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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 이의민 장군 - 소금장수 아들이 장군이 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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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 이의민 장군 - 소금장수 아들이 장군이 되다

키스세븐지식 2017. 6. 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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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 이의민 장군 - 소금장수 아들이 장군이 되다]

고려 무신정권의 이의민 장군은 격동의 역사에서 미천한 신분으로 권력자에 오른 인물입니다. 무신 이의민은 고려 의종 때 무신정변이 일어난 이후 실권을 쥐었습니다. 그는 외적과의 공보다는 무신정권의 내부 권력다툼에서의 권력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저 소금장수 이의민으로 평생 살았을지도 모르는 그가 어떻게 고려의 이의민장군이 되었는지, 삶을 따라가 봅니다.


[글의 순서]

1. 고려 무신정변과 이의민

2. 소금장수 이의민, 장군이 되다

3.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무신정권






고려 무신정변과 이의민


소금장수의 아들 '이의민'이 어떻게 고려 무신정권의 장군이 되었는지 보기 전에 '무신정변'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먼저 알아야겠습니다. 고려 말인 1170년 이전은 군대를 맡고 있는 무신들의 불만이 한껏 높아진 시기입니다. 

고려도 초기에는 강력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북진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기로 가면서 점점 그 기백은 퇴색하고 모든 실권을 문신들이 쥐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진: 고려시대 귀족의 생활상을 그린 그림. 신라시대에 비해 고려시대는 신분의 상승이 그나마 가능했었다. 그렇기에 소금장수 아들이 장군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고려 무신정변과 이의민](사진: 고려시대 귀족의 생활상을 그린 그림. 신라시대에 비해 고려시대는 신분의 상승이 그나마 가능했었다. 그렇기에 소금장수 아들이 장군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고려 무신정변과 이의민] / ⓒ 한국역사연구회)


그런데 사실 군대의 실권을 문신이 쥐는 경우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조선 초기 '4군 6진'을 개척한 '김종서'도 사실은 문신입니다. 즉, 전쟁의 실무자는 무관 장수들이지만 전쟁을 총괄하는 지휘관은 문관들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귀주대첩'의 '강감찬' 장군, '동북 9성' 점령의 '윤관' 장군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강감찬과 윤관도 무신이 아니라 문신입니다. 그러므로 무신정변의 진짜 이유는 이러한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문신들의 행태 때문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진: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고려 강감찬 장군의 상상화. 장군이라고 하지만 강감찬, 윤관 등은 문관출신이다. [고려 무신정변과 이의민](사진: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고려 강감찬 장군의 상상화. 장군이라고 하지만 강감찬, 윤관 등은 문관출신이다. [고려 무신정변과 이의민] / ⓒ 미상)


고려 중기에는 '김부식'처럼 중화사상에 빠진 보수주의자들이 권력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고려 '의종'도 나름 무신에게 힘을 실어줘서 문신과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지만, 문신들의 행태 때문에 무신의 불만만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종이 참석한 가운데 '수박'경기가 열렸는데, 문신인 '한뢰'가 무신 '이소응'의 뺨을 때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소응은 무신으로서는 높은 직책의 나이 많은 장군이었지만, 문신들이 함부로 대한 것입니다. 무신들이 발끈 했지만 의종은 오히려 문신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사진: KBS 역사스페셜에서 방송된 의종의 모습. 고려 의종 말기에는 문신과 무신의 형평성을 맞추려 했지만 의종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고려 무신정변과 이의민](사진: KBS 역사스페셜에서 방송된 의종의 모습. 고려 의종 말기에는 문신과 무신의 형평성을 맞추려 했지만 의종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고려 무신정변과 이의민] / ⓒ KBS)


결국 그날 '정중부', '이고', '이의방' 등은 무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한뢰를 비롯한 문신들을 살육했는데, 잔뜩 화가 난 무신들은 왕이 있는 자리에서도 칼을 빼들어 살인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부식의 아들 '김중돈'을 거열형에 처했으며, '김부식'의 시체를 파내어 부관참시를 했습니다. 소금장수의 아들 이의민도 무신정변에 참여해서 무신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버렸습니다. 

