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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비틀즈의 영화 일화들 - 원작 소설, 비틀즈 뒷얘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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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비틀즈의 영화 일화들 - 원작 소설, 비틀즈 뒷얘기

키스세븐지식 2016. 10. 1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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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비틀즈의 영화 일화들 - 원작 소설, 비틀즈 뒷얘기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영화 반지의 제왕은 톨킨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습니다. 세계3대 판타지소설을 쓴 톨킨이지만, 사실 그에게 반지의 제왕은 실마릴리온을 쓰던 중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한 소설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일화로, 세계적 그룹인 비틀즈가 반지의 제왕을 영화화하려고 했지만 톨킨에게 거부당한 적도 있습니다. 






비틀즈, 반지의 제왕에 출연 계획의 실패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락그룹 비틀즈와 반지의 제왕에 얽힌 일화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소설 원작의 영화화 아이디어는 사실 존 레논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감독이 실제로 밝힌 내용입니다. 2002년 피터 잭슨은 영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그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만난 피터 잭슨 감독과 비틀즈 맴버 폴 매카트니는 추억 깊은 얘기들을 나눴다고 합니다. 피터 잭슨은 존 레논의 제의로 비틀즈 멤버들이 반지의 제왕 캐릭터들의 역할까지 나눴었다는 사실을 폴 매카트니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사진: 존레논과 그의 아내. 1960년대 말에 존레논은 멤버들에게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찍자고 제의하고 골룸 역을 맡겠다고 했다. [비틀즈, 반지의 제왕에 출연 계획의 실패](사진: 존레논과 그의 아내. 1960년대 말에 존레논은 멤버들에게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찍자고 제의하고 골룸 역을 맡겠다고 했다. [비틀즈, 반지의 제왕에 출연 계획의 실패] / ⓒ Jack Mitchell)


30년이 넘는 이런 일화가 있게 된 것에는 존 로널드 로엘 톨킨이라는 유명한 베스트셀러작가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원작소설인 반지의 제왕은 소설 6권과 해설 1권으로 1950년대 초에 출판되었습니다. 비틀즈는 1960년대 초에 활발한 활동을 했던 그룹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빠져들었고, 그 중에 비틀즈도 있었습니다. 비틀즈의 리더였던 존 레논은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멤버들과 영화제작의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이미 비틀즈는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진: 폴 매카트니. 악보도 볼 줄 모르면서 작곡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마침내는 클래식 교향곡까지 작곡하여 공연하였다. [비틀즈, 반지의 제왕에 출연 계획의 실패](사진: 폴 매카트니. 악보도 볼 줄 모르면서 작곡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마침내는 클래식 교향곡까지 작곡하여 공연하였다. [비틀즈, 반지의 제왕에 출연 계획의 실패] / ⓒ Kubacheck)


비틀즈는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만들면 누가 무슨 배역을 맡을 것인지까지 얘기했었다고 합니다. 존 레논은 골룸 역을 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공동 리더 격인 폴 매카트니는 주인공인 프로도 역을 맡기로 했다고 합니다. 멤버 조지 해리슨은 간달프 역을, 드러머인 링고스타는 쌤을 맡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영화제작 계획을 가지고 유명 감독인 스탠리 큐브릭을 만났습니다. 큐브릭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샤이닝 등을 만든 거장입니다. 비틀즈 팬 뿐만 아니라 반지의 제왕 팬들은 이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안타까워하며 기념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진: 조리 해리슨.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비틀즈의 숨은 천재. 나중에는 인도음악에 심취하여 흰두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비틀즈, 반지의 제왕에 출연 계획의 실패](사진: 조리 해리슨.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비틀즈의 숨은 천재. 나중에는 인도음악에 심취하여 흰두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비틀즈, 반지의 제왕에 출연 계획의 실패] /ⓒ Steve Mathieson)


