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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유래, 라면의 역사 -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의 라면요리, 컵라면, 우지파동 일화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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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유래, 라면의 역사 -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의 라면요리, 컵라면, 우지파동 일화들

키스 키스세븐 2016. 8. 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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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의 유래, 라면의 역사 -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의 라면요리, 컵라면, 우지파동 일화들


한국은 인스턴트라면 세계 1위의 시장입니다. 한해에 30억 개가 넘게 소비되고 있으며 시장규모가 2조원에 가깝습니다. 

라면의 유래는 일본인데,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의 치열한 경쟁은 초기 라면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라면의 어원과 라면의 유래를 살펴보면 현대 격동기의 단면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라면의 유래, 일본... 라면의 어원과 라면 개발 


라면의 유래가 일본의 라멘이라는 것은 많이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에서는 라면을 귀화한 중국음식처럼 인식한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먹기 힘든 짜장면을 우리가 흔하게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실제로 일본을 여행했던 여행자의 후기를 보면 중국집에서 파는 라면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한국의 짜장면처럼 라멘을 배달시켜 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중화소바, 혹은 지나소바라는 국수가 중국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진: 일명 지나소바. 라면이라고 하면 우리는 인스턴트 라면이 떠오르지만, 일본에서는 요리라는 개념이 더 강하고, 한국의 짜장면 같은 의미마저 있다.(사진: 일명 지나소바. 라면이라고 하면 우리는 인스턴트 라면이 떠오르지만, 일본에서는 요리라는 개념이 더 강하고, 한국의 짜장면 같은 의미마저 있다. [라면의 유래, 일본... 라면의 어원과 라면 개발] / ⓒ photozou.jp)


일본 라면의 유래는 청나라 때 일본으로 망명한 명나라 한족이 일왕에게 대접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본격적으로는 메이지유신 이후 중국인이 늘어나면서, 차이나타운 같은 집단촌에서 라면이 유래됐다고 합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일본인들이 포장마차 등을 개업하면서 국민적인 먹거리로 퍼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사진: 종전 후의 일본 시장. 6.25전쟁 후의 한국처럼 일본에도 미군의 음식물 찌꺼기를 이용한 음식 등 새로운 음식이 생겨나는 때였다.(사진: 종전 후의 일본 시장. 6.25전쟁 후의 한국처럼 일본에도 미군의 음식물 찌꺼기를 이용한 음식 등 새로운 음식이 생겨나는 때였다. [라면의 유래, 일본... 라면의 어원과 라면 개발] / ⓒ 미상)


한국의 라면은 인스턴트식품을 말하지만, 일본의 라멘은 각 식당마다 고유의 요리법이 전수되는 요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면의 어원은 "납면(拉麵)"입니다. 중국에서 납면은 면발을 칼로 썰지 않고 손으로 늘려서 가늘게 만드는 국수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타면의 개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난에 시달리던 일본은 미국의 밀가루 원조에 힘입어 면음식이 발달하게 되었고, 그 대표적인 음식이 포장마차에서 만들어 팔던 라멘입니다. 


사진: (사진: "拉麵"으로 사진검색을 하면 수 많은 종류의 라면들을 볼 수 있다. 이 것은 일본의 라면이 각 가게에서 각기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라면의 유래, 일본... 라면의 어원과 라면 개발] / ⓒ 이미지 검색 캡처)


그러다가 요리로서의 일본 라멘에 1950년대 말에 획기적인 변혁이 일어납니다. 닛산식품의 창업주는 포장마차에서 오뎅에 밀가루를 입혀 튀기는 모습을 보고, 면을 튀겨 놓으면 나중에 즉석에서 요리를 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최초의 라면이 개발되었는데 이름은 "치킨라면"입니다.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들은 스프를 따로 넣는 것이 아니라 면에 스프가 묻혀져 있었고, 닭고기 등으로 국물 맛을 냈었습니다. 따로 포장된 라면스프는 1960년대가 되서야 나왔습니다. 그는 1970년대 초에 또 한 번의 놀라운 라면 개발을 하게 되는데, 최초의 컵라면인 "컵누들"이 그것입니다. 


