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아지미와 시드니올림픽의 무삼바니]
2000년대에 들어서며 육상과 수영에는 진정으로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 화제였습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무삼바니(적도기니)와 2003년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아지미(아프가니스탄)입니다. 어설픈 실력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알리고자 참가했던 선수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아지미 이야기
2003년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모여서 실력을 다투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좋은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경기들이 펼쳐졌습니다. 국가의 지원 아래 최첨단의 유니폼을 입고 과학적 훈련을 받은 선수들이 모인 가운데, 매우 특이한 선수가 있었는데,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의 아지미입니다.
(사진: 선수권대회 100m 최저 기록을 세운 아프가니스탄 아지미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아지미, 시드니올림픽 무삼바니] / ⓒ archive.li)
파리 육상선수대회의 '리마 아지미'는 '아프가니스탄' 선수입니다. 육상의 꽃인 100m 달리기에 참가했습니다. 여자 육상 100m 달리기 출발선에 선 아프가니스탄의 아지미는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어설픈 준비동작으로 서 있었습니다. 전문선수들은 완벽한 스타트 자세로 준비 중이었지만 그녀는 스타트블럭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사진: 경기장에서 경기방법을 배워서 시합을 한 리마 아지미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아지미, 시드니올림픽 무삼바니] / ⓒ ina.fr)
마침내 스타트 총성이 울리고 선수들은 총알처럼 튀어나갔습니다. 뒤늦게 출발한 아프가니스탄의 아지미는 상대가 되지 않는 속도였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미국 선수가 10초 85로 우승을 안은 후에도 리마 아지미는 60m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기록은 18초 37입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아지미가 최저기록을 세우는 순간입니다.
(사진: 실력은 상대가 안 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아지미는 조국을 세계에 알렸다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아지미, 시드니올림픽 무삼바니] / ⓒ dn.se)
하지만 관중들은 여고생 달리기에서나 볼 수 있는 속도의 리마 아지미를 위해 열렬히 응원해 주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아지미는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조직위가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특별히 배려해 준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의 유일한 참가선수였으며, 운동을 시작한지 겨우 한 달이 된 23세의 대학생이었습니다.
(사진: 고등학교 운동회같은 차림의 리마 아지미와 전문 선수들의 비교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아지미, 시드니올림픽 무삼바니] / ⓒ Corbis Sport)
아프가니스탄은 9.11테러의 배후자로 알려진 '빈 라덴'으로 인해 2001년 미국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2003년부터는 NATO가 관리에 나섰지만 '팔레반 반군'의 반란으로 극심한 내전을 겪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선수 리마 아지미는 조국의 평화메시지를 호소하기 위해 국가의 아무런지원도 못 받는 상황에도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지원했던 것입니다.
시드니올림픽 무삼바니 이야기
2000년에는 미국 시드니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이 경기에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적도기니'에서 한 선수가 참가했습니다. 적도기니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작은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그 선수의 이름은 '에릭 무삼바니'였습니다. 시드니올림픽의 무삼바니는 수영을 시작한 지 겨우 8개월 된 선수였습니다. 그도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아지미처럼 조국을 위해 참가했습니다.
(사진: 올림픽 수영 100m 최저기록을 세운 적도기니 무삼바니 [시드니올림픽 무삼바니,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아지미] / ⓒ news.com.au)
적도기니는 석유가 나는 나라지만, 국민들은 매우 가난한 나라입니다. 집권자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몇 십 년 동안 독재를 하고 있습니다. 석유의 발견으로 경제가 발전하는 듯 했지만, 독재권력 때문에 분배가 되지 않는 나라의 국민은 항상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통계 숫자 상 올라가는 경제 발전 뒤에는 희생하는 서민들이 있었습니다.
(사진: 20m 수영장에서 연습한 에릭 무삼바니는 100m 경기장에서 거의 죽을 정도였다 [시드니올림픽 무삼바니,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아지미] / ⓒ eurosport.com)
각국의 선수들은 남자 100m 수영 경기를 위해서 인체공학적 수영복을 지원받고 엄청난 훈련을 거친 선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적도기니의 무삼바니는 20m 수영장이 딱 두 개 있는 나라에서 수영을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에릭 무삼바니는 50m를 왕복하는 100m 경기를 해 본적도 없었습니다. 시드니올림픽의 무삼바니는 개헤엄 밖에 모르는 수영선수였습니다.
(사진: 3인 예선에서 두 사람이 부정출발로 탈락하자, 에릭 무삼바니는 혼자서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시드니올림픽 무삼바니,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아지미] / ⓒ news.com.au)
예선 경기에서 세 명이 출발을 할 예정이었으나 어이없게도 두 명의 선수가 부정출발로 탈락되고 적도기니의 무삼바니 혼자서 수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수영장에서 입는 수영복과 너덜거리는 물안경을 낀 무삼바니는 50m 턴을 하기 전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연습을 하던 수영장의 두 배 이상을 온 것이니 말입니다.
(사진: 골인 10m 앞에서 거의 탈진한 에릭 무삼바니. 그는 죽지 않으려고 수영을 했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시드니올림픽 무삼바니,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아지미] / ⓒ belfasttelegraph.co.uk)
그래도 죽을 힘을 다해 끝까지 완주하는 시드니올림픽의 무삼바니에게 관중들이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골인지점 10m 앞 즈음에서는 거의 탈진해서 앞으로 나가질 못할 정도였습니다. 에릭 무삼바니의 기록은 1분 52초... 이것은 200m 경기보다도 못한 기록입니다. 하지만 무삼바니는 말했습니다. 남들은 메달이 목적이었지만, 자신은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수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입니다.
(사진: 세계적인 유명선수가 된 적도기니 무삼바니. 하지만 그의 가난은 아주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시드니올림픽 무삼바니,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아지미] / ⓒ afrotourism.com)
스포츠에서 1등은 중요한 것이지만, 오로지 1등만을 위해서 스포츠가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꼴등이라도 아름다운 경쟁을 했느냐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시드니올림픽의 무삼바니는 세계 최저속 올림픽 수영선수지만 조국 적도기니의 국민들을 알려는 마음이 아름다운 선수였습니다.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아지미와 시드니올림픽의 무삼바니는 오랫동안 기억될 선수들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