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일화 1
사랑과 연애, 페미니즘
나혜석이란 인물은 화가이며 작가이며 언론가, 교육자, 조각가, 사회운동가, 여성운동가입니다.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우리 민족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최초의 여성 세계여행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글은 나혜석의 사랑과 연애 일화에 대한 첫 번째 글입니다. 왜 그녀가 페미니스트가 되고, 왜 그녀가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래 추천글에 있는 링크를 함께 보면 나혜석의 스캔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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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나혜석의 일화 1 - 사랑과 연애, 페미니즘의 삶과 가족
나혜석, 모던걸로 자라다
한국인 중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 그녀의 아버지 '나기정'은 조선 말기의 지방 관리였습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병탄(倂呑)한 후에도 조선총독부 소속의 고위 관리를 계속했으니,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가정이니 어릴 때부터 고생 모르고 살았고, 남자만 고등 교육을 시키던 당시에도 대학 교육과 유학까지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일본 유학으로 그림을 공부했고, 전업 작가로서는 최초의 서양화가가 되어 야수파 유파를 들여오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글솜씨도 뛰어나서 잡지를 창간했는데, 여러 언론에 소설과 수필, 사설까지 쓰는 작가 겸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사회운동까지 했으니, 다재다능한 능력에 화려한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가 된 배경
그녀의 아버지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신교육의 기회를 주는 사람이었으나, 구시대적 생활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권력과 재력이 있던 그는 여러 명의 첩을 두었는데, 심지어 딸보다 어린 첩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온갖 집안 살림에 고생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어린 기생들을 첩으로 들여와 같이 살았습니다. 더구나 첩만 예뻐하니, 기고만장한 첩이 오히려 본처인 어머니를 무시하는 일마저 발생했습니다.
소실이 정실부인에게 마구 대하는 상황에도 아버지는 첩의 편만 들어주었습니다. 나혜석이 페미니스트가 된 것은 어릴 적에 봤던 이런 환경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결혼할 생각도 없었고, 여자만 정조를 지키는 것에도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자유분방한 모던걸 나혜석
아직도 봉건시대의 영향이 남아서 부모가 정해주는 남자와 결혼하던 당시... 그러나 그녀는 자유롭게 남자를 사귀고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나혜석의 첫사랑은 '최승구'였습니다. 오빠의 친구였으나 결혼하지 얼마 안 된 유부남이었습니다.
최승구는 그녀와 사귀면서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집안 어른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최승구가 25살의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녀의 첫 결혼 시도는 마음 속 상처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러고 나서 사귄 사람이 또 유부남이었습니다. 바로 《무정》을 쓴 '이광수'입니다. 동생이 이러고 다니니 오빠가 매우 화를 냈고, 심한 반대에 부딪혀서 이 역시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김우영을 만나는데, 이것이 세기의 이혼 스캔들인 나혜석 스캔들이 됩니다.
아래 지식거리에 있는 2개의 링크를 함께 보면 나혜석의 삶과 인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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