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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14

장영실의 업적, 장영실과 세종의 드라마틱한 생애- 장영실의 발명품들 [장영실의 업적, 장영실과 세종의 드라마틱한 생애- 장영실의 발명품들] 1400년대의 조선을 세계 최고의 과학 선진국으로 만든 두 사람, 장영실과 세종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조선의 성군을 대표하는 세종의 업적은 말할 것도 없고, 출생부터 사망에까지 베일에 싸여진 장영실의 삶 또한 드라마틱합니다. 천민에서 양반에 오른 발명 신화, 장영실의 생애 장영실의 업적에 비해 생애는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장영실의 출생이 천민 신분이었고, 사망도 쫓겨난 뒤 기록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영실이 천민 소생이라고 하지만 아산 장씨 후손들은 장영실이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선시대의 "일천즉천"원칙 때문입니다. 양친 중 한 사람이라도 천민이면 그 사이의 자식은 천민이 됩니다. 원.. 2016. 1. 31.
맹사성 - 세종의 청렴한 정승, 맹사성의 일화와 황희정승과의 비교 [맹사성 - 세종의 청렴한 정승, 맹사성의 일화와 황희정승과의 비교] 조선 초 세종의 놀라운 업적에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서 모범을 보이는 삼정승이 있었습니다. 황희, 맹사성, 윤회는 세종의 측근으로 재상을 맡아 조선의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맹사성은 예의가 바르고 소박하면서도 업무에는 강직하여 공직자의 모범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청렴한 세종의 정승, 맹사성의 생애와 업적 맹사성은 최영 장군의 손녀 사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맹사성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는 최영 장군을 본받아 살고자 했다고 합니다. 재능이 있고 성품이 올바르기 때문에 최영의 숙적인 이성계도 맹사성을 조선 건국 후에도 중용하였습니다.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와 좌의정에 오르기까지 맹사성은 세종의 여진정벌을 돕고 조선 초의 음악.. 2016.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