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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 -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사의 찬미> 실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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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 -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사의 찬미> 실화?

키스 키스세븐 2018. 12. 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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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 -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사의 찬미> 실화?]

비극적인 결말 때문에 더욱 유명해지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글루미선데이 같은 곡들은 듣기만 해도 슬픈 곡으로 꼽힙니다. 우리나라엔 일제강점기의 사의 찬미가 실화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사의 찬미의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설은 아직 의혹이 있어서 실화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사의 찬미 실화 1 -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일제강점기의 노래 <사의 찬미> 뜻은 "죽음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노래 이름과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 '김우진'의 동반자살 사건이 어우러져서 당시에는 매우 충격적인 이슈를 몰고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동반자살을 했을까 하는 의문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진: 현해탄 투신 자살 사건으로 당시 동아일보에 보도된 기사(현해탄 투신 자살 사건으로 당시 동아일보에 보도된 기사 [사의 찬미 -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실화] / ⓒ donga.com)


사의 찬미의 윤심덕은 1890년대에 태어난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모두 신식 학교에 보냈으며, 4남매가 다 음악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여동생은 피아니스트, 남동생은 성악가가 되었는데, 교사가 되려던 윤심덕도 길을 바꿔서 일본으로 성악 유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1920년대에 극단에 참가했다가 유학생 김우진을 만나게 됩니다. 


사진: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사의 찬미 실화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 ⓒ hani.co.kr)


윤심덕, 김우진은 동반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이라면 동갑의 나이로 같이 세상을 뜬 것입니다. 김우진은 일본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극작가이며 한국 최초로 현대 연극 요소를 도입하였습니다. 윤심덕은 극단에서 노래를 부를 때 와세다 대학 2년생이었던 김우진을 알게 됩니다. 김우진은 목포 대지주의 아들이었으며 장차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을 인물이었습니다. 


사진: 윤심덕은 활달하고 개방적인 신여성이었다(윤심덕은 활달하고 개방적인 신여성이었다 [실화 사의찬미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 ⓒ kmib.co.kr)


사의 찬미의 윤심덕과 김우진이 동반자살을 했을지에 대한 의문은 이들이 딱히 자살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남는 것입니다. 분명 1926년 일본에서 같은 배를 타고 부산으로 향한 것이 맞고, 배에서 소지품만 남긴 채 두 사람이 사라진 것도 맞지만, 뛰어내리는 것을 본 목격자도 없고, 두 사람의 시신이 발견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열렬히 사랑했다는 증인도, 유서도 없었습니다. 




사의 찬미 실화 2 - 최초의 근대 연극 김우진 


여러 기사에서는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어머니도 일을 해야 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당시에 돈이 많이 드는 예술 공부를 삼남매가 했다는 것과 외국 유학까지 갔다는 점에서는 뜻밖의 얘기입니다. 반면 김우진은 재산을 관리하는 회사가 따로 있을 정도로 부유한 가문이었지만 아버지의 강압에 대항하며 연극 활동을 했습니다. 


사진: 최초의 정사자살사건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당시의 조선일보 기사(최초의 정사자살사건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당시의 조선일보 기사 [사의 찬미 -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실화] / ⓒ chosun.com)


윤심덕은 뚜렷한 얼굴에 큰 키를 가졌고 거침없는 성격이라서 "왈녀"라고 불렸습니다. 왈녀 뜻은 "왈가닥녀"를 줄인 말인 듯합니다. 일본 유학 중에 극단 활동을 하며 '홍난파', '채동선' 등과 친분을 맺었는데, 친해지면 바로 말을 놓을 정도로 활달한 성격이지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는 매우 냉정하게 거절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일본 유학 때는 김우진이 아니라 극단 배우와 사귀었었습니다. 