원작이 소설이다 보니 영화제작을 위해서는 판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비틀즈는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과도 접촉했지만, 이 거창한 계획은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게 됩니다. 톨킨이 영화화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지금 같은 특수효과가 없던 당시의 영화화가 어땠을런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어쨌든, 그들의 계획은 깨지고 말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서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비틀즈가 최초가 될 뻔한 사실이 묻힌 체 영화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존 레논은 암살당하고, 조지 해리슨은 암으로 죽었기 때문에 영화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사진: 조용하게 유명했던 링고스타. 본명은 리처드 스타키였다. 그의 활달한 성격 덕에 비틀즈가 그나마 8년이나 유지됐다고 한다. [비틀즈, 반지의 제왕에 출연 계획의 실패](사진: 조용하게 유명했던 링고스타. 본명은 리처드 스타키였다. 그의 활달한 성격 덕에 비틀즈가 그나마 8년이나 유지됐다고 한다. [비틀즈, 반지의 제왕에 출연 계획의 실패] / ⓒ Jean Fortunet)





호빗의 성공 후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을 찍기 전에 세계적인 그룹인 비틀즈가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톨킨이 왜 반대했을까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설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톨킨이 비틀즈를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비틀즈의 인기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밴드를 만들어 연습을 했고, 그들의 소음 때문에 밴드그룹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톨킨이 그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비틀즈의 계획에서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사진: 톨킨의 소설 호빗을 2010년대에 영화로 만든 작품. 원작소설은 1930년대에 출간되었다. 반지의 제왕과 연결된 스토리를 가지고 잇다. [호빗의 성공 후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사진: 톨킨의 소설 호빗을 2010년대에 영화로 만든 작품. 원작소설은 1930년대에 출간되었다. 반지의 제왕과 연결된 스토리를 가지고 잇다. [호빗의 성공 후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 /ⓒ 영화포스터)


존 로널드 로엘 톨킨은 영국의 언어학자이며 소설가입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나니아 연대기, 어시스 연대기와 함께 세대3대 판타지소설로 불립니다. 톨킨은 판타지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며 이후에 나오는 대부분의 판타지소설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스타워즈를 감독한 조지 루카스도 반지의 제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어찌 보면 톨킨은 그저 판타지소설가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세계적인 옥스퍼드 대학의 영문과 교수이기도 하며,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W단어 부분을 맡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진: 존 로널드 로엘 톨킨의 원작소설인 반지의 제왕을 영화화한 것은 2000년대이다. 원작은 1950년대 작품이다. [호빗의 성공 후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사진: 존 로널드 로엘 톨킨의 원작소설인 반지의 제왕을 영화화한 것은 2000년대이다. 원작은 1950년대 작품이다. [호빗의 성공 후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 / ⓒ 영화포스터)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쓰게 된 것에는 출판사의 압력에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1930년대에 호빗이라는 소설로 큰 호평이 있자, 출판사들은 톨킨에게 후속작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톨킨이 정작 쓰고 있었던 작품은 영국을 대표할만한 신화의 이야기가 담긴 실마릴리온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방대하고 작품성이 깊이 있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판사들은 실마릴리온에 냉담하고 호빗류의 글을 쓰라고 요구했는데,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반지의 제왕인 것입니다. 


사진: 언어학자이며 교수이고 작가였던 존 로널드 로엘 톨킨. 세계3대 판타지소설의 작가이며 강한 영향력을 준 작가이다. [호빗의 성공 후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사진: 언어학자이며 교수이고 작가였던 존 로널드 로엘 톨킨. 세계3대 판타지소설의 작가이며 강한 영향력을 준 작가이다. [호빗의 성공 후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 /ⓒ 미상)


톨킨은 다른 작가들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보통의 작가들은 전체 줄거리를 구성한 다음에 구조를 만들며 글을 전개하지만, 톨킨은 배경이 되는 세계관을 먼저 확고히 한 후 필요한 에피소드로 그때그때마다 사건을 전개시켰습니다. 

이렇게 된 것에는 톨킨이 언어학자였다는 영향도 있습니다. 고대 영어를 연구하며 잊혀지던 옛이야기들을 수집하던 톨킨은 다른 나라처럼 영국만의 신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에 방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역사적, 민속적 지식들이 반지의 제왕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진: 톨킨이 살았던 영국의 생가. 웨스트파크에 위치한 이 집에서 호빗,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 등이 톨킨과 함께 했다. [호빗의 성공 후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사진: 톨킨이 살았던 영국의 생가. 웨스트파크에 위치한 이 집에서 호빗,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 등이 톨킨과 함께 했다. [호빗의 성공 후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 / ⓒ Sagarjethani)





영국의 두 거장, 비틀즈와 톨킨의 일화들 


비틀즈는 혁신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그룹이면서, 가장 많은 빌보드 1위를 기록한 가수이기도 합니다. 이런 겉 표면의 대단함보다도 더 위대한 것은 로큰롤부터 하드락, 팝과 발라드에서 재즈와 펑키까지 모든 장르를 실험하고 개척한 혁신정신이었습니다. 심지어 게릴라콘서트같은 것도 비틀즈가 최초입니다. 

