 2
세기의 이혼 스캔들
이글은 모던걸 나혜석의 스캔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글입니다. 그녀는 약 100년 전을 살았던 여성입니다. 예술가로서 평가받아야 하지만, 한편으로 나혜석은 세기의 이혼 스캔들로 조선을 흔들어 놓았었기에 그 삶에 대한 글을 씁니다.
여기서는 나혜석의 남편 김우영과, 최린과의 불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녀가 옳다거나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라, 너무나 다른 시각으로 몸부림처럼 한 세상을 살다간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래 추천글에 있는 링크를 함께 보면 나혜석의 사랑과 연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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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나혜석 스캔들 일화 2 - 세기의 이혼 스캔들과 김우영, 최린
남편 김우영과 나혜석의 결혼
그녀는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김우영'이라는 변호사였습니다. 이를 개기로 두 사람은 친해졌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결혼 시도를 하지 않으려던 그녀였기에, 김우영의 청혼은 어려웠습니다.
김우영의 계속된 구애에 마음을 돌리게 된 나혜석은 김우영에게 4가지 조건을 걸고 결혼에 승낙합니다. "평생 자신만을 사랑할 것", "화가 활동에 방해 말 것", "시가를 모시라고도 아이를 키우라고도 히지 말 것", "첫 애인의 비석을 세워 줄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첫 애인은 앞서 폐병으로 죽은 최승구를 말합니다. 더구나 분가의 조건은 절대로 시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김우영은 아내의 애인 묘지에 비석을 세워주고, 부모와 따로 살기로 합의합니다.
나혜석과 최린의 불륜
김우영과 결혼한 후에도 신문물 모던걸 나혜석의 삶은 화려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기록에 의한다면,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세계여행인 셈이었습니다. 90년 전, 김우영은 여기에 어마어마한 돈을 썼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남편과 세계여행 중에 파리에서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1928년, 김우영이 베를린에 일을 보러 간 사이, 나혜석은 '최린(천도교 인사)'과 호텔에 머무는 등 바람을 피웠습니다. 소문을 들은 김우영이 돌아와 뒤를 쫓은 끝에 불륜을 보게 됩니다.
충격을 받은 김우영은 그 길로 짐을 쌌습니다. 귀국한 김우영은 이혼을 요구했지만, 나혜석은 평생 자신만 사랑하겠다고 약속했으니 이혼 요구를 하지 말라고 버텼습니다. 그러나 충격이 너무 심했던 김우영은 끝내 이혼해버렸습니다.
나혜석의 세기의 이혼 스캔들
결국 1930년 이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혼까지 하게 됐는데, 최린은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자신도 그녀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결혼 후 다른 남자와 지내면 오히려 자기 남편과 더 잘 지낼 활력을 얻는다"고 해왔기 때문입니다.
화가 난 그녀는 최린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조유린죄"라는 소송입니다. 그녀는 12000원의 위자료 소송이 진행됐고, 여자도 혼외정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 쓰레기와 돌을 던지며 반발했습니다.
특히 1943년 나혜석이 《삼천리》에 쓴 《이혼고백서》는 조선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아래에서 나혜석의 이혼고백서의 일부를 읽어봅시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나는 그대들(남성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모던걸 나혜석의 시대저항
그 외에도 그녀가 쓰고 말하는 것들은 그대로 엄청난 파문을 불렀습니다.
그녀는 "여자도 사람이다"라면서 불평등을 인식도 못 하고 살던 여성들의 자의식을 깨웠고,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오, 오직 취미다"라면서 기존 체제에 익숙해진 시대에 강하게 도전했습니다. 더구나 "자식은 어머니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 같은 존재"라면서 모성애가 단지 세뇌교육과 학습의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사회에 충격을 준 말들이 연속으로 터졌습니다.
"결혼은 지옥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제대로 된 남성을 알려면 실험 결혼도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하며 "육체의 신비를 모르는 것은 연애가 아냐"라고 주장해서 또 충격파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에게 돌팔매질을 했던 사람은 여성들 역시 많았습니다. 나혜석의 세기의 이혼 스캔들은 한동안 조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녀는 시대를 앞서간 것이 분명했지만, 행동 중에 모범이 되지 못할 스캔들이 끼어들면서 사람들에게 외면받게 되었습니다. 남편 김우영은 겉으로는 절대로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녀의 이상과 다르게 세상은 더 냉정했습니다.
(참고: 나혜석의 남편 김우영은 친일파로 살았던 사람이며, 바람을 피운 최린도 나중에 친일파로 전향한 사람입니다)
아래 지식거리에 있는 2개의 링크를 함께 보면 나혜석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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