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부대의 역사와 팔쉬름예거(팔슈름야거) 이야기 - 2차대전 낙하산 강하엽병]
공수부대란 공중을 통한 투입, 즉 비행기, 낙하산 등을 통해 전진 후방에 투입되는 부대를 말합니다.
독일의 유명한 팔쉬름예거는 팔슈름야거라고도 불리며, 처음으로 실질적인 공수작전을 벌인 부대입니다.
공수부대의 주 작전 내용은 후방에 투입되어 요충지를 점령하거나 본 부대의 진격이 쉽도록 적에게 혼란을 주는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작전이 위험한 만큼 역사적으로는 사망률도 높은 부대 체제입니다.
낙하산 부대, 공수부대의 역사
흔히 공수부대와 특전사의 차이점은 뭐냐는 질문이 있는데, 현대전에서는 워낙 다양한 전술이 있기 때문에 개념이 많이 중첩됩니다 .
그래도 억지로 구분을 하자면... 일반 육군이 육상을 통하여 전진하는데 반해 공수부대는 낙하산으로, 해병대는 상륙용 배로, 특전사는 육로를 이용해 공격합니다. 공수부대와 해병대는 육해공 군의 공격과 연관된 특수작전을 하고, 특전사는 요인암살이나 게릴라전 등 소규모의 특수작전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구분을 위한 구분일 뿐 상황에 따른 변수는 많습니다.
(비행기에서 낙하산으로 뛰어내리는 공수부대원들)
공수부대의 시작을 미국이나 이탈리아에서 찾는 경우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공수 훈련, 즉 낙하산을 이용한 침투 훈련을 최초로 실시한 나라는 구.소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1930년대 중후반에 독일에서 만들어진 부대가 팔쉬름예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초기의 공수부대는 낙하산 뿐 아니라 글라이더를 타고 활공해서 침투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실전 전투도 팔쉬름예거가 벌였으며 1940년대인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벨기에 침공 때 있었습니다. 인류가 낙하산을 실용화시킨지 140년 만의 일입니다.
(현대의 낙하산 침투 훈련에서의 비행기 안에서 준비모습)
공수부대 초기에 활약했던 나치독일의 "팔쉬름예거"는 팔쉬름이 낙하산이라는 뜻이고 예거가 보병 또는 사냥꾼이라는 뜻입니다. 억지로 한자로 바꿔서 강하엽병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외국말을 또 외국말로 바꿔 부르는 꼴입니다.
경보병(중무장을 하지 않은)이라고도 하며 팔쉬름예거는 공군소속이었지만, 다른 나라의 공수부대는 육군소속도 있는 등 다양합니다.
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말 그대로 낙하산을 이용한 공격을 했지만 후반에는 일반 보병처럼 전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낙하산을 이용한 낙하훈련. 빠른 착륙을 위해 낮게 비행해서 바로 낙하산을 편다)
팔쉬름예거와 에반에말 요새, 크레타섬 작전
"마지노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각오로 설정한 지역을 말합니다. 프랑스는 독일의 침략을 대비해 철통같은 방어를 위해 마지노선을 구축했지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독일은 마지노선을 빙 둘러서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를 침공했습니다.
이때 활약을 한 것이 팔쉬름예거입니다. '벨기에'에도 마지노선만큼 강력한 방어 요새가 있었는데, 그곳은 에반에말 요새입니다. 콘크리트로 쌓은 요새이지만 팔쉬름예거는 하늘을 날아서 들어갔습니다. 70여명의 공수부대에게 몇 배나 되는 수백 명의 에반에말 요새 방어군은 항복을 하게 됩니다.
(벨기에의 에반에말 요새. 콘크리트로 단단한 성을 쌓고 방어했다)
이렇게 마지노선을 피해 프랑스를 공격할 수 있게 길을 터주며 활약한 팔쉬름예거였지만, 크레타 전투 이후 너무 많은 인명피해 때문에 독일도 회의적이 되었습니다.
크레타는 그리스의 섬입니다. 영국이 해상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수부대를 이용한 공격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공수작전도 적의 허를 찔러야 효과가 있는 법인데 독일군은 너무나 뻔히 예상이 되는 공격을 했습니다.
비행기로 크레타 영공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수송기들이 격추돼서 추락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작은 섬에서 수많은 공수부대 병사가 속수무책으로 죽었다)
방공망을 뚫고 살아남은 비행기에서 낙하에 성공한 병사들에게도 최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상에서 기다리고 있던 방어군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독일군을 기다렸다가 총질을 해댔습니다. 개인무기만을 가지고 낙하하던 독일 병사들은 지상의 상황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습니다.
또 일부는 너무 험한 지형에 떨어져서 그대로 죽거나 다쳤습니다. 방공망에 격추 당할까봐 겁에 질린 수송기 조종사들이 아무데나 병사들을 낙하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작전에서 투입됐던 팔퓌름예거 공수부대원들은 4명 중 1명이 전사했습니다. 무려 4천여 명이 아비귀환 속에 죽어가고 200여대의 수송기가 격추 당하고 말았습니다.
(나치독일의 팔쉬름예거 또는 팔슈름야거 병사들의 모습)
너무나 잔혹한 전쟁 속에서 죽어간 젊은이들
수많은 죽음 속에서도 작전은 계속 강행되고 해군까지 투입되면서 결과적으로 독일이 이기긴 했으나 너무나 큰 손실이 생긴 전투입니다.
크레타섬 전투에서 죽어간 병사에 대한 보고를 받은 히틀러는 기겁하며 공수 작전에 회의를 가졌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는 공수부대 투입이 줄어들고 보병작전에 투입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더구나 공수부대 후방 침투작전은 대부분 공격 상황일 때 벌어지므로, 2차대전 후반에 독일이 수세에 몰린 이후엔 활용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나무에 걸린채로 사격을 받아 죽은 병사 / 출처: porjati.net)
연합군도 공수부대를 창설해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에 투입했었지만 인명 손실에 비해 타격 효율이 적다고 판단하고 공수부대의 활용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초기에도 낙하산으로 경장갑차를 공수하는 실험도 했었지만, 제2차 대전의 공수부대원들은 낙하산이 부실하여 중화기는 다른 낙하산으로 따로 공수하였습니다. 하지만 낙하 지역이 불규칙하여 공수부대원들은 개인화기로만 싸우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총알받이가 된 전투의 젊은이들. 문제는 전쟁의 참혹함이다)
더구나 낙하산 착륙 직전엔 적의 집중 사격을 당해야 했으며, 낙하산이 나무 등에 걸리면 그 상태로 사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더구나 동료 비행사가 고사포에 맞을까봐 두려워서 아무데나 낙하시키기도 했기 때문에 고생이 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집중사격의 위험시간을 줄이고자 공수부대의 낙하산은 빠른 속도로 착륙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러이러한 문제로 인해 현재 세계적으로 공수부대의 규모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고 합니다. 낙하하며 비참하게 죽어 간 젊은 이들을 생각하면 전쟁의 잔혹함이 더욱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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