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선교회 휴거 사건
[휴거란 뜻 - 1992년 다미선교회 휴거 사건, 이장림 종말론]
1992년 다미선교회 휴거 사건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 한창이던 종말론의 하나였습니다. 휴거 뜻은 "이끌어 올려진다"는 의미입니다. 다미선교회는 휴거란 것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럼 당시 휴거 소동의 주장자였던 이장림 목사 등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그 뒷이야기도 다뤄봅니다.
종말론과 휴거 뜻 해석
21세기 시작을 전후로 해서 지구는 곳곳에서 종말론이란 것이 나왔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1999년과 2012년의 종말론입니다.
1999년 종말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언가인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풀이한 사람이 1999년을 지목했기 때문이고, 2012년 종말론은 마야의 달력을 연구한 사람이 주장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마야의 달력은 기원전 3114년부터 2012년까지 계산되어 있으므로, 더 이상 기록이 없는 것은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종말론은 2000년 우간다에서 235명이 집단자살을 하고, 1997년 미국에서 39명 집단자살, 1995년 일본 옴진리교 테러 사건 등 끊임없는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이런 끔찍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1992년 다미선교회 휴거 사건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 종말의 날이 시작되어 신앙이 독실한 사람들은 휴거를 경험할 것이라는 주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휴거란 뜻은 "이끌어 간다(携擧의 한자 뜻)"는 말입니다. 좀 더 풀이하자면, 기독교에서 세상이 다시 신판을 받게 되면 신앙이 깊은 자들은 하늘로 불려 올려진다는 것에서 휴거가 유래합니다. 즉, 살아있는 채로 승천한다는 것이 휴거의 뜻입니다.
1980년대 말, 이장림 목사는 종말론을 주장하며 '다미선교회'라는 것을 창립했습니다. 다미선교회의 뜻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선교회"라는 의미였습니다. 이들의 종말론은 마침 밀레니엄 불안심리와 잘 맞아떨어져서 제법 많은 호응이 있었습니다.
1992년의 다미선교회는 휴거사건 이전까지 국내 신도 8천여 명, 해외 신도 1천여 명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나서 공중 이끌림이 있을 것이라고 공표했습니다.
다미선교회 휴거사건
이들의 주장은 각종 방송을 통해 전파되면서 더욱 관심이 증폭되었습니다. 언론들까지 휴거란 무엇인가, 다미선교회의 주장, 이장림 목사 소개 등의 기사를 다루며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날 진짜로 사람이 공중부양되며 하늘로 올라가는지 구경하기 위해서 다미선교회 근처로 몰려들었습니다. 혹시 나쁜 일이 발생할지도 몰랐기에 밖에는 경찰도 대기했습니다. 방송 취재진도 이들이 어떻게 되는지 현장을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의 자정, 신의 휴거가 있다고 예정된 그 시간이 되었습니다. 신도들은 몇 시간 전부터 다미선교회에 모여들어 예배를 올렸습니다. 기도와 찬송을 했으며 어떤 이들은 흰색의 승천복까지 입고 휴거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한편 밖에서는 집을 버리고 나간 가족들을 찾아온 친족, 애인 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TV는 초상권 적용이 엄격하지 않았기에 예배 참여자뿐 아니라 가족과 구경꾼들까지도 얼굴이 고스란히 방송을 탔습니다.
그리고 12시...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하던 신도들도 슬슬 지쳐가기 시작하고 아무리 기도해도 휴거란 것이 일어나지 않자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흥분했던 탓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어떤 사람은 민망해서 얼굴을 가리고 자리를 뜨기도 했습니다.
이때 해프닝도 있었는데, 나방이 위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나방이 휴거한다고 소리쳤다는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휴거의 뜻대로 신도가 산 채로 승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집단자살이나 폭력 등의 문제 없이 끝났습니다.
이장림과 휴거소동 이후
하지만 사회적 문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가장은 퇴직금까지 모두 헌금하고 교회에 미쳐 있었고, 어떤 주부는 가정을 버리고 나가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가출했으며, 어떤 학생은 가출해서 교회로 숙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떠도는 말로는 휴가 나온 군인이 교회에서 죽는다며 귀대하지 않았거나, 휴거할 때 몸이 무거우면 안 된다며 낙태를 한 여자도 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휴거 때 어차피 필요 없을 재산이라며 교회에 헌납한 돈이 자그마치 25억 원이나 됐으니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다미선교회의 휴거 소동이 끝난 후, 일부 화가 난 사람들은 교회를 찾아가서 난동을 부리고 화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교회는 11월 2일, 각 신문에 사과 광고를 올리고 헌금을 반환을 신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미선교회 휴거사건을 일단락됩니다.
이후 이장림 목사의 행적에서 황당한 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1992년 휴거란 것이 있을 거라고 주장한 그가 1993년에 만기 되는 3억짜리 채권을 사 놓은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휴거일이 정해진 사연도 황당합니다. 당시 다미선교회는 휴거 전도를 위해 고등학생을 어린 선지자라고 하면서 홍보에 이용했습니다. 거기엔 H군과 G양도 고등학생이었는데, 10월 28일이라고 날짜가 지정된 것은 H군의 영감에 의해서였다고 합니다.
이장림 목사는 휴거 한 달 전에 사기죄로 구속되어 2년 동안 구속되었으며 출소 후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 외에도 은근히 휴거를 따르던 다른 교회와 목사들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휴거 주장을 잘못이라고 인정했지만 그 후에도 날짜를 바꿔가며 계속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휴거란 뜻 - 1992년 다미선교회 휴거 사건, 이장림 종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