이때 쿠데타 세력 중에서도 이의민은 가장 많은 문신들을 잡아 죽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쿠데타가 성공한 후 이의민은 장군에 오르게 됩니다. 




소금장수 이의민, 장군이 되다


고려 무신정변에 참여하며 장군의 자리에 오른 이의민은 소금장수의 아들이었습니다. 권력층과 비교한다면 미천한 신분이기는 하지만, 옛날의 소금은 비싼 생필품이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환경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 이의민의 아버지는 소금장수 평민이지만 어머니는 노비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노비종모법', '천자수모법'에 의해 부모 중 한쪽이 노비면 자식도 노비여야 했지만, 고려 시대에는 한쪽이 평민이면 한쪽이 노비였더라도 평민으로 살 수가 있었습니다. 


사진: 노비의 생활을 다룬 그림 경직도. 이 그림은 고려시대를 묘사한 것은 아니지만 노비들이 하는 일들을 알 수 있다. [소금장수 이의민, 장군이 되다](사진: 노비의 생활을 다룬 그림 경직도. 이 그림은 고려시대를 묘사한 것은 아니지만 노비들이 하는 일들을 알 수 있다. [소금장수 이의민, 장군이 되다] / ⓒ 미상)


그런데 이의민의 조상을 따져보면 사실은 문벌 집안입니다. 이의민이 경주에 살았으나 그 조상은 '안남 이씨'이며 본관은 강원도 '정선'입니다. 여기서 안남은 '베트남'을 말합니다. 소금장수 이의민의 6대 조상은 베트남의 왕자였는데 송나라에 가서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는 '송나라'가 '금나라'에게 굴욕적인 수모를 당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고려로 망명하였습니다. 이의민의 조상들은 정선에 살며 벼슬을 하기도 했지만 직계 조상대에서 몰락하여 경주에 내려가 살고 있었습니다. 


사진: 이의민의 선조 안남 이씨가 귀화할 때의 국제 흐름. 송나라가 약해지고 베트남에서 고려의 강원도 정선으로 이주한 것이 이의민의 정선 이씨다. [소금장수 이의민, 장군이 되다](사진: 이의민의 선조 안남 이씨가 귀화할 때의 국제 흐름. 송나라가 약해지고 베트남에서 고려의 강원도 정선으로 이주한 것이 이의민의 정선 이씨다. [소금장수 이의민, 장군이 되다] / ⓒ namu.wiki)


젊은 시절의 소금장수 이의민은 불량배였다고 합니다. 역사에는 기골이 장대하여 키가 8척이나 됐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1척은 32cm정도입니다. 계산상으로 키는 2m 40cm지만, 적어도 190cm는 넘는 키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의민은 3형제였는데, 돈을 뜯고 행패를 부리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안찰사'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받던 중 두 형제는 사망하고 이의민은 끝까지 살아남으니, 안찰사의 추천으로 군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수박'(택견 같은 무술이며 손기술 위주)이 뛰어나서 "수박으로 성공한 이의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사진: 수박의 모습. 현재는 정확한 원형을 알 수 없으나, 발기술을 주로 사용하는 택견과 달리 손기술을 주로 사용하는 무술로 알려져 있다. [소금장수 이의민, 장군이 되다](사진: 수박의 모습. 현재는 정확한 원형을 알 수 없으나, 발기술을 주로 사용하는 택견과 달리 손기술을 주로 사용하는 무술로 알려져 있다. [소금장수 이의민, 장군이 되다] / ⓒ 전통무예연구소)


이의민은 수박을 잘해서 고려 의종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정치적 적인 '두경승'과의 대결은 아주 유명한 일화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자기가 더 잘한다며 힘겨루기를 할 때, 벽에 구멍이 나고 지붕이 흔들릴 정도였다고 전해 옵니다. 