사진: 드디어 1958년 일본에서 최초의 인스턴트라면이 개발되었다. 사진은 라면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행사장.(사진: 드디어 1958년 일본에서 최초의 인스턴트라면이 개발되었다. 사진은 라면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행사장. [라면의 유래, 일본... 라면의 어원과 라면 개발] / ⓒ gzn.jp)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 한국 라면의 역사 


한국 최초의 라면은 1960년대 초에 나온 삼양식품의 치킨라면입니다. 한국 라면을 얘기할 때 의례히 나오는 것이 꿀꿀이죽인데, 삼양식품의 창업주가 시장에서 꿀꿀이죽을 먹는 국민을 보다가 라면사업을 결심했다는 일화입니다. 

당시 꿀꿀이죽은 주한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서, 다시 끓여서 파는 것이었으며 가격이 5원 정도였습니다. 삼양라면 창업주는 일본 라면업체인 묘조식품 사장을 찾아가서 6.25 전쟁 후 배고픔에 허덕이는 한국을 도와달라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사진: 6.25전쟁 후 시장에서 팔던 일명 꿀꿀이죽. 미군들이 먹다버린 음식들을 모아서 다시 끓여 팔던 음식이다.(사진: 6.25전쟁 후 시장에서 팔던 일명 꿀꿀이죽. 미군들이 먹다버린 음식들을 모아서 다시 끓여 팔던 음식이다.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 한국 라면의 역사 ] / ⓒ 박물관. 미상)


물론 영업비밀인지라 처음엔 묘조식품 사장이 거절했지만, 결국 삼양라면 사장의 진정성에 감동하여 라면제조법을 알려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면제조법만 가르쳐주고 새로 개발된 스프 제조 비법은 끝내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포기하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묘조식품의 직원이 급히 뒤쫓아 와서 묘조식품 사장이 스프비법도 알려주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감동스토리로 남으며 삼양식품의 경영철학으로 대표되기도 합니다. 


사진: 한국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의 시대별 변천사. 일본 묘조식품에서 기술을 받아온 삼양라면 사장은 꿀꿀이죽을 먹는 국민의 식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사진: 한국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의 시대별 변천사. 일본 묘조식품에서 기술을 받아온 삼양라면 사장은 꿀꿀이죽을 먹는 국민의 식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 한국 라면의 역사] / ⓒ 삼양식품)


한국에 온 삼양식품 사장은 막상 라면 기술을 배워왔지만, 문제는 라면을 만드는 기계를 살 돈이 없었습니다. 정치권의 김종필을 초대하여 라면 시식을 시키며 정부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박정희는 처음엔 무관심했고 김종필 덕분에 미국에서 들어오는 10만 달러의 차관 중 5만 달러를 지원받아 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쌀밥만 좋아하던 국민들은 면으로 식사가 되겠냐며 시큰둥했고, 실제로 라면을 보여줘도 꼬불꼬불한 모양을 보며 공업용 실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사진: 미국 차관을 빌려서 라면기계를 사고 1960년대에 삼양라면 출시되었다. 사진은 라면생산과정을 보고 있는 고 삼양식품 명예회장의 모습.(사진: 미국 차관을 빌려서 라면기계를 사고 1963년에 삼양라면 출시되었다. 사진은 라면생산과정을 보고 있는 고 삼양식품 명예회장의 모습.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 한국 라면의 역사] / ⓒ 삼양식품)


삼양식품은 몇 년 동안 거리에서 시식회를 통해서 라면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홍보를 했습니다. 때마침 쌀 부족으로 인해 정부가 혼분식 장려운동을 하면서 드디어 라면이 식생활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당시 꿀꿀이죽이 5원, 짜장면이 20원, 커피가 35원을 하던 때에 10원의 가격으로 정해진 삼양라면의 가격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초기에는 이것도 비싸서 생일날에나 끓여주던 것이 라면의 역사입니다. 라면이 지금처럼 기호식품으로 정착한 것은 1980년대에 넘어와서의 일입니다. 


