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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세잔의 사과 그림과 에밀졸라의 목로주점 소설 - 우정과 현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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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세잔의 사과 그림과 에밀졸라의 목로주점 소설 - 우정과 현실

키스세븐지식 2015. 8.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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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세잔의 사과 그림과 에밀졸라의 목로주점 소설 - 우정과 현실] 




폴세잔은 사과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이고 에밀졸라는 목로주점이란 소설로 유명한 소설가 입니다. 이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의 어느 날 두 사람은 결별을 합니다. 그 이유를 폴 세잔의 사과그림과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현대 미술을 개척한 미술의 거장 폴세잔과 자연주의 소설을 개척한 소설의 거장 에밀졸라의 우정은 순수성이냐 현실감이냐의 사색을 던져줍니다. 





사과로 연결된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우정 


서양 예술계의 우정,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우정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에밀졸라의 아버지는 건축 관련 직업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엔 파리에 살다가 아버지를 따라 엑상 프로방스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낯선 마을에 이사 온 에밀졸라는 덩치도 작은데다가 말을 더듬는 버릇까지 있어서 다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두 친구 - 좌측이 폴 세잔, 우측이 에밀 졸라)


에밀 졸라보다 한 살 많은 세잔은 나름 배짱이 있고 덩치가 있는 아이였는데, 어느 날 에밀졸라가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 것을 보고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에밀졸라는 고마워하며 집에 있던 예쁜 사과를 바구니에 넣어가서 폴 세잔에게 전했습니다. 

사과로 현대미술의 큰 변화를 주게 된 세잔과 에밀졸라의 우정은 이렇게 사과를 매개체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은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한 명의 친구가 더 포함되어 세 명의 친구는 뗄 수 없는 친구들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학교생활 내내 친하게 지냈습니다.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절친한 사이를 유지하며 30년 가까이 친한 친구로 살았습니다. 



(폴 세잔과 에밀 졸라가 즐겨 찾았다는 카페. 1792년에 오픈한 명소이다. / 출처: moderntroubadours.blogspot.com)





두 친구의 가정형편과 꿈을 이루려는 노력 


세잔의 아버지는 은행 경영자였기 때문에 세잔은 어릴 때부터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고 미술을 하는데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에밀 졸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 꿈은 법률가가 되는 것이었지만 경제적 이유로 공부를 포기하고 출판사에 입사해야 했습니다. 



(에밀 졸라의 생애를 그린 영화의 한 장면. 옆의 곱슬머리는 남자다. 세잔일까?)


한편, 폴 세잔의 아버지는 세잔이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세잔은 법대에 입학했었지만 미술을 하기로 마음먹고 에밀졸라가 있는 곳에 가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세잔의 뜻에 따라 주고 후원해 주었습니다. 더구나 나중에는 막대한 유산까지 남겨서 세잔은 풍족한 화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자료를 보면 원화로 했을 때 70억 원 이상의 유산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에밀 졸라도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쓴 글들 덕분에 꽤 유명한 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에밀졸라는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비평가로서도 유명합니다. 정치, 사회, 예술 등 인간의 문제에 대한 그의 비평은 날카로웠습니다. 세잔은 아직 평범한 화가에 불과했지만 에밀졸라는 제법 명성을 얻은 작가가 된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도 두 사람은 자주 편지를 주고받으며 예술을 논하는 친한 사이였습니다. 



(세잔의 생빅투아르산. 1904년 출품되어 피카소에게 영향을 주고 큐비즘이 생겨나게 되었다)


폴 세잔은 에밀 졸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과만으로 파리를 놀라게 만들겠다”고 한 것처럼 사과 그리기에 집중했습니다. 세잔은 물체의 내면과 완성도에 집착을 해서 예술적인 순수성에 강한 의욕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에밀졸라의 눈에는 현실 사회의 부조리와 문제점을 생각하지 못하는 폴 세잔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폴 세잔에게 그런 것들을 좀 그려보라고 하였습니다. 




예술을 생각하는 차이가 절교를 부르다 


결국 이들의 우정은 파국을 맞았습니다. 에밀졸라는 “작품”이라는 소설을 썼고 거기에서 세상에 관심이 없는 재능 없는 화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서 자살로 끝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소설을 본 폴세잔은 충격을 받고 에밀졸라에게 편지를 보내 절교를 선언했습니다. 그 이후로 이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편지교환도 없었습니다. 



(뚜렷한 주제배치와 어울리는 주변배경을 의도적인 빛의 이용으로 표현)


폴 세잔은 보이는 대로 그리는 화가가 아니고 싶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사과 하나를 그리더라도 빛이 반사되는 사물의 진정한 현상을 파악하여 그림에 담으려고 했기 때문에, 마치 사물의 영혼을 그리는 듯한 화가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원기둥, 구, 원뿔이라는 기본원리로 이해했습니다. 폴세잔은 후기 인상파 화가였지만 그 덕분에 입체파가 열렸고 지금 현대 미술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에밀 졸라는 억울한 드레퓌스 사건 때 그를 옹호한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의 작품 목로주점에서 에밀졸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어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전처럼 “있을 법한”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인간이 유전과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삶”을 제기하여 근대 자연주의 문학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도서의 판본들. 인간의 삶에 대한 관찰을 하였다)


어린 시절의 폴 세잔은 크게 부족한 것이 없는 아이였지만 어린 시절의 에밀 졸라는 주변인의 놀림에 대한 생각을 해야 했고 꿈을 포기하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폴세잔은 원하는 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인간관계에 소극적이었지만 에밀졸라는 대인관계를 극복하고 사교적인 성격을 되었습니다. 

폴 세잔은 사물의 “원리”를 이해하려는 근원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지만, 에밀 졸라는 현실은 왜 그런가의 인간에 대한 철학적 관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이런 차이 때문에 예술의 순수성과 현실성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게 되고, 결국 30년의 우정은 지속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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