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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사람&일화

신석균 - 한국의 에디슨이라는 발명가 신석균 발명학회장

2017. 1. 26.

[신석균 - 한국의 에디슨이라는 발명가 신석균 발명학회장]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은 마치 발명의 대명사처럼 불립니다. 그리고, 한국의 에디슨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도 있는데, 우유팩을 발명한 것으로 TV 등에 소개된 신석균 발명가입니다. 발명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 어른들에게 반가운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한 평생을 오직 발명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온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의 '신석균' 발명가는 아직도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발명 작업에 매진하는 열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꿈에 발명 아이디어가 나타나면 깨었다가 다시 잠들어도 그 꿈을 연속해서 계속 꿀 정도로 발명가 신석균의 발명 사랑은 대단하다고 합니다. 젊은이 보다 정렬적인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의 건강의 비결은 창의로운 상상과 발명에 대한 끝없는 도전 정신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사진: 90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발명을 향한 열정이 끊이지 않는 발명가 [신석균 - 한국의 에디슨이라는 발명가 신석균 발명학회장](사진: 90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발명을 향한 열정이 끊이지 않는 발명가 [신석균 - 한국의 에디슨이라는 발명가 신석균 발명학회장] / ⓒ idea.dalseo.daegu.kr, 왕연중)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는 발명관련 최다 수상자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습니다. 국제대회 수상과 메달이 140여 개가 넘어, 세계최다 발명상 수상 기록 보유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그는 현재 '한국발명학회' 회장으로 있으며, 과학문화상 심사위원을 지냈고 백과사전 집필진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발명가 신석균 때문에 우리나라의 특허기관인 '특허국'이 '특허청'으로 승격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발명분야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진: 기네스북에 최다 발명상 수상자로 등재되었다.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사진: 기네스북에 최다 발명상 수상자로 등재되었다.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 /ⓒ wikimedia.org)


발명가 신석균은 현재까지 1만여 건의 발명을 하였으며, 국내외 특허출원만도 5000건이 넘고 실용실안 등록 등이 1700건을 넘습니다. 한국 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장영실과학문화상' 발명문화대상을 2000년에 수상한 것 외에도 1979년 에디슨 재단상 수상, 1979년 뉴욕 세계 발명가 박람회 금상을 수상하며 신석균은 한국의 에디슨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1986년 제네바 국제발명품 전시회에서는 6개 부분에 출품하여 7개 부분에서 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사진: 한국 과학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장영실과학문화상 트로피의 모습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사진: 한국 과학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장영실과학문화상 트로피의 모습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 / ⓒ ijokbo.com)


뿐만 아니라 1991년 금탑훈장을 받았고 1998년에는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으로 선정하는 대한민국 아웃사이더로도 선정되었습니다. 그의 유명세로 인하여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이라는 내용으로 90년대 교과서에서도 발명 이야기가 다루어진 적이 있습니다. 2003년에는 일본 세계천재회의에서 최고발명대천재상을 수상하였는데, 이후에도 총 3회나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이 대회의 발명품전시회에서는 10회 연속 금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사진: 일본 세계천재회의 대회의 발명부스의 모습. 이런 식으로 박람회가 개최된다.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사진: 일본 세계천재회의 대회의 발명부스의 모습. 이런 식으로 박람회가 개최된다.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 / ⓒ parangdo21)


신석균 발명가는 지금도 꼬박꼬박 발명 일기를 적는다고 합니다. 무려 30년을 넘게 쓰고 있는 이 일기는 러시아어로 써졌습니다. 이것은 발명 아이디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 러시아어로 쓰고 이상한 도형으로 표시한 뒤 5개 국어로 설명을 적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는 하루 1건의 발명이 목표하고 하는데, 아직도 1주일에 2건은 특허출원을 하는 대단한 능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진: 오래된 신문에서도 30년간 써 온 발명일기를 자랑하는 사진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사진: 오래된 신문에서도 30년간 써 온 발명일기를 자랑하는 사진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 / ⓒ hankooki.com)




발명가 신석균이 한국의 에디슨이 되는 이야기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는 1929년 황해도 평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과수원집 아들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발명가의 소질을 보였다고 합니다. 직접 말하는 최초의 발명이야기는 7살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비오는 날 우산을 쓰면 앞이 잘 안 보이는 것을 느낀 그는 할아버지를 졸라서 우산에 셀로판지를 붙여 '창이 달린 우산'을 만들게 했다고 합니다. 당시엔 특허출원이란 개념도 없던 때였는데, 이 아이디어는 20년 후 일본인에 의해 다시 개발되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사진: 어릴 때부터 발명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고 회고하는 신석균 발명가협회장. 이 장면은 방송출연 모습이다. [발명가 신석균이 한국의 에디슨이 되는 이야기](사진: 어릴 때부터 발명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고 회고하는 신석균 발명가협회장. 이 장면은 방송출연 모습이다. [발명가 신석균이 한국의 에디슨이 되는 이야기] / ⓒ tvN 방송캡처)


