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먼드 도스 - 핵소고지 실화와 영화 핵소고지 줄거리]
데스먼드 도스는 영화 핵소고지의 실화 인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는 집총을 거부를 하고 총도 없이 전쟁터를 누볐지만 훈장까지 받은 병사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뿐만 아니라 핵소고지의 기적이라는 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데스먼드 도스의 이야기를 핵소고지 영화 줄거리와 비교하며 알아봅니다.
영화 핵소고지 실화 배경
2017년 개봉한 영화 '핵소고지'의 실화는 '데스먼드 도스' 상병의 이야기입니다. 핵소고지 줄거리에서는 일병으로 나오는데, 집총 거부를 했지만 총 한 자루 없이 큰 공을 세우고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멜 깁슨'이 감독한 이 영화는 그 해 아카데미 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미국 영화연구소의 베스트10 영화에 선정되었습니다.
(영화 핵소고지의 포스터. 2016년 최고10개 영화에 선정되었다 [핵소고지 실화 데스몬드 도스 줄거리] / ⓒ Hacksaw Ridge)
핵소고지 실화의 데스먼드 도스는 양심적 신념 때문에 집총을 거부했습니다. '여호와의증인교'의 신도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그의 종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라고 합니다. 이 종교는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계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화 핵소고지의 줄거리는 종교가 아니라 "개인의 신념"이라는 주제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양심적 집총거부의 데스몬드 도스 의무병 [핵소고지 줄거리 실화 데스몬드 도스] / ⓒ Desmond Thomas Doss)
1945년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에 미국은 일본 본토 공격을 위해 반드시 점령해야 할 '오키나와 전투'를 벌였습니다. 영화 핵소고지의 줄거리는 이때의 '마에다고지 전투'를 배경으로 합니다. 핵소고지 뜻은 마치 쇠톱처럼 생겼다고 해서 'Hacksaw'라고 부른 고지를 말합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여 명, 일본군 9만여 명, 민간인 9만여 명(조선인 1만 명)이 죽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최대의 격전지 오키나와 전투의 장소 [데스몬드 도스 핵소고지 줄거리 실화] / ⓒ NEWSREP)
영화 핵소고지 줄거리에서는 아버지가 퇴역한 참전용사로 나오지만, 사실 데스먼드 도스는 아버지가 목수일을 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졸업하자마자 공장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공장 대체복무가 가능했지만 육군에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핵소고지 실화의 데스먼드 도스
국가적 위기였기 때문에 입대를 했으나 총을 쏘고는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의무병과에 자원했습니다. 살인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종교 때문이라기보다는 데스먼드 도스 자신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무병이라도 집총을 훈련을 받아야 했고, 그는 양심적 집총 거부를 하며 군대의 문제 병사로 낙인찍혔습니다.
(영화 핵소고지의 한 장면 [데스몬드 도스 핵소고지 실화 줄거리] / ⓒ Hacksaw Ridge)
종교적인 마찰은 토요일의 지휘검열과 훈련이었습니다. 그는 안식일에는 교회를 간다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물론 지휘관과 주변 동료 병사들은 그를 비난했습니다. 1940년대의 군대는 지금처럼 인권이 보장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든 수준의 고통을 받아야 했지만 그의 신념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데스몬드 도스의 당시 사진 [핵소고지 실화 줄거리 데스몬드 도스] / ⓒ The Vintage News)
1945년 태평양 전쟁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영화 핵소고지 줄거리에서의 전투는 오키나와의 마에다고지 전투입니다. 데스먼드 도스가 소속된 부대의 임무는 일본군 지휘소의 점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절벽에 숨어있다가 기관총으로 습격했습니다. 출동한 200여 명의 병사 중 100여 명이 순식간에 쓰러졌습니다.
(개인신념으로 사회적 강제를 이겨낸 인물의 영화가 핵소고지이다 [핵소고지 줄거리 실화 데스몬드 도스] / ⓒ Mel Gibson)
놀란 그의 부대는 후퇴를 했습니다. 그러나 데스먼드 도스는 그대로 남아서 의무병의 역할을 계속했습니다. 처참한 전투장소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생존자를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한 명씩 업고 후방으로 옮겼습니다. 일본군이 수류탄을 던지는 중에도 그는 70여 명의 부상자를 한 명씩 옮겼습니다. 핵소고지의 실화는 영화보다도 극적이었습니다.
핵소고지 줄거리와 실화
데스먼드 도스 상병의 활약은 여러 전투에서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부상병을 살리기 위해 일본군 벙커 바로 앞까지 기어가기도 했고, 집중 사격을 받으면서도 100m가 넘는 거리를 옮겨오기도 했습니다. 영화 핵소고지의 줄거리에서는 이런 모든 일화들을 각색하여 마에다 고지 전투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여줍니다.
(데스몬드 도스는 미국 육군 의무병이다 [핵소고지 실화 줄거리 데스몬드 도스] / ⓒ Adventist.org)
더구나 마에다 고지 전투가 있던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의 부대훈련을 거부하던 그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안식일이라도 쉬지 않았던 것입니다. 데스먼드 도스는 부상병을 돕던 중에 수류탄에 의해 부상을 입었지만, 다른 동료를 살리기 위해 그를 먼저 이송할 것을 부탁하고 자신은 혼자 기어서 부대로 복귀하기도 했습니다.
(트루먼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는 데스몬드 도스의 모습 [데스몬드 도스 핵소고지 줄거리 실화] / ⓒ lagaceta.com.ar)
영화 핵소고지 줄거리에서는 데스먼드 도스의 활약 중 일부가 빠져 있는데, 제작진의 해명에 의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을 정도라서 넣지 않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최고 명예 훈장을 받았으며 의무병의 상징처럼 유명해졌습니다. 그를 존경하는 지지자들에 의해 동상까지 세워졌으며 87세까지 살았습니다.
(헌신과 희생, 책임감의 존경심으로 세워진 동상. 의무병의 상징이 되었다 [핵소고지 줄거리 실화 데스몬드 도스 ] / ⓒ Gronda Morin)
핵소고지의 줄거리를 잘못 이해하면 종교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이지만, 핵소고지 실화의 데스먼드 도스의 집총거부는 개인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하나님의 보호해 줄 것이므로 두렵지 않았다고 말을 하지만, 장기간의 괴롭힘에도 굿굿하게 견디고 목숨의 위태로움에도 끝까지 헌신하는 자세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