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의 아침 이슬 가사 - 김민기의 아침 이슬 원곡 듣기]
독재시대를 산 대부분의 사람이 기억하는 노래,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는 '양희은'의 <아침 이슬>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사실 원 작곡가인 '김민기'가 먼저 불렀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심지어 북한에서도 인기곡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에는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금지곡이 된 고난의 곡이기도 합니다.
<아침 이슬> 가사와 함께 양희은의 노래, 김민기의 노래를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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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의 아침이슬 원곡
<아침 이슬>을 부른 양희은은 통기타 가수, 또는 포크 가수로 불립니다. 그녀의 노래는 <상록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한계령>,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이 있습니다. 2017년 '아이유'가 불렀던 <가을 아침>도 사실은 1991년 양희은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그 정도로 양희은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해 젊은층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가장 오래 인기를 끈 포크 여가수로 유명합니다. 현재 방송진행 등을 하며 활동 중입니다.
(김민기는 한국 포크 장르의 대표작들을 만들어낸 인물 [김민기 양희은 아침이슬 가사 듣기 원곡] / ⓒ 김민기)
김민기는 가수면서 동시에 작사, 작곡, 편곡까지 하는 말 그대로의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지금은 연극, 뮤지컬 연출까지 하니 활동영역이 매우 넓습니다. 1971년 첫 개인 앨범을 낸 후 2002년 은퇴 앨범을 낼 때까지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 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곡은 양희은의 아침이슬이지만, 김민기가 부른 아침이슬도 좋은 노래입니다. 그는 양희은의 많은 곡을 써줬으며, <작은 연못>, <늙은 군인의 노래>, <나비>, <가을 편지> 등의 명곡을 남겼습니다.
민중가요 아침이슬은 1971년 김민기 1집에 실린 곡입니다. 직접 작사, 작곡했고 노래까지 불렀는데, 발표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그때도 물론 훌륭한 곡이었지만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나직하고 부드러운 편이었기 때문에 바로 귀에 익숙해지지는 않습니다.
이 곡은 독재시대에 항거하는 민중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김민기가 처음 만들 때는 그런 의도도 없었고 크게 기대한 곡도 아니었는데, 양희은 노래로 크게 히트 친 뒤에는 김민기에게 오히려 부담스러운 곡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래는 김민기가 부른 아침이슬 원곡 듣기입니다.
(추억의 가요) 김민기 - 아침이슬
양희은의 아침이슬
그런데 1971년 말에 같은 노래가 다시 불립니다. 양희은이 데뷔 앨범에 이 곡을 다시 넣은 것입니다. 김민기가 다시 편곡해서 준 이 곡은 김민기의 아침이슬 원곡과 달리 통기타 반주로 되어 있습니다. 김민기의 원곡은 클래식한 교회반주 같은 느낌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양희은의 곡은 당시 젊은이들이 좋아하던 음악장르인 포크기타를 반주로 사용했습니다.
더구나 양희은은 비브라토가 거의 없는 힘 있는 창법으로 고음에서 비장미를 줬기 때문에 민중가요로 인기를 얻은 것이라고 봅니다.
(양희은은 민중가요 뿐 아니라 통기타 가수로 유명했다 [김민기 양희은 아침이슬 가사 듣기 원곡] / ⓒ 양희은)
아래는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 듣기입니다.
양희은 - 아침이슬 (1971)
민중가요로 유명한 아침이슬은 1975년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곡이 1973년 정부가 선정한 건전가요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차이는 집권 보수당 박정희 전 대통령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한 후 1974년부터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학계와 문화계 민주인사들을 탄압하고 죽이거나 폭행을 가했습니다. 그 내력을 이어받은 당이 신한국당과 새누리당, 그리고 지금의 자유한국당입니다.
독재정치를 반대하면 빨갱이(좌파)라고 탄압을 가하던 시기였으니 민중은 노래도 마음대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대놓고 항의하는 가사를 쓸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은근한 상징으로 비장미를 더하던 아침이슬이 인기를 얻은 것입니다.
보통의 유행가들은 TV 등을 통해서 순위를 정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지만 이 곡은 그런 매체의 도움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적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의 국민 정서를 이해하는 곡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이슬 노래 가사
아래는 아침이슬 가사입니다.
"아침 이슬"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1975년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금지곡으로 탄압받은 직접적인 이유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즉, 정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가사의 내용이 독재정부를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긴 밤"이 독재시대이고 "묘지"가 민주투사들의 무덤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광야로 나아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들립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양희은과 김민기가 아침이슬을 부르던 당시의 개인 사진 [김민기 양희은 아침이슬 가사 듣기 원곡] / ⓒ 김형찬)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진 곡이다 보니,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북한에도 스며들었습니다. 실제로 1990년대에 북한에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 사회 사정이 매우 안 좋아서 불안감이 높아지자 북한에서도 이 곡이 금지곡이 됩니다.
역시 민중의 대항 정신으로 상징성을 가질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즉, 아침이슬은 남북한 양쪽에서 모두 금지곡이 된 사연을 가진 곡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를 맞았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희생하며 민주사회를 만든 사람들은 그때도 빨갱이(좌파)라는 욕을 들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강력히 지배하는 정부"보다 "국민의 민주적 정부"를 주장하는 쪽은 언제나 빨갱이라고 불리는 모양입니다.
더욱 아리러니한 것은 아침이슬이 북한에서도 금지곡이 된 것입니다. 즉, 이 곡을 보는 권력자의 시각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니라 국민의 열망을 누르고 싶은 쪽이라는 것입니다.
[양희은의 아침 이슬 가사 - 김민기의 아침 이슬 원곡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