사진: 1960년대의 삼양라면 광고. 좌측상단은 국내 최초의 컵라면 광고. 하단은 닭고기육수로 만든 최초의 삼양라면 포장지 모습.(사진: 1960년대의 삼양라면 광고. 좌측상단은 국내 최초의 컵라면 광고. 하단은 닭고기육수로 만든 최초의 삼양라면 포장지 모습.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 한국 라면의 역사] / ⓒ 미상)





라면 역사의 2막,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의 경쟁 


라면의 시초, 삼양라면이 나온 지 2년 후 농심에서 라면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농심의 창업주는 롯데 사장의 동생이었고 처음엔 롯데공업이라는 이름으로 라면을 판매했습니다. 하지만 롯데 사장은 동생이 라면사업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격한 감정싸움이 벌어졌고, 동생이 독립을 하자 롯데라는 상호명도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라면도 문제였지만 롯데공업이 만든 새우깡 등의 과자가 롯데제과와 경쟁관계가 된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꾼 상호명이 농심입니다. 


사진: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유행시키며 히트한 농심라면 광고. 농심라면은 소고기육수로 만든다는 전략으로 삼양라면을 뛰어 넘었다.(사진: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유행시키며 히트한 농심라면 광고. 농심라면은 소고기육수로 만든다는 전략으로 삼양라면을 뛰어 넘었다. [라면 역사의 2막,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의 경쟁] / ⓒ TV캡처)


라면 역사의 초기는 삼양라면의 절대 강세였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려고 과감한 경품행사와 광고 전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농심에게 첫 번째 기회가 왔고, 그것이 쇠고기라면과 안성탕면입니다. 이전까지의 라면은 닭고기 국물 스타일을 기본으로 제조 되었었는데, 롯데공업에서 쇠고기맛과 된장맛을 들고 나왔던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쇠고기에 욕심이 많았던 국민들의 귀가 솔깃해졌으며, 순한 삼양라면에 비해 강한 맛이 더한 안성탕면에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결국 1980년대 중반에 농심라면이 시장 1위로 올라섰습니다. 


사진: 농심라면의 변천사. 특히 안성탕면과 신라면은 한국 라면 1위업체로 올라서는데 공헌했다.(사진: 농심라면의 변천사. 특히 안성탕면과 신라면은 한국 라면 1위업체로 올라서는데 공헌했다. [라면 역사의 2막,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의 경쟁] / ⓒ 농심)


1960년대 최초의 라면 출시, 1970년대에 최초의 컵라면 출시로, 라면 원조를 굳건히 지키던 삼양라면에게 더 위협적인 상대가 나타났습니다. 1980년대 후반의 농심 신라면의 출시였습니다. 

삼양라면은 일본기술의 영향 때문인지 순한맛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여기에 농심라면은 자극적인 맛을 개발했는데, 신라면이 매운 맛을 좋아하는 국민의 기호와 딱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그 이후 농심은 계속 선두를 유지하였습니다. 삼양라면에게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먹인 것은 1980년대 말의 공업용 우지파동입니다. 


사진: 삼양라면, 농심라면이 가장이지만, 그 외에도 오뚜기라면, 팔도라면 등 라면회사도 많았다. 사진은 과거의 옛날 라면들.(사진: 삼양라면, 농심라면이 가장이지만, 그 외에도 오뚜기라면, 팔도라면 등 라면회사도 많았다. 사진은 과거의 옛날 라면들. [라면 역사의 2막,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의 경쟁] /ⓒ 디시인사이드)


한국 라면의 역사에서 빼놓지 못하는 이 공업용 우지파동은 삼양라면의 시장점유율을 10%로 떨어트리고 1천명의 퇴사와 100만 박스의 라면 폐기로 확대되었습니다. 미국은 내장을 우려내서 먹지 않으므로 내장 등을 2등급 공업용으로 분리했는데, 내장을 먹는 우리나라에서는 라면 튀김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수입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언론사와 검찰은 공업용이니 무조건 몸에 나쁜 것처럼 국민에게 흘렸고, 삼양라면 뿐 아니라 삼립유지, 서울 하인즈, 오뚜기식품 등이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농심은 식물성기름을 쓰고 있어서 위기를 피해갔습니다. 결국 8년간의 법정투쟁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삼양라면이 잃은 것은 너무나 막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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