당시엔 국민학생이라고 부르던 6학년 때, 과학시간에 과망간 실험에서 연기가 펑하고 터지는 것을 보고는 과학자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수박참외를 만들겠다고 하다가 아버지의 수박밭을 망치기도 하고, 모형비행기 날리기 대회에서는 비행기 꼬리부분을 개조해서 도내 대회를 휩쓸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으로 불리지만 당시엔 항생제도 없어서 형제 3명을 잃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관사를 꿈꾸며 백과사전을 공부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사진: 지금도 어린이의 과학열정을 깨우기 위해 모형비행기 날리기 대회는 계속되고 있다. [발명가 신석균이 한국의 에디슨이 되는 이야기](사진: 지금도 어린이의 과학열정을 깨우기 위해 모형비행기 날리기 대회는 계속되고 있다. [발명가 신석균이 한국의 에디슨이 되는 이야기] / ⓒ Ben Kerckx)


부모가 굳이 발명가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늘 이과성적 1등이었기에 발명가의 꿈은 여전했습니다. 발명가 신석균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해에 팔뚝에 "정심(正心)"이라는 문신을 새겨줬습니다. 항상 바른 마음으로 살라는 의미였는데, 신석균 발명가는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보며 "이거 때문에 부자가 못 됐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발명가는 돈을 목적으로 일하면 안 되고, 성취감과 자기만족을 위해 발명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진: 아버지가 팔뚝에 새겨 주었다는 (사진: 아버지가 팔뚝에 새겨 주었다는 "정심"이라는 문신은 마음을 바르게 하고 평생을 살아오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발명가 신석균이 한국의 에디슨이 되는 이야기] / ⓒ 27707)


유명 발명가라고 하면 떼돈을 벌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은 허름한 건물 지하에 종이로 만든 간판이 있는 좁은 공간에서 발명품을 연구합니다. 발명으로 돈을 벌었다고 해도 각종 발명대회의 출품을 위한 '부스'를 마련하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발명가 신석균의 인터뷰를 보면 "세상만사는 항상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발전한다"는 말이 있는데, 기존의 세상과 그것에서 발전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상호관계에서 이뤄진다는 철학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 발명박람회는 이런 식의 행사로 진행된다. 사진은 한국에서 열린 여성발명가대회 현장 모습. [발명가 신석균이 한국의 에디슨이 되는 이야기](사진: 발명박람회는 이런 식의 행사로 진행된다. 사진은 한국에서 열린 여성발명가대회 현장 모습. [발명가 신석균이 한국의 에디슨이 되는 이야기] / ⓒ 장준형)




논란의 우유팩 발명과 신석균의 발명품들


발명가 신석균은 한국의 에디슨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발명을 했습니다. 매스컴을 통해 세계가 사용하는 현재의 우유팩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주파수 수신기가 내장된 라디오 모자, 바이오리듬 프로그램, 종이 파이프가 들어간 자동소화필터 담배, 가슴에 대고 전화를 걸어 원격으로 진단할 수 있는 녹음청진기, 자동응답전화기의 무한반복 재생테이프, 자면서도 학습이 가능한 수면학습기, 임신조절이 가능한 컴퓨터, 유리 사이에 물을 넣어 확대경을 쓸 수 있는 액체렌즈, 아무데나 붙여서 꽃을 감상할 수 있는 접착식 화병 등을 발명하였습니다. 


사진: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은 방송이나 언론에서 우유팩 발명을 자신이 했다고 말하고 있다. [논란의 우유팩 발명과 신석균의 발명품들](사진: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은 방송이나 언론에서 우유팩 발명을 자신이 했다고 말하고 있다. [논란의 우유팩 발명과 신석균의 발명품들] / ⓒ tvN 방송캡처)


특히 불빛을 비춰서 위조지폐인지를 감식할 수 있는 초미니 위조지폐감식기는 60개국 이상의 화폐제조 방법을 연구하고 화폐의 종이 질과 화학성분까지 분석하였으며 각종 중고 감식기를 수집하여 결실을 맺은 발명품입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제적으로 공인된 세계 최고의 발명가는 일본인이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하겠다는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가의 집념은 결국 세계최고의 발명가 신석균으로 기네스북에서도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진: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이 6.25 당시 우유팩을 발명하게 된 원리를 방송에서 설명하는 모습. [논란의 우유팩 발명과 신석균의 발명품들](사진: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이 6.25 당시 우유팩을 발명하게 된 원리를 방송에서 설명하는 모습. [논란의 우유팩 발명과 신석균의 발명품들] / ⓒ KBS 방송캡처)


6.25 때 우유팩을 발명했다고 하는 신석균 발명가의 설명과는 달리, 현재의 우유팩 모양인 '게이블 탑 가톤'의 발명이 이미 1915년 '존 반 워머'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문서가 있습니다. 이후 발명가 신석균이 1968년 특허출원한 일명 '절첩식 컵'도 우유팩의 효시라는 언론보도와는 차이가 있으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에서 설명한 그의 설명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우유팩 발명 내용과는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설명은 미국제 종이를 이용한 접이형 아이디어에 가깝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1968년에 발명가 신석균이 특허출원한 6각 모양의 절첩식 첩의 특허 설명서. [논란의 우유팩 발명과 신석균의 발명품들](사진: 1968년에 발명가 신석균이 특허출원한 6각 모양의 절첩식 첩의 특허 설명서. [논란의 우유팩 발명과 신석균의 발명품들] / ⓒ 특허청)


발명가 신석균의 우유팩 발명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으나, 어찌되었든 그의 발명에 대한 열정은 한국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것에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에디슨 기념관이 설립된 1929년에 발명가 신석균이 태어났으니 이 또한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1백년 이상 사용하는 발명품을 10가지 이상 발명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발명 대학을 세우고 싶다는 또 하나의 꿈을 가진 발명가 신석균... 고령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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