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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 수소폭탄과 비운의 도시 히로시마, 나가사키

키스 키스세븐 2015. 12. 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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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 수소폭탄과 비운의 도시 히로시마, 나가사키]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1945년과 냉전이 시작된 1952년은 인간이 인간을 대량 학살하기 위해서 강대국들이 무기 경쟁을 하던 때입니다. 

이때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이 발명되었는데, 인류 역사상 손에 꼽을 만큼 쇼킹한 두려움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사건에도 뒷면에는 비운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20세기 중반의 죄악 -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에 미국에서 개발되었습니다. 수소폭탄은 1952년 역시 미국에서 개발되었습니다.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세계 5대 무기 강대국들은 1960년대까지 모두 수소폭탄을 보유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현재 공식적인 핵보유국은 5개 국가, 비공식적인 원자폭탄 보유 의심국을 합치면 9개 국가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폭약물은 TNT를 기준으로 얼마나 강력한가를 설명합니다. (TNT는 폭발물이며 각종 토목공사 등이 쓰임. 다이너마이트와는 다름. TNT는 독일 과학자가 발명했음) 

TNT 1톤을 기준으로 본다면 원자폭탄은 1000톤 단위의 위력이며 수소폭탄은 100만 톤 단위의 위력입니다. 대게 현재 전략핵무기는 10만 톤~150만 톤 위력의 핵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리틀보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리틀 보이"는 1600톤의 위력이었고 나가사키의 "팻맨"은 2100톤의 위력이었습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은 우라늄을, 나가사키 원자폭탄은 플루토늄을 사용한 것입니다. 

두 개의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이 만약 결사항전을 외치며 계속 버텼다면, 미국은 12개까지 원자탄을 폭격하려고 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원자폭탄 투하 직후 히로시마는 최소 7만여 명이 즉사하고 7만여 명이 다쳤으니, 전체 도시인구의 1/3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른 주장에서는 2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나가사키는 도시가 작았기 때문에 최소 4만여 명이 즉사하고 총 8만여 명이 다쳤습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원폭 이후로 각종 병과 돌연변이로 인해 더 많은 수의 시민이 고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원자폭탄의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평생 고통을 받는 건 일반 시민들이었습니다.  



(구.소련이 개발했던 인류최대의 수소폭탄. 차르봄바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가장 강력한 핵폭탄으로 유명한 것은 구.소련에서 1961년 실험했던 "차르 봄바"라는 수소폭탄입니다. 50만 메가톤, 즉 TNT 5000만 톤의 위력을 지닌 수소폭탄으로, 인류가 실험한 것 중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100만분의 39초(39나노초) 동안에 폭발한 차르 봄바의 위력은 같은 시간에 태양이 방출하는 에너지의 1%와 해당하는 양이라고 합니다. 


미국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3800배 정도의 수소폭탄 실험까지는 했었습니다. 

비키니 이름으로 유명한 비키니 산호섬은 원주민을 내쫓고 돼지 등의 가축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원자폭탄 실험을 했습니다. 수소폭탄 등의 실험까지 합하면 미국의 50년대 핵실험 수는 공식적으로 23번이 넘는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지구 상의 핵보유국들은 최소 2만기, 주장에 따라서는 4만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핵무기 보유국 그래픽. 출처: seoul.co.kr)





비운의 도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1945년 5월에 나치 독일은 결국 연합군에 항복을 하게 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아시아의 또 다른 전범국인 일본이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이미 승기를 빼앗긴 일본의 패망은 예견된 일이었고,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득을 보기 위해 구.소련이 태평양 전쟁에 대규모 참전을 시작합니다. 

일본을 상대로 싸움을 하고 있던 미국은 소련이 일본을 침공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결사항전의 고집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은근히 새로 개발한 핵무기를 사용해 보고 싶게 되었습니다. 



(원자폭탄을 맞은 도시... 이 도시가 선정된 것에는 비운의 이유가 있다)


미국은 원자폭탄을 투하할 후보 도시를 선정했습니다. 도쿄와 교토, 히로시마, 고쿠라, 니카타, 나가사키였습니다. 도쿄는 일본의 수도였으므로 전범자가 있는 거대 도시를 폭격하기엔 부담이 되어 제외되었고, 교토는 일본의 정신적 유산이라 최악의 항미감정을 일으킬까봐 제외 되었습니다. 

니카타와 나가사키가 제외된 대상은 아니었으나, 히로시마와 고쿠라가 가능성이 높긴 했습니다. 


히로시마는 일본 남부 본토를 방어하는 사령부가 있었고, 전쟁 무기를 조달하는 병참기지이므로 폭격대상에 쉽게 선정되었습니다. 한국과 가까운 고쿠라는 군수창고가 있었고 독가스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제시된 우선원칙은 당일 날 하늘에서 육안으로 확인이 되는 도시를 우선으로 하는 것이었으므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날씨가 좋기 때문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되었습니다. 



(핵폭탄이 투하된 도시를 그린 그래픽이미지)


특히 나가사키는 비운의 도시입니다. 나가사키에 왜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는지는, 고쿠라의 날씨가 안 좋았던 것과 그로인해 비행연료가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폭격을 할 때 폭격병이 육안으로 계산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비행기에서 목표물을 직접 볼 수 있는 날씨는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결국 히로시마 원폭 3일 후 고쿠라까지 갔던 폭격기는 나가사키로 계획을 바꿉니다. 


히로시마도 그렇고, 나가사키도 폭격기가 오는 것을 미리 발견하기는 했으나, 비행기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지나가는 비행편대로 생각하고 대응하지 않았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전쟁 말기의 일본은 항공기와 연료 부족으로 반공망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여 일일이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굳이 원자폭탄을 투하해야만 했냐는 논란이 아직도 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또 한 가지 아이러니한 뒷얘기는, 히로시마 원폭에서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이 나가사키로 이주해 왔었는데, 결국 또 한 번의 원자폭탄으로 나가사키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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