사진: 한국 최초의 현대 연극 요소를 도입한 극작가 김우진(한국 최초의 현대 연극 요소를 도입한 극작가 김우진 [사의 찬미 실화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 ⓒ encykorea.aks.ac.kr)


그러나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윤심덕은 성악가 활동에도 불구하고 경제난에 시달렸고, 동생의 유학자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돈 많은 남자들과 사귀었는데, 안 좋은 소문들 때문에 중국 '하얼빈'에 가게 되었습니다. 김우진은 일본에서 간호사와 사귀었었는데 백혈병으로 죽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고향에 왔지만 아버지가 강제로 사장 자리에 앉히자 견디지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사진: 김우진(오른쪽)과 그 동생의 사진. 목포의 대지주의 가문이었다(김우진(오른쪽)과 그 동생의 사진. 목포의 대지주의 가문이었다 [실화 사의찬미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 ⓒ y-archive.com)


이때도 이들은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윤심덕과 김우진이 동반자살을 할 만큼 애정을 가진 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윤심덕의 동생이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어 일본에 가게 될 즈음입니다. 그때 김우진의 추천에 의해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부르게 되었고, 이 앨범이 최초로 일본에서 발매된 조선어 앨범이 됩니다. 사의 찬미를 부를 때 윤심덕의 동생이 피아노 반주를 해 주기도 했습니다. 




사의 찬미 실화 3 -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원래 26곡을 녹음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윤심덕이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에 가사를 붙여 부르겠다고 제안해서 사의 찬미가 추가되었습니다. 물론 이때까지도 주변인들 중에 윤심덕과 김우진이 동반자살을 할 정도로 가까웠다고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김우진에게는 고향에 부인이 있었고 바람을 피우는 여자도 따로 있었으며, 윤심덕도 여러 남자와 사귀는 중이었습니다. 


사진: 1991년 영화 사의찬미 포스터. 임성민, 장미희, 조민기 주연, 김호선 감독이었다(1991년 영화 사의찬미 포스터. 임성민, 장미희, 조민기 주연, 김호선 감독이었다 [사의 찬미 -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실화] / ⓒ 김호선)


사의 찬미 앨범을 윤심덕이 녹음한 후 동생은 미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리고 윤심덕과 김우진은 부산행 배에 함께 올랐습니다. 그날 밤, 이들의 선실이 열려 있고 사람이 없는 것을 발견한 선원은 선장에게 알렸고 배를 돌려 수색을 했었습니다. 수색으로 인해 배가 반나절이나 늦게 도착하자 사의 찬미의 윤심덕, 김우진이 동반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사진: 2018년 SBS 드라마 사의찬미 포스터(2018년 SBS 드라마 사의찬미 포스터 [사의 찬미 실화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 ⓒ SBS)


얼마 후 사의 찬미 앨범이 발매되고, 윤심덕, 김우진의 동반자살 사건까지 언론에 터지면서 10만 장이나 판매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엄청난 기록인데, 신문들이 남의 얘기를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부추겨서 더욱 큰 사건으로 부풀려버렸습니다. 한편으로는 첫 앨범에 당시엔 큰돈인 3만 원이나 지급한 것을 보아, 레코드사가 흉계를 꾸민 것이라는 의혹도 생겼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음악가와 극작가가 현해탄에서 동반자살을 했다는 당시 첫 보도기사. 1926년 8월(음악가와 극작가가 현해탄에서 동반자살을 했다는 당시 첫 보도기사. 1926년 8월 [실화 사의찬미 윤심덕 김우진 동반자살] / ⓒ kmib.co.kr)


1930년대에는 자살한 것처럼 꾸민 후 이탈리아로 가서 악기점을 열고 잘 살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하지만 정식 조사까지 벌인 결과 이것은 그저 소문일 뿐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언론이 떠벌려댄 기사만 보면 매우 비극적인 사랑이야기가 숨어 있을 듯 하지만, 사의 찬미의 윤심덕, 김우진이 동반자살을 해야 할 정황이 없었습니다. 조선 최초의 정사 사건으로 큰 화제를 모았지만, 이 사건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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