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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4

문종 아들 단종 죽음 - 세조(수양대군)와 단종 유배지 영월 [문종 아들 단종 죽음 - 세조(수양대군)와 단종 유배지 영월]​단종은 수양대군이 반란을 일으켜서 쫓겨났습니다. 그 후 단종은 영월 청령포의 유배지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복위 사건이 터진 후 세조는 단종을 죽이기로 하고 사약을 내립니다. 단종의 죽음 후 시신은 버려진 채 아무도 돌보지 않았는데, 100년이 흐른 뒤에야 무덤이 발견되어서 지금의 장릉이 되었습니다. [엮인 글]단종과 영월부사 박충원 - 귀신 이야기와 엄흥도​​문종, 단종, 세조의 역사​조선왕조 계보의 첫 머리는 "태정태세문단세"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단"이 '단종'입니다. 4대 왕부터 보면, 세종-문종-단종-세조의 순서이며 단종은 '문종'의 아들이고 세종의 손자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피비릿내 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3대 왕인 '태종'과 .. 2018. 5. 12.
단종과 영월부사 박충원 - 귀신 이야기와 엄흥도 [단종과 영월부사 박충원 - 귀신 이야기와 엄흥도]단종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원통하게 죽었습니다. 삼촌에 의해 죽어간 단종과 영월부사 박충원의 이야기는 그러한 원통함을 가졌기에 백성들에게 남아서 이어져 왔습니다. 단종은 청령포 생활 후 사약을 받았는데, 야사에는 귀신 이야기로 남아서 전해 옵니다. [엮인 글]조선 문종의 이혼과 결혼들 - 현덕왕후와 단종 죽음의 배경 영월부사 박충원과 단종 '중종' 36년인 1541년 '박충원'은 '단종'의 영월에 군수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월은 민심이 매우 안 좋았습니다. 부임했던 영월군수들이 연달아 세 명이나 급사를 하자 관리들은 영월부사로 부임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박충원 영월부사가 부임 후 단종의 묘에 제사를 지냈고, 그 후로는 이런 일이.. 2018. 5. 11.
안용복의 생애와 독도 사건 - 독도영유권을 위해 활약한 조선시대 어부 안용복의 생애와 독도 사건 - 독도영유권을 위해 활약한 조선시대 어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독도는 첨예한 분쟁지역입니다. 독도 영유권 문제는 국제적으로도 영향이 크기 때문에, 역사에서 실효적 지배를 누가 해 왔냐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이때 중요한 인물로 기록된 사람이 독도사건의 안용복입니다. 안용복의 생애는 조선의 미천한 신분이었다고 하지만, 역사적 활약으로 조선이 독도를 지배했다는 기록이 남도록 하는 공헌을 세웠습니다. 안용복의 생애 - 독도 사건의 활약 안용복은 1690년대 숙종 때의 인물로, 왜에게 조선의 공식적인 독도 영유권을 위해 활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조선을 대표할 관리이거나 지도층이 아니라, 안용복의 생애가 미천한 신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하지 못한 .. 2016. 10. 16.
징비록 -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담은 류성룡 징비록의 뜻과 의미 [징비록 -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담은 류성룡 징비록의 뜻과 의미] 징비록은 16세기 말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대하여 류성룡이 기록한 책입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총 7년에 걸쳐 치러졌는데,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임진왜란 이전의 상황과 전쟁이 어떻게 치러졌고 조정에서는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징비록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역사기록의 가치뿐만 아니라 문학적 가치도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징비록의 뜻은 과거를 반성하여 미래를 대비한다는 의미 류성룡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영의정, 4도 도제찰사 등 주요관직을 거치며 전시 행정부를 이끈 인물입니다. 징비록의 뜻은 "벌주어 조심해야 할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혼낼 '징'자와 삼가할 '비'자를 썼는데, 징비록의 뜻을 풀이하자면 "과거의 잘.. 2015.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