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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김신부부전 - 조선시대 혼인 프로젝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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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김신부부전 - 조선시대 혼인 프로젝트

키스세븐지식 2019. 1. 27.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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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김신부부전 - 조선시대 혼인 프로젝트] 

한국은 결혼이 급감하며 인구감소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인식 변화 때문이기도 하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에 조선시대 혼인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정조시대의 김신부부전을 통해 결혼을 못하는 것을 국가 차원에서 고민하고 도와주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정조가 명한 조선시대 혼인 빅 프로젝트 


조선 <경국대전>의 '예전'에 나온다고 하는 항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30세가 넘어도 결혼을 못하는 자가 있으면 국가가 경제적으로 돕는다. 그러나 궁핍하지도 않은데 자식을 그렇게 만들면 가장에게 논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가 혼인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의미입니다. 조선시대 혼인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진: 전통 혼례 장면. 조선시대 양반 등은 이런 식으로 결혼을 했다(전통 혼례 장면. 조선시대 양반 등은 이런 식으로 결혼을 했다 [김신부부전 조선 정조 이덕무 혼인] / ⓒ 의령사랑위키어린이기자단)


지금의 헌법에 해당하는 조선 경국대전은 세조 때부터 시작해서 성종 때 완성되었습니다. 여섯 개의 분류가 있는데 그중에서 예전은 혼인과 장례, 예절 등에 대한 예법을 정한 법전입니다. 물론 개인의 사사로운 혼인 문제까지 국가가 해결하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실제로 직접 혼인 프로젝트를 추진한 왕이 있었으니 바로 '정조'입니다. 


사진: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은 조선을 이어간 핵심 정신이다(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은 조선을 이어간 핵심 정신이다 [정조 김신부부전 조선 이덕무 혼인] / ⓒ 삼렵)


이런 내용이 '이덕무'의 <김신부부전>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덕무는 역대 실학자 중에서 가장 지식이 다양했다는 인물인데, 정조의 명을 받아서 "김씨와 신씨 부부의 결혼 전기"를 썼습니다. 1791년 정조는 한양에서 늦게까지 결혼하지 못한 사람을 조사해서 돈과 포목을 결혼비용으로 지원하여 도와주라는 명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파악된 것이 280여 명입니다. 


사진: 정조의 어진. 영조와 더불어 조선 중후기의 성군으로 불린다(정조의 어진. 영조와 더불어 조선 중후기의 성군으로 불린다 [정조 이덕무 혼인 김신부부전 조선] / ⓒ 이길범)


혼인을 위한 정조의 프로젝트가 시행되며 그해 5월까지 대부분의 노총각, 노처녀들이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혼인식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사무적으로 처리되는 것은 아니라서 28세와 21세의 남녀 각각 한 명씩은 혼인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당시 보통의 혼인 나이는 남자 15세부터, 여자 14세부터였으니 혼인이 늦은 것은 맞습니다. 



이덕무가 지은 김신부부전 내용 


김신부부전의 주인공으로 이덕무가 기록한 두 사람은 김씨 집안의 아들과 신씨 집안의 딸이었습니다. 둘 다 혼인을 하려고 했었지만 김씨는 가난한 서얼이라고 파혼당하고 신씨 역시 집안이 가난하다고 파혼당한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때아닌 혼인 프로젝트로 이들에게 결혼자금을 주었지만 이미 그때는 상대가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한 뒤였다고 합니다. 


사진: 김홍도가 그린 조선시대 결혼풍속도(김홍도가 그린 조선시대 결혼풍속도 [정조 김신부부전 조선 혼인 이덕무] / ⓒ 김홍도)


정조의 명으로 혼인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행하던 한성판윤과 '이승훈'은 어명을 지킬 수 없게 되어 난감해했습니다. 이때 서부령을 하던 이승훈의 머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으니, 이 두 사람을 혼인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자세하게 적은 것이 이덕무가 쓴 김신부부전인데, 정조가 얼마나 관심을 두고 이를 추진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됩니다. 


사진: 정조시대 이승훈. 양반 중 조선 최초의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정조시대 이승훈. 양반 중 조선 최초의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이덕무 김신부부전 조선 정조 혼인] / ⓒ Unknown)


이승훈과 '윤형'은 즉시 두 집으로 가서 이들에게 설명을 하고 설득작업을 벌였습니다. 가난한 터에 국가에서 지원까지 해 주겠다고 하니 마다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조선시대 혼인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의 결혼비용은 집 열 채 값에 달했다고 하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결혼에서의 돈에 대한 부담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진: 과거 서울인 한양(한성부)의 도시 구조도(과거 서울인 한양(한성부)의 도시 구조도 [정조 김신부부전 조선 혼인 이덕무] / ⓒ Pablin)


김신부부전에 이덕무가 적은 내용을 보면, 정조는 매우 좋아하며 호조판서에게는 김씨의 아들을, 선혜청 당상에게는 신씨의 딸을 마치 친아들과 친딸처럼 생각하고 모든 비용과 혼인식을 잘 처리하라고 명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조선시대 정조가 혼인을 명한 프로젝트가 성공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김신부부전 외에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도 기록이 있습니다. 



이옥의 동상기 등의 영향 


복지를 지향하는 현대 사회도 아니고, 조선시대에 혼인을 위한 프로젝트가 있었던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당시에도 이 사건은 백성들에게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잣거리마다 이 소문으로 임금의 관심에 기뻐했으니 분명히 국가적인 혼인이었던 셈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 속에 성대하게 치러진 혼인식은 김신부부전으로 남을만한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사진: 전통 혼례식은 현대에도 가끔 이루어지고 있다(전통 혼례식은 현대에도 가끔 이루어지고 있다 [김신부부전 이덕무 혼인 조선 정조] / ⓒ Korea.net)


정조의 혼인 프로젝트를 김신부부전에 이덕무가 기록하면서 당시의 혼인 과정과 노처녀, 노총각이 되었던 사연, 혼인 추진까지의 일화, 혼인식 날의 설명까지 달아 놓았습니다. 이덕무의 김신부부전은 조선시대 혼인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인 것입니다. 혼인은 국가 유지에도 필요한 것이지만 정조가 성군이었음도 더불어 알게 됩니다. 


사진: 족두리와 사모관대는 혼례식을 상징하는 의복이다(족두리와 사모관대는 혼례식을 상징하는 의복이다 [혼인 조선 정조 이덕무 김신부부전] / ⓒ Caspian blue)


김 씨와 신 씨의 조선시대 혼인 프로젝트는 이덕무가 쓴 김신부부전 외에도 항상 같이 언급되는 책이 또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희곡이라고 불리는 '이옥'의 <동상기>입니다. 희곡은 연극 대본이지만 실제로 공연을 위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희곡 형식으로 쓰인 책입니다. 이옥은 3일 동안 휴가를 내고 이것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과거의 전통 혼례식을 재현하는 현재의 사람들(과거의 전통 혼례식을 재현하는 현재의 사람들 [정조 이덕무 김신부부전 조선 혼인] / ⓒ Korea.net)


이옥의 동상기에도 노처녀 신씨가 너무나 자랑하고 싶어서 강아지에게 자랑하는 장면이 있으니 조선시대 정조의 혼인 프로젝트를 다시 알게 해 줍니다. 물론 지금에는 돈이 있어도 혼자 살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부담되어 결혼과 육아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보수당과 부자들은 왜 개인 사생활까지 국가가 신경을 써야 하냐는 주장을 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결혼과 인구증가를 위해 복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정조의 일화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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