지금까지도 비틀즈의 곡들이 사랑받는 것은 시대를 앞서간 음악성 때문이라고 평가받습니다. 비틀즈가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제작하려던 것은 끊임없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는 혁신가의 일면으로 봐도 될 듯합니다.  


사진: 비틀즈가 영국 훈장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아이러니하게도 이 훈장은 최고음악가를 위한 훈장이 아니라 영국이 돈을 많이 벌게한 공로에 대한 훈장이다. [영국의 두 거장, 비틀즈와 톨킨의 일화들](사진: 비틀즈가 영국 훈장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아이러니하게도 이 훈장은 최고음악가를 위한 훈장이 아니라 영국이 돈을 많이 벌게한 공로에 대한 훈장이다. [영국의 두 거장, 비틀즈와 톨킨의 일화들] / ⓒ 미상)


비틀즈는 수입의 95% 이상을 세금으로 낼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큰 존재였습니다.
그 영향력이 컸던 만큼 저작권 관계도 복잡해서 비틀즈의 저작권이 비틀즈에게 없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많은 곡들이 음반회사나 마이클 잭슨 같은 제3의 인물에게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어디에 저작권문의를 해야 할지도 복잡합니다. 다행히 이런 문제가 해결돼서 2016년부터는 정식으로 한국에서도 디지털음원을 다운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흔하게 들어온 비틀즈의 노래는 사실 저작권문제가 깨끗이 해결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사진: 비틀즈의 역사적 평가는 혁신이다. 현대에 유행하는 많은 장르의 음악은 이미 비틀즈가 선구자가 되었던 장르이다. [영국의 두 거장, 비틀즈와 톨킨의 일화들](사진: 비틀즈의 역사적 평가는 혁신이다. 현대에 유행하는 많은 장르의 음악은 이미 비틀즈가 선구자가 되었던 장르이다. [영국의 두 거장, 비틀즈와 톨킨의 일화들] / ⓒ Nationaal Archief)


또 하나의 거장인 톨킨은 나니아 연대기를 쓴 루이스와 친구관계이고, 서로 영향을 끼치며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톨킨이 중세분위기의 판타지에 잘 어울린 것은 고대, 중세 영어를 연구하는 학자였기 때문입니다. 

톨킨의 문학은 고대의 언어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말로 창조했으므로, 단어 자체에 저작권이 걸려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호빗이나 미스릴같은 단어들도 톨킨 재단에서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말들입니다. 톨킨은 자신의 작품을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할 때 지켜야하는 번역가이드북까지 써서 제공할 정도로 언어에 혼신을 쏟은 작가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실마릴리온이라는 대작과 함께 언어학자로서 신화를 연구한 톨킨교수. 영어권 문학에서 현대의 세익스피어에 견줄만큼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영국의 두 거장, 비틀즈와 톨킨의 일화들](사진: 실마릴리온이라는 대작과 함께 언어학자로서 신화를 연구한 톨킨교수. 영어권 문학에서 현대의 세익스피어에 견줄만큼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영국의 두 거장, 비틀즈와 톨킨의 일화들] / ⓒ QuotesGram)


톨킨은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보다도 실마릴리온에 더 애착을 가졌습니다. 호빗과 반지의 제왕은 실마릴리온의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너무도 방대해서 죽기 전에 완성을 하지 못하고, 아들이 정리하여 출판하였습니다. 톨킨이 부러워했던 영국만의 신화는 다른 나라들에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톨킨은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여러 신화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실마릴리온은 그런 부정이 깊이 배인, 따뜻한 아버지의 정이 깃든 작품이기도 합니다. 또한, 아내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전반적인 구상을 했고, 주인공인 요정의 모습에 아내를 그려낼 정도로 가정적인 남자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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