그러나 이의민은 의종을 배신하고 정중부의 무신정변에 참여합니다. 이때 '중랑장'으로 승진했다가 무신에게 대항하는 반란을 진압하면서 상장군에까지 오릅니다. 의종을 죽이고 가마솥에 넣어 연못에 수장시킨 공로로, 나중에는 대장군에까지 올라간 소금장수의 아들 이의민입니다.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무신정권



소금장수의 아들 이의민에서 고려 무신정변의 대장군 이의민이 되는 과정은 국가를 위한 공로나 한 인물의 성공신화가 아닙니다. 쿠데타를 이용한 세력이 결국은 똑같이 타락하고 부패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하지만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는 자신들의 쿠데타를 미화시키기 위해서 고려 무신정변을 긍정적으로 표현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등 보수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그런 면에서 위험한 것입니다. 

고려 무신정권의 권력 흐름은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우 - 최항 - 최의 - 김준 - 임연 - 임유무"의 순서이며 1270년 무신시대가 끝납니다. 


사진: 경대승과 승부를 겨루는 이의민의 모습. 소금장수의 아들 이의민은 상장군에 올랐으나 경대승의 쿠데타로 권력에서 밀려난다.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무신정권](사진: 경대승과 승부를 겨루는 이의민의 모습. 소금장수의 아들 이의민은 상장군에 올랐으나 경대승의 쿠데타로 권력에서 밀려난다.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무신정권] / ⓒ KBS)


고려 무신정변 이후 무신정권은 매우 많은 문신들을 죽였습니다. 심지어 내부에서도 이제는 그만 죽이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닥치는 대로 문신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의민은 무신정권에 반대하는 반란을 모조리 진압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쿠데타 이후에는 또 쿠데타가 오는 법, '경대승'이란 인물이 또 정변을 일으켜서 정중부를 죽이고 권력을 차지합니다. 이의민은 겁을 먹고 병을 핑계로 경주로 내려가서 은둔했습니다. 그런데 경대승이 병에 걸려 갑작스런 사망하는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사진: 이의민은 같은 무신정변 세력인 이의방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이의방도 포악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무신정권](사진: 이의민은 같은 무신정변 세력인 이의방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이의방도 포악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무신정권] / ⓒ KBS)


고려 무신정권이 의종을 내쫓고 왕위에 올려놓은 사람은 '명종'입니다. 경대승이 죽고 권력의 공액이 생기자 명종은 불안해졌습니다. 무신세력 없이 혼자 권력을 독차지할 능력도 없었는데다가, 경주에 있는 소금장수 장군 이의민이 언제 반란을 일으킬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의민은 도참설을 따르며 이씨가 왕이 된다는 설을 믿고 있었습니다.

명종은 이의민을 중앙으로 불러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의민은 성격이 포악하여 바른 정치를 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이의민 뿐만 아니라, 그 아들과 손자까지도 부정부패를 하고 횡포를 부렸습니다. 견제를 할 만한 권력이 없으니 고려는 더욱 썩어들어 갔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KBS사극 무인시대의 한 장면. 결국 이의민은 최충헌에 의해 죽음을 맞고 고려는 장기간의 무신정권 하에 들어 간다.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무신정권](사진: KBS사극 무인시대의 한 장면. 결국 이의민은 최충헌에 의해 죽음을 맞고 고려는 장기간의 무신정권 하에 들어 간다.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무신정권] / ⓒ KBS)


1196년,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된 미움이 확대되어 최충헌 세력은 외출하려던 이의민을 습격하여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의민과 세 아들의 참수된 머리를 길거리에 내걸었습니다. 이후 최씨, 김씨, 임씨 권력을 거쳐서 몽골군이 원나라가 되어 고려에 침입할 때까지 고려 무신정권은 계속되었습니다. 

소금장수의 아들이 장군이 되었던 고려의 역사를 보면서 깊이 생각해 볼 일이 있습니다. 부정부패를 바로 잡으려는 사람은 스스로 부정부패가 없어야 합니다. 스스로의 도덕성이 없는 쿠데타 정권은 또 다른 쿠데타를 다시 부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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